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프다. 고프다. 배가 고프다.’ 생체시계가 밥 좀 달라고 아우성치는 시각이면 어김없이 들려오는 소리에 제 배에서 어김없이 ‘꼬르륵’ 소리가 납니다. 식사 시간을 알리는 알람 소리냐고요? 아닙니다. 배고프다는 하소연에 이어지는 소리는 ‘아프다. 아프다. 맘이 아프다. 서럽다. 서럽다. 삶이 서럽다’입니다. 언제 꼬르륵 소리가 났느냐는 듯 서러워집니다. 눈치 챈 분도 있으시겠지요. <콜밴>의 노래 ‘고공’ 중 일부입니다.

월요일과 화요일마다 들리는 저 소리는 <콜밴>이 연습하는 노랫소리입니다. 6월부터 월요일과 화요일 저녁마다 <꽃다지> 연습실에서 연습하고 있습니다. 음반을 낸답니다. <꽃다지>는 연습실을 외부단체나 개인에게 빌려준 적이 없었습니다. <꽃다지> 자체 합주와 합창연습이 매일 있고, 장비 관리상 개방하지 않았습니다. <콜밴>에게 연습실을 개방한 이유는 연대의 한 방법이고, <콜밴>의 음반제작에 조금이라도 보탬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음반제작비를 보탤 형편은 안 되니 이렇게라도 돕는 거지요.

“대충 내는 음반이라면 안 냈으면 좋겠다. 연습을 더해서 좀 더 나은 음악을 담으면 좋겠다. 내가 들고 다니며 팔 때, 싸우는 사람들이 만든 거니 묻지 말고 사라고 하고 싶지 않다. 이러저러한 과정을 거쳐 만들었고, 들을만하다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던 말도 있으니 과정을 만드는데 보탬이 되고 싶었습니다.

“어제 연습할 때 물을 한 잔도 안 마시더라. 왜 그래. 이상해”라고 물었더니 “농성장에 있노라면 화장실 가는 횟수를 줄이기 위해 습관이 생겼다”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조금 전 들려오던 노랫말이 다시 떠오르는 순간입니다. ‘서럽다. 서럽다. 삶이 서럽다.’

▲ 지난 3월14일 <콜밴>이 '쌍용차 희망행동'에서 공연을 하고 있다. 사진=신동준

<콜밴>이 왜 음반을 낸다고 했을까요? 음악이 좋아서 모인 소년들도 아닌데 음반까지 내자는 생각을 왜 했을까요? 아니 이들이 왜 밴드 활동을 한 걸까요? 아마, 한 번 더 사람들과 시선을 마주치고 소통하고 싶었기 때문일 겁니다.

콜트-콜텍 기타노동자들은 지난 4월19일 아침 음악투어를 시작하는 기자회견을 했습니다. 4월19일은 2007년 4월 정리해고 만 8년이 되는 날이고 복직투쟁 3,000일+1일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콜트-콜텍 기타노동자들은 복직 투쟁 의지를 다시 확인하고 싸움을 알리기 위해 기획했습니다. 콜트-콜텍 노동자들은 전국 각지에서 아픔으로 신음하는 현장을 찾아 서로의 삶을 나누는 목적을 세우고 투어를 시작했습니다. 팽목항은 음악투어의 첫 목적지였습니다. 제주 강정, 창원, 부산, 울산, 밀양, 구미, 대전, 청주, 이천, 양평, 홍천, 서울을 돌며 콜트-콜텍의 이야기를 전하고 지역의 삶과 투쟁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습니다. 세상 밖으로 내몰리고 상처 입은 이들이 다른 이들의 상처를 보듬고 함께 하는 모습을 보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저는 음악투어를 기획하던 초기 공연까지 해야 하니 컨디션 조절을 위해 투어 중간에 이틀 쉬자고 제안했습니다. 투어기획단은 모두 동의했습니다. 제가 빠진 회의 날 회의록을 보니 휴일로 뺀 날까지 새로운 일정이 잡혀 있었습니다. 콜트-콜트 노동자들이 한 군데라도 더 가자고 했답니다. 참 ‘징헌’ 사람들입니다.

음악투어 뿐 아니라 3000일 콜트-콜텍 노동자들의 투쟁은 남달랐습니다. 사업장의 특성이 작용한 탓이겠지만 이들의 투쟁은 끊임없이 음악과 이어져 있었습니다. 2009년 독일원정을 시작으로 2010년 일본 후지락페스티발에 초청받아 원정투쟁을 가서 음악인과 관객에게 콜트-콜텍의 문제를 알렸고, 2011년 국제 악기 박람회인 애너하임 The NAMM Show에 참가해 많은 음악인들과 악기상의 지지를 끌어냈습니다. 매주 수요일 홍대 앞 <라이브 클럽 빵>에서 여러 뮤지션이 함께 ‘기타 만드는 노동자들을 위한 콘서트’, 공장을 점거할 당시 매일 매일 채우던 문화프로그램 등 다양한 예술 방식으로 투쟁했습니다. 어느 날, 이들의 손에 기타가 들려 있었습니다. 기타 만들 날을 기다리며 기타를 연주하면서.

싸움이 길수록 노동자들은 ‘선수’가 됩니다. 횡설수설하던 사회자는 능수능란한 사회자가 되고, 연설은 청산유수가 되고, 보도자료를 뚝딱 써내고, 노래패도 만들고 율동패도 만듭니다. 이제 밴드까지 만들었습니다. 투쟁과정에서 선수가 되는 노동자들을 볼 때마다 말합니다. “정말 잘해. 그래서 슬퍼.” 저는 싸우는 노동자들이 선수가 되기 전에 일터로 돌아갔으면 좋겠습니다. 그 말을 그대로 할 수 없어 오늘도 농담을 합니다. “<꽃다지> 경쟁 상대인 <콜밴>, 너무 잘하면 곤란한데 말이죠” 라고. 웃기지도 않는 농담을 건넵니다. 그래도 <콜밴>은 웃어줍니다.

<콜밴>의 이인근은 말합니다. “노동자가 없으면 음악이 없고, 음악이 없으면 삶도 없습니다. 우리 삶에서 음악을 뺀다면 삭막할 것입니다. 음악을 이윤의 도구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지요. 다른 사람들의 즐거움을 자신의 배를 채우기 위한 도구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무거운 벌이 내려졌으면 합니다.” 그런 바람의 날이 3,000일을 넘겼고 며칠을 더 보태고 있으니 속이 타들어 갑니다.

콜트-콜텍 노동자들과 장기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볼 때마다 떠오르는 시가 있습니다. ‘시인이 된다는 것은 끝까지 가보는 것을 의미하지. 행동의 끝까지 희망의 끝까지 열정의 끝까지 절망의 끝까지’ 밀란 쿤데라의 시처럼 이 땅의 노동자들은 끝까지 해볼 만큼 끝까지 해봤습니다. 행동의 끝, 희망의 끝, 열정의 끝, 절망의 끝까지 모두 해봤습니다. 이제 더 많은 연대의 힘이 모여 세상이 희망의 대답을 내놓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가당치 않은 꿈일까요? 그래도 <콜밴>은 노래합니다. ‘포기하는 자에게 이루어지는 꿈이 있던가. 기다려달라는 꿈이 있었던가.’

민정연 / <희망의 노래 꽃다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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