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6월7일 금요일.
모처럼 환하게 웃었다. H-20000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유용하게 사용할 누군가에게 그 차를 전달하는 날.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의 미소는 그렇게 싱그러울 수가 없었다. 누군가의 말처럼 6월7일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은 천진난만했다. 오늘 같기만 하면 처음 싸울 때 그 기운으로 해볼 만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6월7일 금요일. H-20000 차량을 유용하게 사용할 그 누군가로 선정되었다는 연락을 받은 <꽃다지> 사람들도 입이 귀에 걸릴 정도로 싱글벙글 이었다. <꽃다지> 활동 22년 동안 이렇게 큰 상을 받은 적이 있었던가? “박래군입니다. H-20000 차량을 꽃다지에게……”로 시작하는 전화를 받고서 기쁨과 뿌듯함, 미안함과 중압감, 그야말로 만감이 교차하던 벅찬 날이었다.

수상 소감으로 “우리가 앞으로 2~3년쯤 더 노래할 수 있을까 걱정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이 차가 10년을 달린다고 하네요. 차를 받았으니 10년은 노래해야하는 건가요? 노동이 길거리로 쫓겨나거나 천대 받는 게 아닌, 그 아름다운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도록 꿈과 용기를 줄 수 있는 노래를 부르겠습니다.” 그런데 말하다보니 덜컥 겁이 났다. 10년이란 긴 세월을 약속할 수 있을까? 그래서 말미에 “마음이 닿고 건강이 허락하는 날까지 한뎃잠 자는 노동자들과 함께 노래하겠습니다”를 덧붙였으나 그 말은 아무도 기억하고 있지 않았다. <꽃다지>는 검은 머리 파뿌리가 될 때까지 노래하게 되어버렸다. 어떡하지……. 복에 겨운 고민에 빠졌다.

2013년 6월10일 월요일.
시간이 지날수록 못 받은 분들에 대한 미안함과 열심히 해야겠다는 책임감이 커지면서 겁이 덜컥 나긴 하지만 한편으로 그 옛날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 라고 했던 홍수환 선수처럼 동네방네 몇날며칠 자랑하고픈 마음 또한 감출 수 없었다. 아침에 H-20000프로젝트의 목적과 꽃다지가 자랑스럽게 감히 그 차를 받았음을 알리려고 트위터에 접속한 순간. 아……. ‘이것들은 우리가 하루라도 편히 웃고 기뻐하는 꼴을 못 보는구나.’

해고자 복직과 쌍용차 국정조사를 촉구하는 촉매제로써 기획된 쌍용차의 대표 차종 코란도를 재조립하는 H-20000 프로젝트. 불가능할 것 같았다. 그러나 서로서로 ‘함께 살자 희망 지킴이’가 되기를 자처하며 경비를 모았고 오랫동안 놓았던 일손으로 차를 만들 수 있을지 반신반의했던 해고자들은 머리가 아니라 몸의 기억으로 차조립에 성공했다.

모터쇼를 하던 그날은 모처럼 축제였다. 지난 대선 이전에 찾아왔던 유명정치인들의 약속이 허언으로 끝나고 길거리 천막 분향소마저 철거당하고 비닐쪼가리 천막으로 버티던 사람들이 만든 차. 분향소가 있던 자리에 들어선 화단의 꽃 한 송이에도 손대지 못하고 한편에 쪼그려 자던 사람들이 4년여 만에 철수세미로 기름때를 지우며 흘렸을 피눈물을 희망이라는 이름의 차로 선보이던 날.
이제 다시 에너지를 서서히 끌어올려 기운 차리고 할 수 있을 거 같았는데 삼일 만에 침탈당하다니…….

2013년 6월 20일 목요일.
H-20000 차가 처음 대한문으로 가는 날. 신문지쪼가리를 깔고 예배를 보고 있다. 1인시위도 불법이란다. 환풍기위에 올라가면 안 된단다. 경찰들은 며칠 새에 표변했다. 무법천지를 만들고 있는 건 바로 경찰들이었다. 남대문서 경비과장 ‘최성영’ 이름 석 자는 이제 고유명사가 아니라 최소한의 시민 권리조차 짓밟는 후안무치한 경찰을 일컫는 보통명사가 되었다.

▲ 지난 5월 3일 대한문 콘서트를 마친 후 쌍차 해고노동자, 베링거잉겔하임 해고노동자, 골든브릿지 해고노동자와 함께 한 <꽃다지>. 몇백일 천몇백일간 한뎃잠 자며 싸우는 사람들의 미소가 이렇게 환합니다. 공장으로 돌아가 아픔 속 감추며 웃는 웃음이 아니라 진짜 환하게 웃는 그순간을 만들고 싶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을 부르며 해고자들을 에워싸는데 가운데 선 노동자들이 외딴섬에 조난당한 사람들 같았다. 제 아무리 연대하는 우리가 있다 해도 채울 수 없는 것을 고스란히 짊어져야하는 사람들……. 우리들의 ‘고립된 희망’이 처연하다.

2013년 6월 13일 목요일.
친구가 감옥으로 끌려가는 걸 막지 못한 문기주 정비지회장은 친구 김정우 지부장에게 편지를 썼다. ‘언젠간 이런 일이 올 거라는 것을 자네도 알고 있었네. 내가 먼저 그 경험을 하였지 않은가. 좀 쉬시게. 자네가 쉬고 있는 동안 우리가 국정조사 실시와 해고자 원직복직을 반드시 만들어 내겠네. 아마 쉽지 않을 것 같긴 하지만 최선을 다 하겠네.

미안하네. 친구야. 대한문 걱정 너무 많이 하지 말고 41일간 단식 하면서 떨어진 체력을 구치소 안에서 조금이라도 회복할 수 있도록 노력 하시게나. 면회 자주 못가도 원망하지 마시게. 자네가 보기 싫어 안 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우리가 해야 할일이 있어서 자주 못가는 것이라 이해하시게. 친구야. 지켜주지 못해 미안타.’

문기주 지부장의 편지를 읽으며 르귄의 <환영의 도시>의 한 귀절이 떠올랐다. ‘좋은 시절에는 삶을 믿지만 나쁜 시절에는 오직 희망을 가질 뿐. 하지만 믿음이나 희망이나 본질은 같다. 마음이 다른 마음들과 세계와 그리고 시간과 맺어야만 하는 관계들……. 믿음이 없어도 사람은 살지만 그것은 사람다운 삶이 아니다.’

익히 알고 있는 말이다. 나쁜 시절이 너무 길어지니 쉬운 일이 아니지만 너무 힘들어 내게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다고 느낄 때, 그때는 잠시 당신 옆 사람의 믿음에 기대어도 괜찮지 아니한가. 희망의 고립을 견딜 수 없는 나는 아직은 우리 삶을 믿고 있다. 내 희망을 고립된 당신과 나눈다.

민정연 <꽃다지> 대표

저작권자 © 금속노동자 ilabo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