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0일에 고용노동부 장관이 통상임금 관련하여 발표한 기본입장을 읽어보셨는지요?

“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을 위하여 국가의 모든 역량을 결집해야 하는 때에 통상임금을 둘러싸고 노사간 소송이 증가하는 등 갈등이 커지고 있는 최근의 상황에 대하여 안타까운 마음과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태가 장기화되어 산업현장의 혼란이 심화될 경우 우리 경제 전체에 큰 타격을 주고, 결국에는 노사 모두 피해자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노사정이 하루 빨리 지혜를 모아 슬기로운 해결책을 찾아야만 하겠습니다. (중략)

특히, 2016년 정년 60세 연장법의 차질 없는 시행에 대비하고, 근로시간 단축과 청년 일자리 창출 등 당면한 과제들을 완수하기 위해서도 통상임금에 관한 법령정비와 더불어 기업의 인사노무관리시스템 및 임금체계의 합리적 개편이 요구되며, 이는 노사의 적극적인 참여와 협력이 있어야 성공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이에 노사정 및 공익 대표가 함께 통상임금에 관련된 현장의 실태와 문제점을 진단하고 합리적인 제도개선 방안과 보완대책에 대하여 협의할 것을 노사 양측에 제안합니다.”

말로는 머리 맞대고 제도 개선하자는 제안을 하고 있는데, 왜 제게는 “안 그래도 돈 쓸 일 많으니까 입 다물고 조용히 찌그러져 있어주세요”로 들릴까요? 고용노동부 홈페이지에 가보면 고용노동부의 비전과 임무가 제시돼 있습니다. ‘고용률 70% 달성, 일자리의 질 향상, 활력 있고 안전하며 든든한 일터 조성, 미래창조형 상생의 노사관계 구축을 통하여 국가발전과 국민행복을 달성’이 고용노동부가 자임하는 임무입니다.

공평무사한 어휘를 사용하고 있으나 실은 고용하는 사람, 자본가의 입장에서의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고유 업무로 인식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나마 이름만이라도 ‘노동부’에서 고용정책 총괄 부처로서 역할을 분명히 하기 위해 고용정책의 총괄 기능을 명기하고, 산업재해 예방과 근로자 건강보호 등 중요성을 고려하여 산업안전보건 기능을 추가하겠다는 취지로 ‘고용노동부’로 개명할 때 노골적으로 드러난 것이기도 합니다. 이제 한국에 말이라도 노동자만을 위한 부서는 없습니다.

몇 해 전 노조에서 상근하던 친구가 캐나다에 가서 올렸던 글이 생각납니다. 토론토의 지하철을 타고 다니다보면 캐나다 노동부에서 붙여놓은 포스터를 자주 보게 되는데, 그 포스터를 볼 때마다 한국의 투쟁사업장 생각이 더 난다고 했지요. 포스터 내용을 아래와 같습니다.

당신의 일은 얼마나 안전합니까?
작년에 49,000명의 젊은 노동자들이 다치거나 사망했습니다.
마이크도 그 중 하나입니다. 마이크의 죽음은 막을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당신은 권리가 있습니다. 권리를 알아야합니다. 권리를 이용하세요.
- 위험한 작업을 거부할 권리
- 작업장에서 일어날 위험에 대해 알 권리
- 노동의 건강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참여할 권리

▲ 저는 몸 전체에 중화상을 입었습니다.
▲ 제 형제는 좋아하던 일을 하다 생명을 잃었습니다.
▲ 제 약혼자는 일터에서 감전사했습니다.

위에 소개한 포스터는 캐나다 온타리오 주의 '작업장 안전과 보험국'에서 붙여놓은 포스터라고 합니다. 포스터에는 노동자의 권리와 문의처를 써놓은 스티커가 붙어있어서 관심 있는 사람들은 그 스티커를 떼어가서 노동부에 문의한다고 합니다. 한국에도 근로복지공단에서 ‘작업장 안전과 보험국’에서 하는 일과 비슷한 업무를 하고 있기는 합니다. 산재당해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노동자의 편이라고 보기에 참 민망하기 짝이 없습니다.

‘작업장 안전과 보험국’의 홈페이지에는 산업안전을 위한 노동자의 권리 중심의 문서들만 집중해서 올려놓아 쉽게 관련 자료들을 찾을 수 있다고 합니다. ‘사업주와 근로자 모두가 상생과 열정으로 일할 수 있는 대한민국’을 만들고 ‘근로자와 사업자 모두에게 힘이 되는 공단’이 되겠다는 한국의 근로복지공단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지향을 갖고 일하고 있는 것이지요. 고용노동부나 근로복지공단이나 순전히 노동자 편에서 노동자의 살 길을 모색하는 부서는 현재 이 땅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다른 나라를 부러워하기에는 너무 많은 노동자들이 길거리로 쫓겨나고 있고 그나마 일터에 남아있는 노동자들도 불안정노동의 현실은 엄혹하기만 합니다. 어떤 이들은 이 현실이 MB 때문이라거나 그네가카 때문이라고들 하지만 그 이전의 정부라고 노동자 친화적이었나 곱씹어보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노동악법의 대부분이 ‘그땐 그래도 좋았지’라고 하는 그 시절에 만들어졌다는 걸 상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도 ‘듣는 시늉’이라도 했다면 그건 아마 우리의 쪽수와 단결이 무시 못 할 수준이었기 때문 아닐까요?

고용노동부를 온전한 노동부로 근로복지공단을 믿을 수 있는 부서로 만드는 일을 저들이 해 주지 않을 것이고 결국 노동자의 힘으로 바꿔야 합니다. 싸우는 이들의 절박함과는 달리 일천일 동안, 이천일 동안 싸우고 있다는 장기투쟁사업장 소식이 많아지면서 조금씩 무감해지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이런 공동체가 건강하게 오래 유지할 수는 없을 텐데 너무 많은 이들이 강 건너 불 보듯 싸움을 관망하기만 하고 있는 이유를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대우자동차 파업 투쟁 후 가장 마지막에 현장에 복귀했던 한 노동자가 그러더군요 “현장 동료들이 나만 보면 슬슬 피해”라고……. 다시는 그때 그 무참했던 상황을 겪고 싶지 않으니 피하고 싶겠지요. 허나 피한다고 피해질 일이 아닌 것을 슬슬 피하던 그 동료도 잘 알겁니다. 다만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살아가기엔 감당해야할 것들이 너무 많으니 외면하고 싶었던 거겠지요. 그 동료부터 다시 꼬십시다. 커피 한 잔 건네며 술 한 잔 기울이며…….

그래서 쪽수도 키우고 많아진 쪽수만큼 커진 에너지의 총량만큼 더 힘내서 노동자를 위한 나라를 스스로 만들어 봐야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우리도 캐나다의 노동부 같은 노동부 좀 가져 보자고요. 노동운동하는 선배들에게 들었던 말 중에 아직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말이 있습니다. “쪽수가 힘, 단결이 무기, 버티면 이긴다.”

민정연  <희망의 노래 꽃다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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