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2시 반. 해고된 비정규직 노동자의 하루가 시작된다. 300여부의 신문은 3시간을 꼬박 돌려야한다. 5살, 3살 두 아이를 챙겨 아침 8시까지 어린이집에 맡기고 곧장 병원으로 향한다. 작년 파업 때 다친 손가락은 지금도 계속 통원치료 중이다. 한 시간의 물리치료를 받고, 쌍용자동차 지부 사무실에 오면 아침 10시. 낮에는 공장 앞 1인 시위, 선전전,
88만원 세대… 과연 현재 나는 어떠한가 생각해 본다. 1993년 6월 당시 대기업이었던 쌍용자동차에 입사했다. 젊고 젊은 20대 중반. 대기업에 입사해 3개월 만에 정규직으로 채용됐다. 어떻게 보면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 자동차 회사가 있어 다행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회사가 대기업이고 당시의 국내 열손가락 안에든 모 그룹에 속해 있으니 말이다.
어지간한 아르바이트는 다 해봤습니다. 전단지 돌리기, 프렌치 레스토랑 서빙, 노점에서 꽃 팔기, 지하철에서 귀고리 판매 등등. 고등학교를 그만 두고 난 다음에 먹고 살기 위해 일을 시작했습니다. 일하지 않으면 먹을 수 없었습니다. 다른 알바 자리 많은데 왜 공장에 가니? 어떤 일은 할만 했고 어떤 일은 정말이지 ‘내가 이 돈 벌려고 이렇게 일해야
유난히 눈이 많이 내렸던 작년 겨울. 충청도 어느 곳에서 함박눈을 보니 문득 평택 칠괴동이 생각나 쌍용자동차 한 해고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평택에도 눈이 많이 오나요?’하고 물으니 하늘만 쨍쨍 하단다. 그래서 서로는 ‘작년 여름에 물마저 끊긴 공장에서도 비가 오지 않더니 평야지대 평택엔 눈조차 구경하기 힘들구나’
정리해고란 기업이 노동자를 ‘정리’하는 것을 말한다. 1998년 2월 긴박한 경영상 이유가 있을 때 정리해고를 할 수 있도록 법이 바뀌었다. 해고가 불가피한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 이와 관련해 누가 봐도 합리적이라 인정할 만한지 최근 사례를 곰곰이 따져보자. 캐리어에어컨이 노동자의 절반을 자르겠다고 발표했다. 그 뒤 알아서 2백 명이
2009년 8월 6일, 쌍용 자동차 노동자들은 77일간의 옥쇄 파업을 마치고 공장 문을 나섰다. 그로부터 200여일이 지난 지금 파업 참가 노동자들은, 쌍용 공장은, 그리고 우리 사회는 어디쯤에 서 있는 것일까? 미행美行과 쌍용 파업 참여 노동자, 가족들 그리고 금속노조를 비롯한 다양한 노동, 정치, 사회 단체들과 현장 활동가, 르포작가, 교수, 작가, 블
쌍용 다방, 쌍용 이발소, 쌍용 모텔…… 쌍용의 명칭을 단 가게들을 지나쳐 아파트 단지에 다다랐다. 단지 내 1,500세대 중 150세대가 쌍용차에 근무하거나 근무했던 이들이다.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 복도 어딘가에서 어색한 인사조차 건네지 못하고 서로를 외면하는 이웃이 있다. ‘쌍용 가족’으로 불리고 &lsq
지난 해 여름을 뜨겁게 달구었던 쌍용자동차지부 노동자들의 파업이 끝난 지 훌쩍 반년 이상을 넘겼다(2009년8월6일 48:52 합의를 끝으로 쌍용자동차지부의 77간 파업이 막을 내렸다). 대규모 정리해고 문제를 둘러싸고 자본과 노동자들의 대리전으로 인식되었던 77일간의 비타협적 파업투쟁은 새로이 단장된 쌍용자동차 도장공장처럼 우리의 뇌리에서 잊혀져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