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풍경 01.

그날 4‧20 ‘장애인의 날’ 행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대학로를 막고 하는 행사라 동분서주하고 있는 와중이었음에도 멀리서 팔짱을 끼고 걸어오는 노년의 부부의 다정한 모습을 보며 ‘저렇게 늙어 가면 좋겠다. 참 곱게 늙으셨네’라고 느끼며 흐뭇한 미소를 짓다가 그들의 한마디에 얼어붙었습니다. “우리가 낸 세금 가지고 저들 좋은 일만 하라고 하네. 세금 한 푼 안 낸 것들이 양심도 없어.”

# 풍경 02.

“이제 그만 우려먹어라.” 영화 ‘친구’에 나오는 대사인 “고마해라 마이 묵었다 아이가”가 뒤따라 나올 거 같은 저 말을 종종 듣습니다. 6월27일 대한문 앞에서 <꽃다지> 거리 콘서트 1 ‘침묵은 똥이다’를 할 때도 저 말을 들었습니다. 잘 차려입은 중년의 여인으로부터…… 순간, ‘우리가 뭘 어쨌다고? 아들딸,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은 참사의 진상이 어떠했는지 이해할만한 설명조차 제대로 전해 듣지 못했고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어느 누구도 흔쾌히 옷 벗은 사람도 없는데 무얼 했다고 그만하라는 겁니까?’ 속말을 중얼거리며 억울한 심정이 되었습니다. 한술 더 떠 유가족이나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규명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요구하지도 않은 ‘특례입학제’나 ‘보상금’ 문제를 들먹이며 이기적이라는 비난을 서슴지 않고 있습니다.

# 풍경 03.

“제대로 단식을 하면 그 시간을 견딜 수 있어? 벌써 실려 갔어야 되는 거 아냐?” 새누리당 안홍준 의원이 어느 인사청문회에서 동료 의원에게 했다는 질문입니다. 유가족의 단식을 폄훼했다는 비난이 일자, 그는 “당시 25일째인 단식의 위험성에 대해 의사 출신 후배 의원에 사적으로 물어봤던 것인데 폄훼하려는 것처럼 잘못 비춰지게 됐다. 그러나 이 또한 저에게서 비롯된 것이기에 세월호 유가족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공식으로 사과했습니다.

자식을 잃고 진상이라도 알기 위해 ‘세월호 특별법’을 요구하며 단식하는 유가족의 건강을 염려하기에 앞서 의심 어린 눈초리를 보낸 것 자체가 유가족의 마음을 전혀 공감하지 못한다는 반증일 텐데 그 문제의식은 전혀 없고 억울하기만 한가 봅니다.

애써 눌러 담고 있는 슬픔과 분노, 억울함을 끄집어내고 가슴에 대못을 박는 말을 하는 사람들은 대관절 어떤 사람들일까요? 특별한 악한일까요? 엉뚱하게도 ‘때려잡자 공산당’이라는 문구와 함께 뿔 달린 북한괴뢰군의 모습을 그려 넣었던 반공 포스터가 떠오릅니다. 알고 보니 북한 사람들도 우리와 같은 생김새라는 걸 처음 알았을 때의 황망함도 떠올랐습니다. 동시대를 사는 사람으로서 이웃의 고통을 헤아리지 못하고 상처를 들쑤시는 저 말을 한 사람들이 괴물처럼 느껴지지만, 알고 보면 ‘보통 사람’이라는 걸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타인의 아픔을 공감할 줄 모르는 사회,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는 사회의 단면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또 하나의 사례일 뿐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곳에서 비일비재하게 벌어지는 일입니다. 위에 열거한 사례는 장애인과 재앙을 당해 목숨을 잃은 사람들의 일이지만 일터에서 쫓겨나 거리에 나설 수밖에 없는 노동자들이 항상 받고 있는 시선이기도 합니다.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은 세월호 특별법을 처리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진상 규명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수사권과 기소권 부여가 빠진 합의는 유가족에게 진상규명할 수 있다는 어떤 희망도 주고 있지 못합니다. 합의문에 ‘경제 활성화와 민생안정을 위한 법률안 중 양당의 정책위 의장이 합의한 법률안에 대해서는 우선적으로 처리하도록 노력한다.’는 내용도 있습니다. 대관절 세월호와 무슨 상관이길래 경제 활성화, 민생안정 운운하는 내용이 들어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세월호 때문에 경제 활성화가 안 되고 민생 안정이 안 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아니면 다른 법안과 세월호 특별법을 주고받겠다는 겁니까?

6.30선거 직전 농성장을 들락날락하면서 유가족이 원하는 특별법을 통과시키겠다고 기자회견을 했던 사람들이 선거가 끝나자마자 자신들의 호언장담을 무색하게 하는 합의문에 도장을 찍어 목숨 걸고 단식하는 유가족의 뜻을 저버렸습니다. 그래놓고는 “이게 정치이다.”라고 합니다. 정치권이 유가족을 저버린 지금, 유가족이 기댈 곳은 이웃 사람, 바로 우리뿐일 겁니다.

2014년 4월16일로부터 넉 달이 지난 지금, 많이 두렵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이 죽을 거라는 걸 상상조차 못 했던 이들의 죽음이 잊힐까 봐. 진상조차 밝혀내지 못하고 그 죽음을 헛되이 할까 봐. 그래서 결국, 습관처럼 같은 사고를 반복할까 봐.

단식농성을 하는 단원고 유민 양의 아버지 김영오 씨는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유가족이 바라는 것은 철저한 진상규명을 원하고 또 그것을 위해서는 권력에서 독립된 조사위원회가 강력한 조사권한을 가져야, 수사권과 기소권이 있어야 제대로 수사를 할 수 있다. 실무자 처벌이 아니고 책임자 처벌을 원하기 때문에 기소권, 수사권이 들어간 특별법을 원한다”라고.

그들의 죽음, 그들의 슬픔이 아니라 바로 나의 죽음이고 나의 슬픔일 수 있는 일을 반복하는 사회를 바로 잡는 일만큼은 살아있는 우리가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최소한의 행동입니다.

작년에 발표한 ‘보이지 않는 벽’을 읊조리며 제발 노랫말처럼은 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더욱 간절해지는 요즘입니다. 어느 집회에서 노래하다 느낀 소외감을 담은 노래입니다. 더불어 같이 살아보자는 노래도 들리지 않는 것처럼, 간절히 호소하는 노동자들의 땡볕에 그을린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무심한 표정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느꼈던 절망을 언제쯤이면 느끼지 않아도 될까요?

민정연 / <희망의 노래 꽃다지> 대표

 

보이지 않는 벽 (http://youtu.be/wWdULduInkA)

홍소영 작사, 작곡 <꽃다지> 노래

아무도 없는 것처럼 전혀 보이지 않는 것처럼

아무 말도 없는 것처럼 목소리조차 없는 것처럼

태양은 점점 더 뜨거워지고

보이지 않는 벽에 갇힌 이곳은

한여름 온실처럼 답답해져만 가네

아무 상관없는 것처럼 그저 다른 세상인 것처럼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존재하지도 않는 것처럼

태양은 점점 더 뜨거워지고

보이지 않는 벽에 갇힌 이곳은

한여름 온실처럼 답답해져만 가네

결코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보이지 않는 벽에 갇힌 이곳에

작은 구멍 틈 하나라도 낼 수 있다면

보이지 않는 벽에 갇힌 이곳은

또 다른 당신이 살고 있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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