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 3.8 세계 여성의 날을 앞두고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 여성조합원들의 목소리를 담았습니다. 여성 노동자의 삶과 노동현장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더 평등한 노동현장을 만들기 위해 함께 투쟁하겠습니다.

인터뷰 후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묻자 “앞으로 멋있는 여성기획을 만들어 줄 거라 기대한다”라며 “여성이 목소리 낼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 달라”라고 말했다. 대전충북지부에 긴급한 사업이 많아 여성사업 추진하기가 쉽지 않았는데, 덕분에 마음을 다잡았다. 무겁지만, 기분 좋은 기대감을 전해준 고마운 이수정 조합원을 여러분께 소개한다.

어떤 일을 했나요?

저는 올해 스물일곱 살 이수정이라고 해요. 금속노조 조합원입니다. 자동차 부품회사 품질경영팀에서 사무직으로 일했어요. 중년남성이 열다섯 명 정도 함께 일했는데, 사무 보조 일을 했어요. 주로 보고서나 체크 시트를 정리하고, 총무 업무를 했어요.

일용직, 파견직, 계약직으로

고용 형태는 어땠나요?

이 회사에 일용직으로 채용돼서 1년 일하고, 파견직으로 2년, 계약직으로 1년 일했어요. 법률상 문제가 있어서 고용 형태를 바꿔가며 채용한 것 같아요. 사무직 채용 여성 중 80%는 저처럼 비정규직에 박봉을 받고 있다고 알고 있어요.

뭐만 하면 ‘여자라서’

일하면서 성차별, 성희롱을 당한 경험이 있나요?

입사 초기부터 듣기 불편한 말을 많이 들었어요. 친구를 소개해 달라거나,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어보면서 옷차림에 대해 평가하거나, 제가 사무실에 앉아 있으면 다른 부서 사람들이 여자애가 있어서 좋겠다는 등의 말을 했어요. 여성은 섬세해서 이런 걸 잘한다면서 저한테 문서를 손으로 직접 쓰라고 요구하기도 했거든요. 저 글씨 진짜 못 쓰는데, 너무 이상했어요.

‘여자라서’를 붙이며 커피 타라고 하고, 사람 접대하는 일을 시키면 정말 싫거든요. 자기가 할 수 있는 걸 여자한테 떠넘기는 거 같기도 하고, 뭐라고 설명하기 힘들지만, 너무 불쾌했어요. 특히 사수랑 팀장이 좀 집요하게 그랬어요. 물론 전반적으로 다 그런 분위기이기도 했고요. 좀 생각이 괜찮다 싶은 분도 있었는데 이런 문화를 못 버티고 결국 퇴사하더라고요.

3.8 세계 여성의 날을 앞두고 이수정 대전충북지부 개별조합원을 만났다. 지부 제공
3.8 세계 여성의 날을 앞두고 이수정 대전충북지부 개별조합원을 만났다. 지부 제공

시간이 지나니까 운전면허가 없으면 남자친구 집에서 밤에 어떻게 집에 갈 거냐는 둥 다분히 보이는 말들을 하고, 여성 직원들에 대한 이상한 소문도 내고, 성적 농담도 서슴지 않더라고요. 남자 직원들이 회사 홈페이지 사내 게시판에 새로 온 여성 직원들 사진을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외모 품평에 남자친구 있는지 물어보라고 시켰어요.

가장 힘든 점은 제가 자리에 있어도 사람 취급을 안 했어요. 아니면 제가 있어도 그런 행동을 해도 된다고 생각한 것 같기도 해요. 여성을 함께 일하는 동료가 아니라 그저 성적 대상화 해서 생각한다는 게 정말 별로라고 생각해요.

안타깝게도 이런 문제를 제기한 건 제가 처음이에요. 다른 팀에도 여성이 소수고, 여기와 비슷한 처지라고 알고 있거든요. 여성 직원들은 원래 당했으니까 신경 쓰지 않고, 오히려 남성 직원처럼 행동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그래서 저를 이상하다고 생각하더라고요. 이런 남성문화에서 살아남기 위해 여성 스스로 변한 것 같아 마음이 아파요.

변화의 시작, 폭발

부당한 대우를 받을 때 어떻게 대응했나요?

사회 초년생이라서 ‘불편하다, 하지 말라’라는 말을 잘 못 했어요. 이런 의사를 표현하면 나한테 불이익이 오지 않을까? 혼자 여자니까, 불리하지 않을까 싶었어요. 남성끼리 저만 나쁜 사람으로 만들 것 같은 불안감이 있었고요. 한 번은 회식 때 2차 가자는 걸 싫다고 명확하게 의사 표현했는데도, 가자면서 억지로 끌고 간 적이 있거든요. 그때 ‘여긴 내가 뭐라고 말해도 내 말을 듣지 않겠구나’하고 마음을 접었던 것 같아요. 그만두더라도 조금 더 당당하게 얘기해야 했는데 아쉽기도 해요.

당시엔 이거라도 해야지, 이거 아니면 돈을 못 번다고 생각했어요. 이 회사에서 일하면서 이미 자존감이 바닥인 상태여서 여기 아니면 또 어디서 직장을 구하겠나 싶었거든요. 그렇게 4년을 버티고 나니 제 성격도 많이 변했어요. 자존감이 낮아지고,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남들에 대한 경계심이 커진 것 같아요. 그러다 결국은 폭발하더라고요. 남성들에게 성희롱, 갑질을 당하면서 스트레스, 우울증이 심해지고 더는 참을 수 없어서 노동부에 신고했어요.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가 이수정 조합원과 노동부의 성폭력 사건 부실조사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지부 제공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가 이수정 조합원과 노동부의 성폭력 사건 부실조사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지부 제공

페미니즘에 관심 가진 계기가 있나요?

남성 중심문화 속에서 지내다 보니 자연스레 여성혐오, 페미니즘 이런 내용에 관심 많이 두게 됐어요. 여성 인권이 좀 더 나아졌으면 생각했고, 여성이 계속 당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서 대표로 나선 것도 있거든요. 남자들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얕잡아보고 저지르는 갑질을 경계하고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금속노조, 마스크로 만난 사이

금속노조는 어떻게 만났나요?

노동부에 진정을 넣고 나서 지인 소개로 음성노동인권센터에서 상담을 받았어요. 상담하고 음성노동인권센터 상담실장님이 저한테 마스크를 줬는데 거기 ‘금속’이라고 쓰여 있더라고요. 사실 이런 답답한 상황을 타파할 수 있는 게 또 있지 않을까 해서 알아보다 노동조합에 관해서 관심이 생겼어요. 그런 상황에서 ‘금속’이 쓰여있는 마스크를 받으니 바로 가입해야겠다고 생각했고, 바로 전화해서 가입했어요.

금속노조에 가입해서 무엇이 좋았나요?

솔직히 말해서 이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힘든 일이 많은데, 노동조합과 함께하니 마음이 놓였어요. 혼자라면 그냥 흐지부지했을 사건들이 세상에 알려졌고, 저를 지지하고 함께해주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어요. 새로운 경험을 했고 남을 위해서 이렇게 열심히 싸워주는구나, 세상에 좋은 사람도 있구나 싶더라고요. 저도 연대할 수 있을 때 연대해야겠다고 다짐했어요.

물론 앞으로 이 사건이 어떻게 해결이 될지 몰라서 좀 착잡한 기분이 들어요. 미래에 대한 불안감도 남아있고요. 시간이 지나면서 정리한 생각은 가해자들이 제대로 처벌받고 피해자가 더는 나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누구 편인지 모르겠을 노동부

신고 이후 노동부 대응은 어땠나요?

음성노동인권센터와 금속노조의 도움을 받기 전에 당연히 노동부가 저를 도와줄 거로 생각하고 진정을 넣었어요. 개인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은 노동부뿐이잖아요. 노동부가 사건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사측이 제출한 자료를 가감 없이 증거로 받아들였어요. 사측이 제 개인 블로그 중 일부를 캡처해 증거자료로 제출했어요. 제 사생활을 파고든 것 같아 기분이 나빴는데, 그 내용을 근거로 제가 평소 남성 혐오가 있다고 주장했어요.

여성 근로감독관이 사건을 맡아서 안심했는데, 그 내용을 증거로 받아들였을 때 정말 어이가 없고 분했어요. 복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여성 피해자를 가해자로 몰려는 행동이 너무 비열하다고 생각해요. 성희롱의 피해를 여성에게 묻는 일은 정말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일상의 회복

요즘 어떻게 지내요?

여러분의 도움으로 요즘은 자면서, 고양이들과 놀면서 무료한 생활을 하고 있어요. 가끔 음성노동인권센터에 들러서 일도 도와드리고, 음성 개별조합원 모임도 한 번씩 나가고 해요.

앞으로 계획은?

이제 책도 읽고 활동적인 걸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이번 사건을 마무리하고, 건강을 회복하면 일상으로 돌아가서 일자리를 새로 구해야 하겠죠. 인사를 다루는 팀에서 일해보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인사팀은 노동조합에 가입 못 한다고 하더라고요. 일단 했던 일 중에서 색다른 일에 도전해보고 싶어요. 체력이 받쳐줄지 모르겠지만 현장직도 한번 해보고 싶네요.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가 벌인 노동부 규탄 결의대회에서 이수정 조합원이 발언을 하고 있다. 지부 제공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가 벌인 노동부 규탄 결의대회에서 이수정 조합원이 발언하고 있다. 지부 제공

멋진 금속 언니들

금속노조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저는 금속노조에 여성 조합원이 많이 늘어서 비율이 비슷해졌으면 좋겠어요. 남성이 많은 곳은 아무래도 남성 중심문화가 있으니까요. 여성이 많이 늘어서 유리천장 같은 것도 사라졌으면 하고요. 또 여성으로서 부당한 일을 당하고 힘들 때가 많을 텐데 이런 자리가 생겨서 얘기도 나누고 서로 연대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지난번에 받은 ‘여성노동자 반짝이다’ 책 같은 걸 시리즈처럼 계속 만들어도 좋을 것 같아요. 그 책 읽으면서 여자라고 무시당하는 내용들에 정말 공감했거든요. 성폭력을 당하고, 피해를 호소하고, 실패와 좌절의 과정을 읽을 때 눈물이 났어요. 잘 해결되고, 산재 처리도 해서 다행이다 싶었죠. 그 책 보면서 금속 언니들이 정말 멋있다고 생각했어요. 꼭 얼굴을 보고 싶고, 악수도 한번 해보고 싶어요. 수고 많았다고 마음을 토닥여주고 싶거든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혹시 이 글을 읽고 있는 분 중에 저처럼 직장 내 성폭력으로 힘들어하는 분이 있다면 정말 도와드리고 싶어요. 처음 목소리를 내는 게 너무 어렵잖아요. 그런데 목소리를 내면 분명 함께 연대할 분들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니 조금만 더 힘을 내주면 좋겠어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꼭 기억해주세요.

저작권자 © 금속노동자 ilabo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