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집회 1.

문제가 발생한 다섯 곳 사업장을 차례로 항의 방문한다고 했습니다. 쉴 틈 없이 이어지는 일정에 피곤했지만, 집회 관계자가 아니라 ‘순수한 집회참가자’가 돼보고 싶었습니다. 문제 사업장 본사 건물 앞에서 사회자가 5분 동안 몇 마디를 외치더니 다른 곳으로 가자고 합니다. 이번에도 5분 동안 조근조근 말하더니 다음 장소로 가자합니다. 두어 시간 동안 다섯 곳 사업장 항의 방문을 마쳤습니다. 다른 날과 달리 <꽃다지>가 왔으니 특별히 정리집회를 하겠다면서 참가자들이 한마디씩 하더니 <꽃다지>에 고맙다며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러주었습니다. 이날 저녁 이들은 <꽃다지> 콘서트에 오더니 고맙다는 인사를 한 번 더 했습니다.

 

어떤 집회 2.

미국기지 반환 촉구 집회를 한다고 했습니다. 이날 <꽃다지>는 연대공연을 하기로 했습니다. 몇몇 연사가 나와서 각자 1~2분가량 차분히 말하고 <꽃다지>의 공연이 이어졌습니다. 한참을 아무것도 안 하고 있어서 궁금해 하는데 정부청사에서 양복을 차려입은 공무원이 집회 대오 앞으로 나왔습니다. 집회사회자가 마이크를 사용하지 않은 채 그에게 몇 마디 하더니 몇 쪽의 종이 문건을 건네고 악수를 하였습니다. 그러더니 집회 끝났다고 합니다.

첫 번째 집회는 2005년 일본공연 중 참여한 이주노동자 집회이고 두 번째 집회는 동경공연 중 참석한 오키나와 미군기지 철수 집회입니다. 언젠가 일본 메이데이 집회에 참석했는데 동경 시내를 관통하는 시위행렬은 신호등 신호에 맞추어 멈춰 서기도 했습니다. 갸우뚱하면서도 마치 소풍이라도 나온 것처럼 집회하는 모습이 부럽기도 했습니다. 그로부터 몇 년 뒤 일본 방문했을 때 들은 이야기는 이전과 조금 달랐습니다.

한국의 홍대 거리 같이 젊은이들이 북적이는 동경 시부야 거리 한복판에서 휴대용오디오기기를 틀면서 몇 명의 젊은이들이 집회하여 일본사회가 발칵 뒤집혔다고 합니다. 경찰이 출동하고 한바탕 난리법석이 났다고 합니다. “고작 휴대용오디오기기를 틀어서 소리가 얼마나 난다고 호들갑을 떨까요?”라는 질문에 일본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그 변화의 이유에 대한 대화를 나누다 내린 결론은 평생고용을 보장하던 일본 사회가 경기침체로 고용불안이 심화하니 사람들이 점점 과격하게 변하는 거 같다는 것이었습니다.

▲ 왜 일터에서 쫓겨난 노동자가 이 괴로운 수행을 해야 하는 것인지 한국의 현실이 새삼스럽게 더욱 원망(怨望)스러웠습니다. ‘이 힘든 행위를 칼바람 맞으며 온종일, 다섯 날을 하겠다는 건가? 쫓겨난 것도 서러운데 이런 고행까지 하면서 투쟁해야 하는 거야? 그래야 좀 봐주는 거야?’ 지난해 12월22일 기륭분회 조합원들이 오체투지 행진을 하고 있다. 김형석

뜬금없이 일본의 한가로운 집회 풍경이 떠오른 건 연말연시에 있었던 노동자들의 오체투지 투쟁 때문입니다. 먼저 두 무릎을 꿇고 두 팔을 땅에 댄 다음 머리가 땅에 닿도록 하는 절, 오체투지. 2014년 말 기륭노동자들이 오체투지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사무실에서 혼자 해보았습니다. 딱 한 번 하고 나서 머리가 비어버렸습니다. 2008년 기륭노동자들이 삼보일배를 할 때 함께 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고작 몇 시간을 하고서 다음날 출근을 못 했습니다. 오체투지는 삼보일배에 비할 바가 아니었습니다. 종교인들이 깨달음을 얻기 위해 혹은 원망(願望)을 달성하기 위해 스스로 괴로운 수행을 하는 것이야 뭐라고 참견하고 싶지 않습니다. 왜 일터에서 쫓겨난 노동자가 이 괴로운 수행을 해야 하는 것인지 한국의 현실이 새삼스럽게 더욱 원망(怨望)스러웠습니다. ‘이 힘든 행위를 칼바람 맞으며 온종일, 다섯 날을 하겠다는 건가? 쫓겨난 것도 서러운데 이런 고행까지 하면서 투쟁해야 하는 거야? 그래야 좀 봐주는 거야?’

한국의 노동자가 시위할 때마다 어김없이 들려오는 지청구가 있습니다. 철도노동자가 파업하면 시민을 발을 묶어놓는 이기적인 행동이라고 합니다. 대기업노동자가 파업하면 귀족노동자가 제 살길만 챙기려 한다고 합니다. 중소기업 노동자가 파업하면 그 노력으로 차라리 다른 직장을 알아보라고 합니다. 점잖게 시위에 동조한다는 이들조차 선진국처럼 우아하게 재미있게 시위를 해보라고 합니다. 선진국도 한국에서와 같은 상황으로 내몰리면 폭동에 가까운 시위를 한다는 것은 애써 외면하면서 말입니다.

이 땅의 노동자가 유난히 과격합니까? 동의하지 못하겠습니다. 폭동수준의 시위가 일어나지 않는 한국사회가 이상하기만 합니다. 한국 노동자가 과격하다면 과격한 시위를 부추기는 건 이 사회입니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비율이 32%가 넘어 파업해도 기계를 멈출 수 없는 참 기업하기 좋은 나라 한국입니다. 정규직의 노동조합 가입률 16.5%, 비정규직의 노동조합 가입률 2.8%밖에 되지 않는 참 온순한 나라 한국입니다. 용역 깡패를 사서 노동자를 패고 깔아뭉개도 되는 나라, 이에 적극적으로 동조하는 국가기관이 행세하는 나라, 잠시의 불편함도 견디려 하지 않는 시민의 나라. 이 땅에서 노동조합을 한다는 것, 노조원이라는 것 자체가 불온한 땅에서 노동자가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우아한 방법이 무엇입니까?

“이렇게 사람이 죽어 나가도 본체만체하는 세상, 어떻게 해야 우리를 바라봐주겠나? 열다섯 명이 죽어도 돌아보지 않는다면 우리 모두 한날한시에 죽으면 바라봐줄까? 그렇다면 우리 다 같이 죽자.”

쌍용차에서 열세 번째 장례식을 치르던 날 흰머리 성성하던 노동자의 절규는 이후 열세 번 더 이어졌습니다. 그제야 우리는, 시민들은 돌아보았습니다. 그럼에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고 있습니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나의 무너진 삶을 돌아봐 달라. 내 일터로 돌아갈 수 있도록 연대해 달라’고 하늘에서 길거리에서 외치는 노동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목숨을 담보로 외치지 않아도 바라봐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심오한 어떤 사상을 떠나 사람으로서의 인지상정이 아닐까 합니다. 이런 연후에야 우아한 시위를 하라는 요구도 재미있는 시위를 하라는 지청구도 할 수 있는 것 아닐까요? 2015년 우리 노동자들도 내 몸 상하지 않는 소풍 나온 듯 한가한 풍경으로 보이는 시위를 해보고 싶습니다.

민정연 / <희망의 노래 꽃다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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