큰 조카가 스무 살이 됐습니다. 대학입학을 확정하고 고교 시절 마지막 겨울방학에 첫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습니다. 아무 기술도 없는 조카는 편의점에서 일했습니다. 첫 월급으로 부모님은 물론 조부모에게까지 용돈을 드렸다는 말에 흐뭇했습니다.대학생으로 맞은 첫 여름방학에도 역시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그 소식을 먼저 전해주신 엄마는 하루에 5만 원을 번다면서 자랑했습니다. 최저임금을 적용하면 딱 떨어지는 5만 원이 나올 리 없는데 어찌 된 일인지 궁금해졌습니다.조카에게 물었더니 하루 아홉 시간 근무하고 5만 원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고프다. 고프다. 배가 고프다.’ 생체시계가 밥 좀 달라고 아우성치는 시각이면 어김없이 들려오는 소리에 제 배에서 어김없이 ‘꼬르륵’ 소리가 납니다. 식사 시간을 알리는 알람 소리냐고요? 아닙니다. 배고프다는 하소연에 이어지는 소리는 ‘아프다. 아프다. 맘이 아프다. 서럽다. 서럽다. 삶이 서럽다’입니다. 언제 꼬르륵 소리가 났느냐는 듯 서러워집니다. 눈치 챈 분도 있으시겠지요. 의 노래 ‘고공’ 중 일부입니다.월요일과 화요일마다 들리는 저 소리는 이 연습하는 노랫소리입니다. 6월부터 월요일과 화요일 저녁마다
2012년 10월 첫 연재를 시작했습니다. ‘나는 문화노동자입니다’라는 글이었습니다. 예술인소셜유니온 준비위원회(아래 준비위)가 출범했고 1년 안에 정식 출범할 거라는 자랑이었습니다. ‘밥 먹고 살기도 어려운데 예술은 쥐뿔’, ‘배부른 것들이 저 좋아서 하는 예술에 무슨 권리주장?’ 이라고 외면하지 마시고 금속노동자 여러분과 같은 노동자인 예술인들의 뒤늦은 외침에 귀 기울여주시고 응원해달라는 당부였습니다.2013년에 출범하겠다는 약속을 호기롭게 했으나 2년여 간 준비위 꼬리를 떼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활동은
유심히 지켜보는 기자 중 한 기자가 자신이 받은 전화 한 통을 소개했더군요. 3년 전 안산의 SJM 노조원에게 무차별적인 폭력을 행사했던 노조파괴자 ‘컨택터스’를 취재할 때 알게 된 취재원이 전화를 했답니다. “내 친구가 LG 사옥에서 일하는데 임금체불을 당하고 있다.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것이었답니다. 추측컨대 LG유플러스 노동자들의 시위에 대비한 경비용역인 듯했답니다. “일단 지역노동청에 신고하고, 그래도 안 주면 민사 소송하라. 노무사와 상의하라”고 했답니다. 그 사람은 노조를 깨러 다니던 시절 이야기도 하고 노조가 별로
어떤 집회 1.문제가 발생한 다섯 곳 사업장을 차례로 항의 방문한다고 했습니다. 쉴 틈 없이 이어지는 일정에 피곤했지만, 집회 관계자가 아니라 ‘순수한 집회참가자’가 돼보고 싶었습니다. 문제 사업장 본사 건물 앞에서 사회자가 5분 동안 몇 마디를 외치더니 다른 곳으로 가자고 합니다. 이번에도 5분 동안 조근조근 말하더니 다음 장소로 가자합니다. 두어 시간 동안 다섯 곳 사업장 항의 방문을 마쳤습니다. 다른 날과 달리 가 왔으니 특별히 정리집회를 하겠다면서 참가자들이 한마디씩 하더니 에 고맙다며 ‘임을 위한 행진곡’
는 오래오래 외롭게 싸우는 현장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알리기 위해 열네 명의 만화가와 르포 작가가 참여한 공동작업 입니다. 장기투쟁 현장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현장마다 만화가와 작가가 한 팀을 이뤄 만화와 르포로 보여주는 구성의 책을 내는 프로젝트입니다.2년 전 한 르포작가로부터 프로젝트를 들으며 될까 싶었습니다. 상업성이 없어 보이는 책을 선뜻 출판하겠다고 나서는 출판사가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습니다. 무려 열네 명의 작가들이 참여하는 공동작업 이어서 ‘원고 많이 펑크 나겠다’라고 짐작했습니다. 게다가 한국에서 르
“특별히 공연이 없는 날은 어머님들과 목요집회 사수하기로 했었는데, 콘서트, 지방공연 등 핑계가 왜 그리 많았는지……. 오랜만에 뵙습니다. 400회, 500회, 1,000회 할 때도 함께 하겠습니다. 목요집회를 하지 않아도 되는 그날까지 언제나 함께 하겠습니다.”철퍼덕 주저앉은 도로바닥에서 올라오는 열기에 점점 빨갛게 얼굴이 익어가던 1997년 어느 여름,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이하 민가협) 목요집회에 참석한 꽃다지 가수의 공연발언이었습니다. 공연을 마치고 돌아온 사무실에서 이 말을 한 가수에게 타박 아닌
# 풍경 01.그날 4‧20 ‘장애인의 날’ 행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대학로를 막고 하는 행사라 동분서주하고 있는 와중이었음에도 멀리서 팔짱을 끼고 걸어오는 노년의 부부의 다정한 모습을 보며 ‘저렇게 늙어 가면 좋겠다. 참 곱게 늙으셨네’라고 느끼며 흐뭇한 미소를 짓다가 그들의 한마디에 얼어붙었습니다. “우리가 낸 세금 가지고 저들 좋은 일만 하라고 하네. 세금 한 푼 안 낸 것들이 양심도 없어.”# 풍경 02.“이제 그만 우려먹어라.” 영화 ‘친구’에 나오는 대사인 “고마해라 마이 묵었다 아이가”가 뒤따라 나올 거 같은
2014년 4월16일. 그 날 이후로 시간이 멈춘 듯합니다. 안녕들 하셨습니까? 아니요. 안녕하지 못합니다. 2014년 4월16일은 잊어서는 안 되는 날이 되었습니다. 그날 이후로 예기치 못한 순간에 터지는 눈물에 당황하고 때론 악몽을 꾸다 벌떡 일어나곤 합니다. 이 원고를 쓰면서도 한 줄 써놓고 멍하니 정신줄 놓고 있다는 걸 깨닫고 지우고 또 쓰고 또 정
지난 2월 26일에 노동자들에 대한 손해배상과 가압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모임 ‘손배가압류를 잡자! 손에 손을 잡고(이하 ‘손잡고’)가 정식 출범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조국 교수는 “파업으로 감옥에 가게 되면 몸으로 때울 수라도 있지만 손배가압류는 임금, 전세값 등 모든 걸 앗아간다는 점에서 장기적으로 위협이 되
“우리 조카는 커서 뭐가 되고 싶은가?” “담뱃가게 주인이요?” 거창한 직업이 아니라 담뱃가게 주인이 되고 싶다는 조카의 특이한 소원에 대화를 듣고 있던 부모님과 올케가 참견했습니다. “고작 담뱃가게 주인이 뭐냐? 대통령이나 장군, 판검사까지는 아니어도 그건 아니지”로 시작하여 조카의 소원에
# 에피소드 1. 공연을 갔다. 아무것도 없었다. “저, 음향은 어디 있나요? 아직 설치 안 하신 건가요?” “꽃다지가 가져오는 거 아닙니까?” “…….” “안 가져오실 거면 말을 하셨어야지요!” “…….&rdq
오늘 모처럼 꽃다지의 노래 ‘반격’을 들었습니다. 노래를 듣고 있자니 가슴이 더욱 답답해져 ‘일어나길 기다려’를 연이어 듣다가 ‘기다리기는 무얼 더 기다려. 충분히 기다렸단 말이다.’ 속으로 버럭 해버렸습니다. 노래 ‘반격’은 2000년에 만들기 시작해 2001년에 완성한
2013년 6월7일 금요일. 모처럼 환하게 웃었다. H-20000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유용하게 사용할 누군가에게 그 차를 전달하는 날.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의 미소는 그렇게 싱그러울 수가 없었다. 누군가의 말처럼 6월7일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은 천진난만했다. 오늘 같기만 하면 처음 싸울 때 그 기운으로 해볼 만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h
5월 20일에 고용노동부 장관이 통상임금 관련하여 발표한 기본입장을 읽어보셨는지요? “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을 위하여 국가의 모든 역량을 결집해야 하는 때에 통상임금을 둘러싸고 노사간 소송이 증가하는 등 갈등이 커지고 있는 최근의 상황에 대하여 안타까운 마음과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태가 장기화되어 산업현장의 혼란이 심화될
에피소드 01.수년전, 싸움 한 번 해 본 적 없던 어느 노조가 파업을 한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며칠 후 공연 섭외가 와서 가기로 했는데 한 가수가 심각하게 묻더군요. “거길 꼭 가야하나요? 썩 내키지 않아요.” 지금까지 파업한 적도 없고 연봉도 무진장 센 직종이었던지라 머리로는 그들도 노동자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가슴으로는 흔쾌히
어느덧 연둣빛 새순이 돋는 봄이 오고 있습니다. 연말연초의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고 차분히 2012년을 돌이켜보면 기억해야 할 것들이 참 많았습니다. 그 중에 민주노총 문화국이 몇 달간 공석이었다는 것은 참 아픈 기억입니다. 민주노총 조합원이 아님에도 함께 머리 맞대고 노동문화를 이야기하던 문화 활동가 입장에서 걱정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지난해
2월5일 페이스북 담벼락에 올라온 이 한 장의 사진 때문에 참 많이 울었습니다.2월1일 아침 8시에 콜트콜텍 기타노동자의 집에 대한 대체집행이 기습적으로 진행됐습니다. 부스스한 얼굴로 하루를 시작하던 노동자들은 순식간에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공장으로 진입에 성공해 기타노동자의 집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2월 5일 다시 연행돼갔습니다. 이 사진은
지난 달 트위터에서 어느 국회의원의 맨션을 보고 또 보게 됐습니다.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습니다. “***노조 총회에서 민주당 용역폭력진상조사단(신계륜, 은수미, 김경협, 김민기, 김현, 장하나, 진선미, 한정애)대표하여 감사패 받았어요. 컨택터스의 폭력 앞에 유일하게(?) 살아남은 노조. 노동이 존중받는 세상의 밑거름되시길." 트위터 맨
1997년에 활동을 시작했으니 어느덧 노동문화활동 16년차입니다. 16년간 제가 가졌던 직함은 딱 하나였습니다. ‘꽃다지 기획자 혹은 대표.’ 그랬던 제가 얼마 전 새로운 직함을 갖게 됐습니다. ‘예술인 소셜 유니온 준비위 공동대표’라는 직함. 제가 노동조합을 만들 거라고도, 게다가 공동대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