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말아 잡수신 분들 밥이 목구멍에 넘어갑니까?”
“회사 무너뜨리기 하면서 밥맛 좋으신지요?”

점심시간 구내식당에서 식사 중인 조합원들 앞에 관리직들이 몰려와 이 같은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모욕을 주는 회사. 단체협약 일방해지, 노조탈퇴 종용, 조합원에 대한 부당한 전환배치 및 잔업통제, 지회 간부 대량 징계해고, 친회사 복수노조 설립 등 할 수 있는 모든 탄압 수단을 동원해 온 회사. 악질적인 노조탄압으로 유명한 전남 영암 보워터코리아다.

그런 회사가 최근 살인선고나 다름없는 정리해고 칼날까지 뽑아들었다. 지난 9월부터 희망퇴직을 실시한 회사는 전체 인원의 35%에 달하는 78명을 내보낸 뒤, 지난달 20일 또다시 노동자 8명을 정리해고했다. 이 중 7명이 지회 조합원인데 모두 전현직 지회 간부들이거나 열성 조합원들이다.

▲ 바닷바람이 차가운 목포 현충공원 인근에 보워터코리아지회 해고노동자들의 투쟁 거점인 천막농성장이 설치돼 있다. 김상민
“우리 회사 참 대단합니다. 이런 회사 다른 데는 없을걸요.” 13일 오후 목포 현충공원 인근 천막농성장에서 만난 서규선 지회 대의원이 허탈한 표정으로 말했다. 지난달 해고된 서 대의원은 “회사는 조합원이 화장실에서 좀 오래 있었다는 이유, 연월차 썼다는 이유, 노조 조끼를 입었다는 이유, 관리자 행패에 말대꾸 했다는 이유 등 말도 안 되는 트집을 잡아 3~4개월 안에 1천장이 넘는 경고장을 남발했다”며 “이번 정리해고는 이를 기준으로 점수를 매겨 대상을 선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화장실 오래 있었다고 벌점주는 회사

“이미 희망퇴직으로 애초 회사가 목표한 감축인원보다 더 많은 노동자들이 회사를 나갔습니다. 그런데 또 정리해고라뇨. 게다가 열성 조합원과 전현직 지회 간부들만 골라서 해고를 하니 어떻게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함께 농성중인 김명일 조합원도 분을 삭이지 못했다. 김 조합원 역시 해고됐다.

해고 대상자 선정 문제만 있는 게 아니다. 정리해고 요건인 긴박한 경영상 사유도 분명치 않다는 게 조합원들의 주장이다. 김 조합원은 “회사가 주식회사에서 유한회사로 전환하면서 경영정보를 숨겨놨지만 제지업에 27년간 몸담아 본 경험으로 봤을 때, 우리 공장 기계를 돌려 적자가 난다는 건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고 말한다. 설사 적자가 났더라도 매년 70억 넘게 빼돌리는 미국 본사 때문 아니겠냐는 지적도 덧붙였다.

김 조합원은 “정리해고 다음날인 지난달 21일 본사 사장이 공장을 방문해 단기간인 6개월 만에 기적적으로 경영정상화를 이뤄냈다고 임직원들을 치하한 일도 있다”며 “정리해고 하루 만에 경영정상화 된 게 아니라면 굳이 해고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라고 꼬집었다.

정리해고 하루 만에 경영정상화?

지회는 법적으로 다퉜을 때 정리해고는 분명 무효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문제는 그간 회사가 보인 태도로 봤을 때 법원 최종 판결까지 질질 끌고 갈 게 분명하다는 것. “전기장판 깔면 추위는 그나마 견딜 수 있는데, 날이 더워지면 오히려 힘들 것 같습니다.” 정태욱 지회장의 걱정은 이미 이번 겨울이 아니라 내년 여름이다.

▲ 13일 저녁, 목포의 한 술집에 보워터코리아지회 해고 조합원들과 비해고 조합원들이 함께 모여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김상민
그래서인지 2주밖에 안 된 농성천막엔 각종 식량과 가구들까지 웬만한 살림살이가 다 갖춰져 있다. 지회 간부들은 이미 이런 생활에 익숙하다. 회사는 1년 전 정 지회장을 비롯해, 사무장, 조직부장, 기획부장, 복지부장, 대의원 등 지회 핵심간부 6명 전원을 무더기 징계해고한 바 있다.

싸움이 얼마나 길어질지 모르는 상황이지만 해고 조합원과 비해고 조합원 모두 각오가 단단하다. 정 지회장은 “2007년부터 5년 동안 탄압에도 버텨온 우리 조합원들 참 대단하다”며 “우리나라에 보워터코리아 같은 회사도 없겠지만 온갖 모욕과 회유를 이겨내고 있는 우리 같은 조합원들도 없을 것”이라고 자랑한다.

“우리 같은 조합원들도 없을 것”

“이미 회사의 회유와 협박에 흔들리는 이들은 희망퇴직하거나 금속노조를 탈퇴해 기업노조로 가버렸어요. 해고자든 비해고자는 이제 지회에 남은 이들은 진짜 ‘N’들이니 더 이상 흔들리거나 후퇴하는 일 절대 없을 겁니다.” 13일 저녁 해고 조합원과 비해고 조합원 전체가 모여 저녁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정 지회장이 힘주어 말했다.

여기서 정 지회장이 말하는 ‘N’이란 회사가 회유나 협박에 넘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분류한 조합원들을 뜻한다. 지난 2008년 지회가 폭로한 회사 문건에 따르면 회사는 2007년부터 전 직원을 M(모범), B(보통), N(영어로 부정을 뜻하는 Not)으로 구분했으며, B성향의 직원들을 친회사 성향인 M으로 전환하겠다는 계획까지 마련했었다.

“금속노동자 신문도 보워터코리아에서 생산한 종이로 찍으면 좋을 텐데….” 저녁식사 자리에서 정 지회장이 금속노동자 신문 제작에 대해 물어보면서 이 같이 말한다. 공장에서 쫓겨나서도 복직을 희망하며 회사가 잘 되길 바라는 정 지회장. 회사 경영보다 노조 없애려는 데만 혈안이 된 경영자와 관리직들. 과연 누가 M이고 누가 N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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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워터코리아의 노조탄압 언제부터 어떻게?
조합원 150명이 40명으로 줄기까지

2005년까지만 해도 보워터코리아 노동자들은 파업찬반투표 95% 찬성율이 나올 정도로 튼튼했다. 하지만 2006년 4월 조정훈 대표이사가 취임한 이후 분위기가 급변한다. 회사는 우선 같은 해 11월 임단협 과정 때 13일간 직장폐쇄를 통해 노조탄압의 시동을 걸었다. 이것에 노조가 흔들리지 않자 회사는 그 위 임단협을 장기간 파행으로 몰고 가는 동시에 조합원을 회유해 노조 조직력을 밑에서부터 약화시키기 시작했다.

▲ 2008년 지회가 폭로한 회사 노조파괴 계획 문건의 일부. 보워터코리아지회 제공
2008년 지회가 입수한 회사 측 문건에는 이 같은 계획이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다. △노조 요구안 무시 및 기존 단협조항 삭제 요구 등 물타기 전술 △반집행부 세력 확산 전술 △노조 내부 분열 전술 등이 그것이다. 직원을 M, B, N 등의 성향으로 분석해 친 회사 조합원을 늘리려는 계획도 당시 폭로된 문건에 포함돼 있다. 회사는 2009년 6월 급기야 지회에 단체협약 해지 통보도 했다. 이에 따라 6개월 이후인 같은 해 12월부터 보워터코리아지회는 무단협 상태로 노조 활동을 펼쳐야 했다. 그 뒤 회사는 지난해 12월 정 지회장을 비롯한 지회 간부 6명을 무더기 징계해고해 현장으로부터 노조간부들을 분리시킨다. 또 올해 7월 복수노조 합법화에 맞춰 회사엔 친 기업적인 기업노조가 설립되기도 했다. 지회에 따르면 기업노조 조합원 수는 사무직을 포함해 80여명이다. 이 노조는 올해 진행된 인력 구조조정을 회사와 합의하기도 했다.

이어 회사는 지난달 8명 정리해고에 앞서 지난 9월 희망퇴직을 전격적으로 실시했다. 이 때 조합원 40여명을 비롯해 78명이 회사를 그만뒀다. 이에 따라 150여명이었던 지회 조합원 수는 징계해고 및 정리해고자 11명을 포함해 40여명으로 줄었다. 지회는 올 12월부터 해고자를 중심으로 거점 천막농성과 지역 선전전에 돌입해 있다. 또한 지회는 부당 정리해고 구제신청, 징계해고 무효소송, 단협해지 무효소송 등 각종 법률 대응도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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