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모처럼 꽃다지의 노래 ‘반격’을 들었습니다. 노래를 듣고 있자니 가슴이 더욱 답답해져 ‘일어나길 기다려’를 연이어 듣다가 ‘기다리기는 무얼 더 기다려. 충분히 기다렸단 말이다.’ 속으로 버럭 해버렸습니다.

노래 ‘반격’은 2000년에 만들기 시작해 2001년에 완성한 노래입니다. 2000년은 반 아셈회의 투쟁으로 기억하는 해입니다. 반 아셈 집회를 하고 행진대오는 회의장인 코엑스로 향했습니다. 행진대오는 쓰레기차 바리게이트에 막혀 잠실야구장 앞에서 더 이상 나가지 못했습니다. 누구도 선뜻 앞장서지 못한 채 앞에 있는 무리에게 빨리 바리게이트를 넘어서라고 그러면 우리가 따르겠다고 함성을 질러댔으나 쓰레기차 바리게이트 앞에서 행진대오는 서성이고 있었습니다. 그때 행진을 이끌던 선두차량에서 “집회를 마치겠습니다. 이제 해산하십시오”라는 방송이 나오자 사람들은 야유를 퍼부었습니다. 구호도 몇 마디 외쳤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뿐이었습니다. 망연자실 몇 시간을 서성이다 발길을 돌릴 때의 참담함. 더 이상 물러설 곳도 없는데 야구장 앞에서 나는 함성보다 작았던 우리의 목소리. 말로 형언하기 힘든 패배감과 분노. 그냥 해산하라던 지도부를 욕했으나 바리게이트를 넘지 못한 건 우리 자신이었습니다.

이미 수년간 자행된 노동자에 대한 탄압, IMF이후 어디 하소연할 수 없이 자행됐던 정리해고. 싸움은 열심히 했으나 계속 얻어맞으며 밀려나기만 했습니다. 위화도 회군도 아니고 야구장 회군을 해 돌아와 꽃다지 사람들은 회의를 했습니다. 그 회의에서 가장 많이 나왔던 말이 ‘반격’이었습니다.

더 이상 물러설 곳도 없는 벼랑 끝에서 노동자 민중이 살아남을 길은 무엇인가? 한발만 뒤로 물러서면 낭떠러지인 신자유주의시대. “‘반격’만이 우리가 살 길인데 우린 너무 쉽게 잊고 지쳐가지 않나? 그래, 신자유주의의 공세에 대응하여 제대로 싸우자는 노래를 만들자.”‘반격’하자는 노래를 만들자. 그때부터 곡명과 주제를 ‘반격’으로 정하고 노래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노래는 빨리 나왔는데 편곡이 생각대로 나오지 않아 만들고 엎고 또 만들고 엎고를 반년 가량 했습니다. 절실한 만큼 잘 만들고 싶었던가 봅니다. 결국 잠시 보류하고 있던 ‘반격’ 작업에 다시 박차를 가하게 된 계기는 대우자동차 사태였습니다.

2001년 1월 15일 : 대우자동차 사측이 1,850명에 대한 정리해고 신고.
2001년 2월 15일 : 32년 만에 내리는 폭설 속에서 노조 간부들이 삭발을 하고 끝까지 싸우겠다는 기자회견을 함.
2001년 2월 16일 : 노조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던 희망퇴직안을 수용함. 그럼에도 불구하고 협상 결렬. 사측의 정리해고 통보.
2001년 2월 17일 : 사택에 등기로 해고통지서가 날아 듬.
2001년 2월 19일 : 공장 농성 이틀째. 경찰에 의해 피의 진압이 자행되고 공장 안 노동자들은 모두 쫓겨남.

정리해고를 늦추고 희망퇴직 등의 방식을 쓸 거라고 예측했던 노동자들 입장에선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을 겁니다. 당시 2차 구조조정을 성공리에 완료해 정권 재창출의 발판을 만들고자 했던 정권으로서는 대우자동차 구조조정은 반드시 성공해야만 하는 사안이었습니다. 대우자동차를 부도처리함으로써 생기는 부담이 아무리 크더라도 다른 2차 구조조정대상 노동자들이 찍소리 못하고 구조조정을 받아들이도록 하는 일벌백계의 정치 효과를 얻을 수 있으니 그들로서는 속전속결로 밀어붙일 만 했습니다.

▲ 한국지엠 부평공장에서 한 조합원이 아베오 라인에서 작업하고 있다. 신동준

강고한 단결력을 갖고 싸우더라도 이길까 말까한 싸움에서 우리는 흔들렸습니다. 수년간 이어진 싸움에 지쳐있기도 했고, ‘회사가 공중분해 되는 것보다는 회사가 살아야 우리 일자리도 그나마 지킬 수 있지않겠냐’는 유혹과 협박을 떨치기 힘들었을 겁니다. 노조집행부를 중심으로 한 결연한 투쟁의지 한편에선 구조조정을 받아들이자는 분위기 또한 노동자들 사이에 팽배했습니다.

끝장을 봐야하는 상황에서 한 발짝 뒤로 물러난 순간 머지않은 미래에 노동자들을 기다리고 있는 건 더 지난한 싸움이라는 걸 많이 겪었음에도 우리는 한 발짝 두 발짝 뒷걸음질 치지 않았던가요? 그리고 결국은 모든 것을 빼앗기고 길거리로 내몰렸습니다.

초인종이 울리고 도장가지고 나오라는 집배원의 말에 어리둥절해서 나온 노동자 혹은 그 가족이 우편물 등기수취인란에 도장을 찍는 순간, 정리해고의 절차는 마무리됐습니다. 일평생 젊음을 바쳤던 우리 회사, 나의 공장에서 쫓겨나는 절차는 너무나 간단했습니다. 대우자동차 노동자들이 처절히 싸웠으나 공권력에 의한 진압은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신속하고 무자비했습니다. 그렇게 분노로 시작한 2001년 내내 수많은 사업장에서 노동자들이 점점 더 무참히 짓밟혔습니다. 2002년에도, 2003년에도……. 그 후로도 지금까지 계속…….

몇 년 후, 베네수엘라에 머물게 된 제 친구가 각국에서 몰려든 활동가들에게 대우자동차 노동자 진압광경을 보여주었더니 “한국 사람들은 왜 이렇게 잔인하냐?”라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그 친구가 “너희는 총으로도 쏘아 죽이면서 저 진압장면을 보고 잔인하다고 하는가?” 라고 했더니 “총은 한 방으로 끝난다. 저렇게 곤봉으로 때리고 발로 짓밟는 행동은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 행동이다. 저런 진압이 훨씬 더 반인권적이고 비도덕적이고 잔인하다. 공권력이 야비하다”라고 하더랍니다. 그 정도로 대우자동차 노동자 진압과정은 계엄 사태를 방불케 할 정도로 폭력적이었고 비열했습니다.

그로부터 십 수 년이 흘렀습니다. 세상은 나아지기는커녕 퇴행에 퇴행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2001년에 해고됐다 가장 마지막에 복직한 한국GM 노동자에게 말했습니다. “형, 현장 노동자 조직 더 촘촘하게 더 세심하게 잘 했으면 좋겠어요. 다시는 쫓겨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가 대답합니다. “나만 보면 슬슬 피해.” 돌아온 답에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2년 전 어느 사업장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 싸움에 정규직이 함께 싸우자는 제안이 부결됐을 때 금속노조 한 상근자에게 물었습니다. “같은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끼리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왜 당신은 금속에서 여전히 활동하고 있는가? 노동운동에 미래가 있느냐?” 그가 대답했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 싸움에 함께 하자고 투표한 30%의 조합원들이 있지 않느냐? 그들을 믿는다. 그 신뢰와 희망을 더 키워야 합니다.” 돌아온 답에 숙연해집니다.

무엇을 할까요? 어떻게 할까요? 오늘도 십여 년 전처럼 머릿속에 떠오르는 말은 그저 이 말 뿐입니다. “반격.”

<반격> 유인혁 작사, 작곡 / 꽃다지 노래

1. 어깨를 걸고 가슴을 펴라 이제 다시는 거짓 약속에 속지를 마라
주먹을 쥐고 함성을 외쳐라 진정한 자유는 우리의 움켜쥔 두 손에 있다

가진 자의 탐욕 속에 무너지는 삶을 보라
언제까지 저들의 배를 불려야 하는가

2. 어깨를 걸고 가슴을 펴라 이제 다시는 거짓 약속에 속지를 마라
주먹을 쥐고 함성을 외쳐라 진정한 자유는 우리의 움켜쥔 두 손에 있다

신자유주의의 폭풍 앞에 내몰리는 삶을 보라
언제쯤이 되어야 저들은 만족하는가

반격! 점점 더 멀어지고 있는 우리의 행복을 위해
반격! 점점 더 빼앗기고 있는 우리의 권리를 위해
반격! 점점 더 멀어지고 있는 우리의 행복을 위해
반격! 점점 더 빼앗기고 있는 우리의 피땀을 위해

반격(어깨를 걸고) 반격(가슴을 펴라)
반격(주먹을 쥐고) 반격(함성을 외쳐) 반격

민정연 <희망의 노래 꽃다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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