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섬 프로젝트>는 오래오래 외롭게 싸우는 현장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알리기 위해 열네 명의 만화가와 르포 작가가 참여한 공동작업 입니다. 장기투쟁 현장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현장마다 만화가와 작가가 한 팀을 이뤄 만화와 르포로 보여주는 구성의 책을 내는 프로젝트입니다.

2년 전 한 르포작가로부터 프로젝트를 들으며 될까 싶었습니다. 상업성이 없어 보이는 책을 선뜻 출판하겠다고 나서는 출판사가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습니다. 무려 열네 명의 작가들이 참여하는 공동작업 이어서 ‘원고 많이 펑크 나겠다’라고 짐작했습니다. 게다가 한국에서 르포 장르가 독자적인 문학 장르로 인정받기보다 장문의 신문기사 정도로 대접받는 현실도 걱정했습니다. 차마, 잘 될 거라고 맞장구 쳐주지 못했습니다.

씩씩한 그 작가는 출판사를 찾아가 기획안을 내밀어 출간 약속을 받아냈습니다. 작가들이 머리 맞대고 현장을 선정하고 취재하러 다닌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누가 마감을 잘 지킬지 맞추는 퀴즈를 내기도 하더군요. 그래도 설마 했습니다. 그런데 올 여름 진짜 책이 나왔습니다. <섬과 섬을 잇다 : 여전히 싸우고 있는 우리 이웃 이야기>.

일곱 곳 현장, 열네 명 작가

애초의 기획대로 5년 이상 싸우고 있는 쌍용차, 밀양 송전탑, 재능교육, 콜트․콜텍, 제주 강정마을, 현대차 비정규직, 코오롱 등 일곱 군데 현장 이야기를 담은 <섬과 섬을 잇다>를 출간한 것입니다. 출간 소식에 <섬섬 프로젝트>와 아무 관계가 없음에도 내 일처럼 기뻤고 참여한 작가들의 정성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말이 있습니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말도 있지요. 책을 보며 이 말들이 참 싫어졌습니다. 책 속의 주인공들은 특별하게 고집이 세고 말이 안 통하는 외골수들이 아닙니다. 단지 상상해본 적 없는 엄청난 일이 자기의 문제로 닥쳤을 때, 도망가거나 아닌 척하며 고개 숙일 수 없었던 사람들입니다. 침몰해가는 세상 속에서 ‘가만히 있으라’를 온몸으로 거부했던 사람들이지요.’

<심리치유센터 와락> 대표 권지영 씨가 쓴 추천글의 일부입니다. 권지영 대표의 말처럼 평범한 사람들이 자본과 권력 때문에 장기투쟁이라는 유별난 삶을 살 수밖에 없지만 비난의 화살은 싸우는 이들에게 향하곤 합니다. 자본에 익숙한 우리는 “할 만큼 했으니 그만 하라”, “이런 식으로 싸우면 안 된다” 라면서 외면하기 일쑤입니다.

우리는 투쟁하는 당사자들에게 묻곤 합니다. “무엇이 가장 힘든가요?” 공통으로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같이 ‘사람들의 외면’이더군요.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막막한 싸움의 미래에 대한 두려움보다 ‘사람들의 외면’이 더 큰 상처가 되고 좌절이 된다는 것. ‘외롭게 싸우는 우리 이웃의 이야기 <섬과 섬을 잇다>’는 싸우는 이들에게 당신을 외면하지 않는 이웃이 있음을 느끼게 했다는 점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책입니다.

또 이 책은 싸우는 사람들에게 관심 없던 사람들이 싸우는 사람은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이었음을 알게 합니다. 그리하여 싸우는 이들에게 관심 갖고 연대를 이끌어내는 고리 역할을 하고 있으니 더욱 가치 있는 책입니다.

 

나는 <섬과 섬을 잇다> 발간 기념 북 콘서트를 기획했습니다. 작가들이 다른 기획자에게 부탁했다면 섭섭하게 생각했을 겁니다. 제안받기 전에 이미 북 콘서트를 기획하고 싶을 만큼 반가운 책이었습니다. 북 콘서트는 성공했습니다. 와락난타 팀, 콜밴, 윤영배, 꽃다지의 공연과 당사자들의 발언과 작가들의 소회로 구성한 콘서트는 무대나 객석이나 눈물과 웃음이 어우러진 뜨거운 열기로 가득 찼습니다.

기획한 당사자로서 그다지 후한 점수를 주기 힘들었습니다. 싸우는 당사자들이 자기 현장을 이야기하고 작가들을 소개하는 코너가 너무 길어 가장 중요한 작가 토크쇼 코너를 완전히 뺄 수밖에 없었습니다. 고백하자면 약속한 3분을 초과하는 현장 발언이 이어질 때마다 해당 현장에 대한 애정지수가 뚝뚝 떨어지는 듯한 시간이었습니다. 냉정히 평가하면 기획자인 제 실수였습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요?

기획자의 실수, 외면이 더 아픈 사람들

작가들을 소개하기 위해 무대에 선 이들은 짧게 5년, 길게 10년 동안 싸운 사람들입니다. 함께 연대해달라고 내민 손을 잡아준 이들도 있었지만 냉정하게 뿌리치고 외면한 사람들이 훨씬 많았을 겁니다. ‘일하고 싶다. 비정규직 차별하지 마라. 사람답게 살고 싶다. 자연 그대로 살고 싶다’는 요구가 과한 욕심도 아닌데 이제 그만하라는 사람들의 힐난하는 시선을 무수히 감내했을 겁니다. 세상을 향해 외치고 싶은 말이 쌓이고 또 쌓였을 겁니다. 많이 외로웠을 겁니다. 들어주는 이들이 있을 때 얼마나 하고 싶은 말이 많을지 헤아리지 못하고 “무조건 3분”을 외친 기획자의 잘못이지요.

한여름 서울 북 콘서트에 이어 12월5일 울산에서 울산 북 콘서트가 열렸습니다. 책의 주인공인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사는 동네입니다. 서울의 북 콘서트와는 다른 울산만의 투박함과 뚝심이 배어나는 공연이었습니다. 좀 더 많은 곳에서 <섬과 섬을 잇다> 북 콘서트가 열렸으면 좋겠습니다. 밀양에서 할매들의 구수한 입담에 자지러질 것이고 강정마을에선 집시들의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고, 인천에선 콜밴의 수줍은 공연에 따뜻해질 것이고……

다들 처절하게 싸우는 와중에 웃음을 잃지 않으려 애쓰는 이들이 개성 어린 빛깔로 변주한 북 콘서트를 통해 만나는 것. 이 과정에서 더욱 강하고 끈끈하게 이어질 섬과 섬을 기대하면서 말입니다.

싸우는 이들이 자신의 싸움을 말할 수 있는 기회가 다양한 형태로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무관심한 이들과 접점을 만들어가기 바라며 오늘은 ‘손을 잡아야 해’를 흥얼거려 봅니다.

‘손을 잡아야 해. 늘어만 가는 상처로 움츠린 손을 내밀어, 옆에 있는 또 다른 나의 손을 잡아야 해. 손을 잡아야 해. 희망의 날개를 잘린 채 맴도는 기계가 아니라, 뜨거운 가슴으로 조각난 세상을 이어야 해. 바람이 거세어지면 세상을 향해 기운차게. 어깨를 걸고 돌아가는 풍차처럼 당당하게. 절망이 깊어질수록 내일을 향해 뚜벅뚜벅 큰 걸음을 내디뎌 함께 할 모든 이와 손을 잡아. 손을 잡아야 해. 손을 잡아야 해. 손을 잡아야 해 손을’

자, 내민 손 잡아주시겠습니까?

민정연 / <희망의 노래 꽃다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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