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01.

수년전, 싸움 한 번 해 본 적 없던 어느 노조가 파업을 한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며칠 후 공연 섭외가 와서 가기로 했는데 한 가수가 심각하게 묻더군요. “거길 꼭 가야하나요? 썩 내키지 않아요.” 지금까지 파업한 적도 없고 연봉도 무진장 센 직종이었던지라 머리로는 그들도 노동자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가슴으로는 흔쾌히 함께 연대해야할 노동자라고 받아들이기 힘들었나 봅니다. 주변 사람들도 심심찮게 그런 의구심을 표했던 기억이 납니다. 집회장에서 만난 많은 이들이 미심쩍어 하는 분위기가 있었던 듯합니다. 귀족노조라는 프레임에 갇혀서 그랬던 건 아니었습니다. 본인들의 싸움뿐만 아니라 다른 노동자들의 싸움에 연대하는 걸 본 기억이 없던 게 가장 컸지 않았나 싶습니다.

문제제기가 들어온지라 공연가기 전에 짧은 내부 토론을 통해 그 사업장 관련한 내용을 좀 더 깊이 공유하고 그 노동자들을 만났습니다. 몇 번 더 공연 가면서 교류를 진행하며 알게 된 그이들은 다른 투쟁하는 노동자들과 별다르지 않았습니다. 일터에서 내몰린 사람들은 연봉이 얼마이건 다들 비슷하더군요. 그 후로 간간히 소식을 접했는데 며칠 전에 깜짝 놀랄만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노동조합이 적립하고 있던 돈을 지역사회활동에 사용하기로 대의원대회에서 결의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몇몇 지역공동체 공간을 지원한다든가 직접 지역공동체 활동을 모색한다든가 하자는 논의가 꽤 진지하게 진전되고 있었다는 사실이 놀라웠습니다. 다른 노조도 아니고 그이들이……. 그 조직이 최종적으로 무엇을 할지 결정하는 것과 상관없이 노동운동의 새 모습이 반갑고 고마운 마음이었습니다. 괜히 뿌듯하기까지 하더군요.

에피소드 02.

얼마 전, 토론회를 마치고 뒤풀이를 하고 있던 밤 12시 넘은 시각에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걸려오는 전화에 피로가 쌓이며 오전 9시부터 오후 10시까지만 섭외전화를 받겠다는 원칙을 세우고 그 시간 이외에 걸려오는 전화는 받지 않곤 했는데 그날은 왠지 받아야할 거 같아 통화를 했습니다. 어느 노조의 위원장 아무개라고 밝힌 그 분은 다짜고짜 꽃다지를 후원하는 노조가 몇 군데나 있냐고 물으시더군요. “없는데요” 라는 제 대답이 떨어지기 무섭게 “아니, 어떻게 그럴 수 있냐?” 화를 버럭 내시며 노조차원에서 꽃다지를 후원하고 싶다고 하시기에 술을 한 잔 하신 듯하니 내일 낮에 통화하자 하고 끊었습니다. 취중허언이라 생각하고 별로 기대하지 않았는데 다음날 다시 전화를 하셔서 노동운동과 노동문화에 관한 이야기를 장시간 나눴습니다. 아직 그 노조에서 조직차원의 후원을 결의하지는 않았으나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노동문화를 함께 지키고 싶다는 마음을 충분히 전달받은 것만으로도 고맙습니다.

노동운동이 사업장을 넘어 지역사회에 뿌리내리는 활동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온 건 꽤 오래됐습니다. 무조건 공장을 뛰쳐나가야 한다는 의견부터 세밀하게 지역사회 사람들과 소통할 방도를 찾는 움직임까지 다양한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실제로 지역에서는 문화공간을 만들어 다양한 작품으로 지역주민을 만나기도 하고, 누구나 들락날락할 수 있는 지역공동체 공간을 만들고 가꾸기도 하며 오랜 암중모색의 시간을 지나 하나둘씩 꿈틀꿈틀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어 반갑기 그지없습니다.

노동조합 바깥 공간에서 지역공동체를 만들려는 시도와 더불어 사업장 내에서 지역주민과 더불어 무언가를 나눌 수 있는 것은 없을까 생각해봅니다. 유명한 어떤 가수를 불러 즐겁게 즐기는 시간도 의미 있겠지만 그보다는 작지만 밀착한 만남을 기획할 수 있지 않을까요? 하다못해 일주일에 한 번, 벅차다면 한 달에 한 번씩이라도 정기적으로 동네 주민과 밥상을 앞에 두고 서로 사는 이야기를 오손도손 나누는 것은 어떨까요? 꽃다지도 몇 해 전에 진행하다가 중단한 점심시간에 찾아가는 ‘공장순회콘서트’를 다시 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다시 드는군요.

얼마 전 민주노총 위원장을 또 뽑지 못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으며 욕을 한 바가지로 하다가 ‘조합원 한 사람 한 사람이 뭐라도 해야지, 소위 노동문화일꾼이라고 자처하는 나부터 뭐라도 해야지 바꿀 수 있지 않겠나’라고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며 현장의 문화, 조직의 문화를 바꾸기 위한 실천을 고민했습니다. ‘지도부’라고 하는 사람들, 대의원이라고 하는 우리의 대변자들 욕만 해서야 무엇 하나 바뀌지 않으니 지금의 분기탱천을 이성으로 어떻게 풀지 고민이 깊어갑니다. 우리, 어떻게 해야 다시 패기 있는 민주노총 조합원 활동을 할 수 있을까요?

오늘의 노래 선물은 꽃다지의 ‘난 바다야’입니다. http://www.youtube.com/watch?v=n-EEOIkuSzc

민정연 / <희망의 노래 꽃다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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