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 3.8 세계 여성의 날을 앞두고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 여성조합원들의 목소리를 담았습니다. 여성 노동자의 삶과 노동현장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더 평등한 노동현장을 만들기 위해 함께 투쟁하겠습니다.

대한이연지회에 여성조합원 인터뷰를 요청하니 대의원에 출마했으면 하는 조합원이 있다며 한 조합원을 추천했다. 이 조합원과 만나서 얘기 나눠보니 대의원이 된 모습을 상상하고 두근두근했다고 한다. 대의원으로 다시 만나 인터뷰하고 싶은 한송희 조합원을 소개한다.

대한이연에서 언제부터 일했나요?
대한이연은 자동차 엔진에 들어가는 피스톤 링을 제조하는 공장이에요. 저는 제품 창고에서 AS 부품을 포장해 내보내는 일을 해요. 대한이연이 세 번째 직장인데, 일한 지 10년 정도 됐네요. 다른 지방에서 일하다 대전에 왔어요. 입사 당시 대한이연은 급여조건이 좋았어요. 그렇게 일하다 보니 지금까지 일하게 됐고요.

다달이 빠지는 돈, 그 든든함

노동조합에 가입한 경험이 있나요?
저는 스물일곱 살에 대한이연에 왔어요. 오기 전까지 노동조합에 대해 몰랐어요. 아예 무지했으니까 거부감이랄까 그런 것도 특별히 없었죠. 여기 와서 노동조합에 관해 설명을 듣고 가입했는데, ‘이게 도움이 될까?’ 의문이 많았어요. 솔직히 월급에서 다달이 빠져나가는 돈이 있으니까 그만한 역할을 하는 걸까 싶기도 하면서, 한편으로 기대도 했어요.

노동조합의 힘을 느낀 때는 언제인가요?
노동조합이 있어서 좋았던 건 임금 관련 불편한 점을 노동조합에 얘기하면 전달되는 게 확실히 빠르더라고요. 그냥 관리자한테 얘기하는 것보다 회사가 훨씬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빨리 조치해주더라고요. 노동조합의 힘이 느꼈죠. 노동조합이 나를 대변해준다고 생각하니 든든하고 좋았어요.

한송희 조합원이 현장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 지부 제공
한송희 조합원이 현장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 지부 제공

무너진 신뢰와 회복

노동조합이 마냥 좋지는 않잖아요. 어떤 경험이 있나요?
노동조합이 항상 노동자의 목소리를 대변해주지는 않더라고요. 전 집행부 때 내연기관 감소니, 코로나 19니 하면서 사측이 강하게 나왔나 봐요. 그래서 그런지 전 집행부는 뭔가 필요한 것들을 요구해도 묵묵부답이더라고요. 제가 하도 뭐라고 하니까 나중에 찾아오지도 않더라고요.

제가 노동조합 일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지만, 저도 조합원이니까 얘기할 권리가 있잖아요. 노동조합 자체가 조합원의 얘기를 귀담아듣고 한 번 더 생각해야 하잖아요. 분명히 여성조합원들 의견을 전달했는데 전혀 반영하지 않더라고요.

그 집행부 활동가들도 열심히 한다고 했겠지만, 노동조합에 대한 신뢰가 많이 떨어졌어요. 그대로 시간이 지나니 그런 생각도 안 한 것 같아요. 있으나 없으나 똑같은 것 아닌가 싶고. 너무 실망을 많이 해서 저도 말 안 하게 되더라고요.

현재 지회 활동은 어떤가요?
지금 집행부는 꾸준히 조합원을 만나고, 여성조합원 간담회도 열어서 얘기를 들으려고 하더라고요. 간담회 하면서 이것저것 회사에 요구하겠다고 하는데, 신뢰를 빨리 회복하기는 어려웠어요. 계속 와서 “한송희 조합원, 이건 어때요, 저건 어때요?” 물어봐요. 잔소리만 듣고 가는데 노력하는 모습을 보니까 다시 믿어볼까 싶기도 해요.

침묵 속, 건방진 외침

현장에서 소수인 여성조합원들이 어떻게 목소리를 내고 있나요?
여성조합원을 모아놓고 간담회를 하면, 거의 조용해요. 현장 쉬는 시간이 10분밖에 안 되니까, 다른 현장에 계시는 분들하고는 서로 친분 있게 지내지는 못하거든요. 왜 아무 말도 안 할까 생각해보면, 처음에 “이건 아닌 거 같아요, 저건 아닌 거 같아요”라고 말해서 뭔가 바뀌었으면 저분들도 당연히 말을 했겠죠. 그런데 변화가 없으니 이게 뭐 한번 두번 말해도 어차피 변하겠나 싶고, 나 하나 말한다고 바뀔까 싶고 그런 마음이 들지 않았을까 싶어요. 또 여성조합원이 적다 보니까, 우리가 뭐 말한다고 얘기가 되겠나 싶고 여성조합원 목소리보단 남성조합원의 목소리가 더 많이 담길 수밖에 없다고 포기한 것 같기도 해요.

한송희 조합원은 어떻게 목소리를 내었나요?
저도 처음에 말을 잘 못했어요. 그런데 뭔가 ‘이건 아닌 것 같은데, 아닌 것 같은데’ 이런 마음이 쌓여서 한 번은 터지더라고요. 처음 한 번이 어렵지 한 번 하고 나니까 자꾸 불만을 얘기할 수 있었어요. 말하고 나니 속이 시원하고, ‘말하니 개선이 되는구나. 그럼 다음엔 이걸 해볼까’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 긍정경험이 중요한 것 같아요. 나의 행동이 변화를 일으키는 경험들이요.

20년, 25년 일한 분들 앞이라 건방져 보일 수 있지만 “이건 좀 이렇지 않나요”라면서 얘기를 다시 꺼내게 되더라고요. 제가 나이가 많지 않아 조심스러운 게 사실이에요. “지금도 괜찮은데 굳이 뭐 하러 해. 아유 괜히 또 시끄럽게. 왜 이렇게 나서. 젊은 애가 얼마나 안다고.” 이런 이야기가 들릴 것 같아서 겁이 나요.

한송희 조합원이 지회 집회에서 투쟁 결의 발언을 하고 있다. 지부 제공
한송희 조합원이 지회 집회에서 투쟁 결의 발언을 하고 있다. 지부 제공

움직일 힘이 필요해

노동조합 활동을 해볼 생각이 있나요?
지회장님이 대의원, 여성 대표해보라고 권하고 있어요. 저는 “제가 대의원 하면, 지회장님이 힘드실걸요” 하면서 웃어넘기죠. 말은 그렇게 해도 저도 직원이잖아요. 아무래도 눈치가 보여요. 제가 일하는 공정은 완전 현장이라기보다 약간 사무직과 섞인 애매한 위치예요. 그러다 보니 부담되기도 하더라고요.

얘기 들어보면 제가 간부로 있다고 해도 회의나 활동할 때 여성이 목소리를 낼 만한 타이밍은 보기가 힘들다고 해서요. 그래서 그냥 그러다 말았거든요. ‘여성 차원에서 이건 좀 신경 써야 하잖아요’ 했는데 남성이 많아서 ‘대를 위해서 소를 희생해야지’ 이렇게 돼 버리면 그냥 묻히는 거니까요. 그래서 선뜻 나서기가 쉽지 않네요. 나 하나 있다고 되는 게 아닐 것 같아서요. 그래도 언젠가 저를 움직일 무언가가 생길지도 모르겠네요.

내가 진급하지 못하는 이유

현장에서 차별을 느끼거나 봤나요?
대한이연에서 여성과 남성이라는 이유로 크게 차별하는 건 없어요. 제가 회사에 입사할 당시 회사가 여성, 남성 임금 차별을 없앤다는 시기에 들어와서인지 딱히 차별받았다는 느낌은 못 받았어요. 물론 지금도 남성과 여성이 일하는 공정이 달라서 임금에 차이가 있긴 해요. 그래도 남성들이 하는 일은 힘이 더 들어가는 부분이 있으니까 더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 회사만 그런지 다른 데도 그런지 모르겠는데 진급은 여성보다는 남성 위주로 한다는 느낌을 많이 받아요. 직책도 직책이고, 돈도 돈이지만 사람이 뭔가를 맡으면 책임감이 생기잖아요. 물론 돈이 중요하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요(웃음). 다른 여성조합원 분들에 비하면 적게 일 한 거지만, 저도 11년 차인데 저보다 늦게 들어온 남자 직원이 더 빨리 진급하면 ‘이건 뭐지? 여자라서 그런가?’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똑같은 현장직으로 들어왔는데 왜 그런 거지 싶고요. 이런 부분은 바뀌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누군가는 듣는다

현장 조합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여성조합원들에게 해줄 얘기는 조그마한 소리라도 불만이 있고 불편한 게 있으면 얘기 하는 게, 말이라도 던져보는 게 어떨까 하는 거예요. 진짜 조그마한 일이라도 작은 목소리라도 한 번 내면, 누군가는 듣겠죠. 듣는 사람이 생기겠죠. 그러니 일단 얘기를 하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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