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에 <꽃다지> 활동을 시작했으니 어느덧 노동문화활동 16년차입니다. 16년간 제가 가졌던 직함은 딱 하나였습니다. ‘꽃다지 기획자 혹은 대표.’ 그랬던 제가 얼마 전 새로운 직함을 갖게 됐습니다. ‘예술인 소셜 유니온 준비위 공동대표’라는 직함.

제가 노동조합을 만들 거라고도, 게다가 공동대표라는 직함을 갖게 될 거라고도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책임감에 짓눌려 ‘어쩌다 일을 이렇게 크게 벌렸지’ 라고 후회하는 순간도 있습니다. 더 이상 미룰 수 없을 만큼 문화예술인들이 처한 상황이 절박하기에 ‘최선을 다하자’ 라고 다짐하고 또 다짐해봅니다.

2011년 예술인 집담회 ‘밥 먹고 예술 합시다’가 노동조합을 만들 게 된 결정적 계기였습니다. 장르를 가리지 않고, 유·무명을 가리지 않고 이구동성으로 내뱉습니다. “예술인이라는 그럴싸한 직업 이면의 어려움이 있다”, “예술은 원래 배고픈 거니까”, “언젠가는 해 뜰 날 있겠지. 참자”라고. 정신력만으로 견딜 수 없는 현재 상황을 어떻게 타개할 것인가? 그 의문에서 예술인들의 노동조합은 시작했습니다. 술자리 푸념만으로 바뀌는 것은 없다는 현실을 직시하고, 예술인 당사자들의 연대를 통한 시스템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절박함에서 예술인들의 노동조합은 시작했습니다.

▲ 예술인 당사자들의 연대를 통한 시스템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절박함에서 <예술인 소셜 유니온>은 시작했습니다. 금속노동자 여러분과 같은 노동자인 예술인들의 뒤늦은 외침에 귀기울여주시고 응원해주시기 바랍니다. 공연중인 <희망의 노래 꽃다지>.
 
한 연극계 선배가 “견뎌라. 마흔 넘으면 살 길이 보인다”라고 후배 연극인들에게 말했다고 합니다. 인고의 세월을 버티며 마흔 넘어서야 이름 꽤나 알려지게 된 그분으로서는 사랑하는 후배들에게 던지는 최대의 격려였을 겁니다. 저는 무척 화가 났습니다. ‘참 무책임한 선배다. 생활고로 마흔까지 견디지 못하고 다들 떠났으니 최후의 순간까지 버틴 그에게 기회가 그만큼 더 오는 것 아니겠는가? 후배들에게도 최후의 1인이 되는 그 순간까지 무조건 견디라는 것인가?’ 그런데 돌이켜보면 저 또한 그 연극계 선배와 다를 바 없었습니다.

<꽃다지> 활동하며 많은 동료들이 떠났습니다. 누군가는 음악적 한계 때문에, 누군가는 팀의 음악이 아닌 다른 색깔의 음악을 하고 싶어서……. 음악적 이유로 떠난 동료들에게 아쉬움은 있지만 미안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음악적 이유보다 생계 때문에 떠난 동료들은 세월이 흘러도 회한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때 좀 더 적극적으로 먹고 살면서 음악 할 수 있는 환경이나 시스템에 대해 적극적인 모색을 왜 하지 않았는가? 자본주의를 반대하지만 자본주의에 살기에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경제적 기반을 만드는 것에 왜 소홀했던가? 음악 자체로 승부하며 살 수 있는 방도를 마련하자는 것은 도저히 그럴 수 없는 시스템에 눈감고 ‘제대로 먹지 못하고 음악 해야 한다’는 현실에 순응하는 것은 아니었던가? 사실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았던 것이라는 걸 뒤늦게 인정합니다.

<꽃다지> 사람들뿐만 아니라 많은 예술인들이 먹고 살 수 없어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노동인 ‘예술’을 포기하고 떠났습니다. 그리고 많은 예술인들이 죽어갔습니다. 너무 늦었습니다. 늦었을 때가 가장 이른 때라는 궤변을 늘어놓기에는 너무 많은 이들이 떠나갔고 죽어갔습니다. 더 이상 미루지 않으렵니다.

경제적 어려움으로 창작의 기회를 포기하는 사람들이 없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급선무이겠지요. 이를 위해서는 예술인을 놀고먹는 베짱이나 이슬 먹고 사는 요정으로 생각하는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봅니다. 특수고용, 비정규 노동으로 대변되는 불안정한 노동현실은 예술계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오히려 다른 분야에 비해 심각합니다. 그럼에도 열정으로 견디라는 것은 예술을 노동으로 보지 않기 때문일 겁니다. 예술인을 노동자로 보지 않는 인식을 바꾸는 것 역시 <예술인 소셜 유니온>의 할 일이겠지요. 할 일이 참 많습니다.

내년 상반기 중에 정식으로 <예술인 소셜 유니온>이라는 노동조합이 출범하게 됩니다. “밥 먹고 살기도 어려운데 예술은 쥐뿔”, “배부른 것들이 저 좋아서 하는 예술에 무슨 권리주장”이라고 외면하지 마시고 금속노동자 여러분과 같은 노동자인 예술인들의 뒤늦은 외침에 귀기울여주시고 응원해주시기 바랍니다.

이제야 “밥 먹고 예술 합시다”라고 말하게 되어 미안합니다.

민정연 <희망의 노래 꽃다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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