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도 닮았다. 교섭 시간 끌기, 부당한 전환배치, 말대꾸나 노조 조끼 착용 등을 이유로 남발되는 대규모 징계, 지회 간부 무더기 징계해고, 그리고 핵심 조합원들만 따로 팀을 꾸려 배수구 청소나 페인트 작업 등 ‘잡일’을 시키는 것까지…. 광주전남지역 대표적 외국계 회사인 보워터코리아(관련기사)와 한국쓰리엠은 이처럼 똑같은 방식으로 노조를 옥죄고 있다.

“보워터코리아에서 쓰던 방식이 먹혀들면 우리도 얼마 안가 적용한다고 보면 됩니다. 회사끼리 서로 통하는 게 있거나 같은 컨설팅 회사 자문을 받아 노조탄압하고 있나 봐요.” 20일 오전, 한국쓰리엠 서울 본사 앞에서 만난 김희봉 한국쓰리엠지회 사무장이 말했다. 김 사무장은 “보워터코리아지회에서 새로운 노조 탄압 방식에 대해 이야기를 들으면 미리 조합원들에게 얘기해 준비를 시키곤 한다”고 덧붙인다.

그렇다고 무조건 베끼기는 건 아니다. 보워터코리아에서 먹혀들지 않는 방법은 안 쓴다. 보워터코리아에서는 식당에서 밥먹는 조합원들에게 관리자들이 몰려들어 모욕을 주기도 했는데, 이 방법이 언론에 알려져 여론의 역풍을 맞자 한국쓰리엠에선 쓰지 않았다.

▲ 12월20일 서울 여의도 본사를 방문한 한국쓰리엠지회 조합원들이 점심시간 회사의 일방 휴업을 규탄하는 피케팅을 벌이고 있다. 김상민

반면 비슷하지만 회사 특성에 맞게 더 발전된(?) 방식도 있다. 지회 간부들과 핵심조합원들을 물량이 적은 특정 부서로 몰아넣고 부서를 장기간 휴업 조치하는 것. 간부들을 금전적으로 압박함과 동시에 조합원들과 격리시킬 수 있으니 일석이조다. 게다가 휴업기간 정부로부터 고용보험기금까지 탈 수 있으니 금상첨화가 아닌가. 물론 한국쓰리엠이 다품종 소량생산을 하기에 가능한 탄압 수법이다.

보워터코리아와 똑같은 노조탄압

올 봄 한국쓰리엠은 이 같은 방식으로 특정부서를 약 4개월간 휴업조치했다. 그리고 비용절감 재미가 쏠쏠했는지 12월에는 조합원 비조합원 가릴 것 없이 나주공장에 전체적인 순환 휴업을 실시하고 있다. 김 사무장과 조합원 6명이 서울 본사에 올라온 이유도 이 같은 일방적 휴업에 항의하기 위해서다.

“직장이 무슨 아르바이트도 아니고, 물량 좀 없다고 출근하지 말라고 하는 게 말이 됩니까. 회사가 어려워서 그런다면 그나마 이해할 수 있죠. 하지만 올해 매출 목표 달성했다고 직원들 격려까지 한 회사가, 돈 몇 푼 아끼려고 직원들에게 휴업을 강요하는 게 상식적으로 말이 되냐고요.” 김 사무장이 울분을 토해낸다.

김 사무장에 따르면 조합원뿐 아니라 비조합원들도 이번 휴업조치에 불만이 많은 분위기라고 한다. 다만 회사로부터 ‘찍히면’ 어떻게 될지 알기에 나서지 못하고 있는 상황. 하지만 이미 찍힐 대로 찍한 지회 조합원들이야 회사 눈치 볼 이유가 없다. 이번 상경투쟁도 지회가 공식적으로 계획한 게 아니라 일부 간부들과 조합원들이 자발적으로 결의해서 나섰다. 상경투쟁 식대와 숙박비 모두 상경한 조합원들이 갹출해서 해결한다.

누가 시켜서 투쟁하는 게 아니니 기세도 좋다. “본사 관리자가 휴업기간 본사에 오면 휴업급여 안 줄 수 있다고 협박하데요. 부당노동행위로 고발할 테니 알아서 하라고 그랬죠.” 김 사무장과 조합원들 모두 이 같은 협박에 개의치 않는 분위기다. 김 사무장은 “지금 우리 지회 조합원들은 모두 ‘악’밖에 안 남은 이들”이라고 전한다.

휴업조치 맞서 자발적으로 나선 조합원들

금속노조 가입한지 2년 반밖에 안된 한국쓰리엠지회 조합원들. 이들이 과연 흔들리지 않고 싸우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 회사는 글로벌 회사라 미국 본사에서 구조조정 명령 떨어지면 국내 경영진들은 하라는 대로 해야 할 것 아닙니까. 노조 없어지면 우리도 언제 정리해고 당할지 몰라요. 아니 이미 지난 금융위기 때 두세 번 정리해고 당했을지도 모르죠.” 나이 42세, 지회에선 고참으로 분류되는 김범룡 조직부장은 “노조의 소중함을 알기에 이번 투쟁에도 결합하게 됐다”며 이 같이 말한다. 김 조직부장에게 노조는 고용을 지켜주는 생명줄과 같다.

▲ 한국쓰리엠지회 조합원들이 12월 20일 한국쓰리엠 여의도 본사 앞에서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김상민

한국쓰리엠에서 17년째 근무 중인 김동식 조합원은 다른 의미를 강조했다. “노조가 없을 때 우리는 굴욕적인 분위기 속에서도 찍소리 못하고 일만해야 했어요. 동료들간 관계도 살갑지 않았죠. 하지만 노조활동을 하면서 서로 의지하고 감싸주게 됐어요. 저에게 노조는 가족이나 다름없죠.” 김 조합원에게 노조는 가족만큼 소중한 존재다.

“회사로부터 노조가 뭐 대단한 걸 따내서 회사 이익이 줄어들었다면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죠. 근데 금속노조 가입 후 지금까지 한국쓰리엠지회가 뭐 대단한 거 요구한 적도 없어요. 그런데도 회사가 이토록 탄압하는 걸 보면 민주노조라는 존재가 대단하긴 한가 봐요. 회사가 우리에게 금속노조를 탈퇴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알려주고 있는 셈이죠.” 입사 8년차인 김충식 조합원은 “지금도 노조활동이 재밌는데, 우리 지회가 탄압을 극복하고 튼튼해질 미래는 더 기대된다”며 이 같이 말한다.

각자 이유는 다르지만 노조를 지키고자 하는 마음은 하나다. 금속노조 가입하자마자 장기투쟁사업장이라는 꼬리표를 달고도 좀처럼 위축되지 않는 젊은 지회의 젊은 조합원들. 이들 만만치 않다.

한국쓰리엠지회 금속노조 가입부터 현재까지

한국쓰리엠 노동자들은 지난 2009년 5월 금속노조에 가입, 한국쓰리엠지회(지회장 박근서)를 설립했다. 당시 조합원 수는 나주공장과 화성공장을 합쳐 6백여명이나 됐다. 회사는 초반 지회와 임금협상을 타결하는 등 노조를 인정하는 듯 했으나, 곧바로 본색을 드러낸다. 단체협약 체결을 위한 교섭을 질질 끌면서 지회에 대한 탄압을 시작한 것. 2년 반 동안 회사는 총 18명 해고를 포함해 각종 징계를 250건이나 남발했다. 회사는 또 수십 건의 고소고발과 가압류를 통해 지회와 조합원들을 압박했다. 용역을 동원해 지회 간부들과 조합원에게 폭력을 일삼기도 했다.

지회는 회사의 노조탄압에 맞서 지난해 9월 서울 본사 사무실 점거투쟁을 벌였다. 지회는 회사로부터 지회와 집중 교섭을 하겠다는 약속을 받고 점거를 해제했지만, 회사는 오히려 지회장과 조합 간부 3명을 해고하며 탄압을 강화했다. 이 때문에 지회는 노조 가입 2년 반이 넘은 지금까지 회사와 단체협약을 체결하지 못한 상태다. 이 교섭은 현재까지 160여 차례나 지속되고 있다.

지회 조합원 수는 현재 2백여명으로 줄었다. 하지만 김희봉 지회 사무장은 “회사의 각종 협박과 금전적 압박으로 어쩔 수 없이 지회를 탈퇴했지만 마음속으로 노조를 지지하는 이들이 많다”며 “지회가 튼튼해지면 다시 돌아올 사람들이 많다”고 현장 분위기를 전한다. 김 사무장은 “회사는 결코 민주노조를 없애지 못할 것”이라며 “내년 총선, 대선을 앞두고 다방면에서 회사를 압박하는 투쟁 벌여 전세를 역전시키겠다”는 다짐을 밝혔다.

한국쓰리엠은 다국적기업인 미국 3M이 100% 투자한 외국인 투자기업이다. 1977년 설립됐으며 현재 자본금 6백억원 임직원 1천5백여명 규모인 것으로 알려졌다. 본사는 서울에 있으며 나주와 화성에 각각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주요 생산 품목은 포스트잇, 스카치 브라이트 수세미, 테이프, 마스크, LCD 필름, 보안기, 썬팅지 등 생활용품 및 산업용품들이다. 한국쓰리엠은 주주배당과 각종 로열티 명목으로 이익의 상당부분을 미국 본사로 빼돌리고 있다는 비난을 받고 있기도 하다. 실제 한 언론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쓰리엠은 1천97억원의 순이익을 냈는데, 순이익보다도 많은 액수인 1천140억원을 배당금으로 지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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