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시대가 변한다. 산업이 변한다. 사람도 변한다. 2022년 금속노조는 ‘노동중심 산업전환 노정교섭 쟁취’를 걸고 20만 총파업 조직에 나섰다. 현장은 산업전환을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준비하고 있을까. 현장의 요구는 무엇일까. ‘산업전환기’라는 격랑의 파고를 온몸으로 받아내는 금속노동자들을 만나 산업전환과 20만 총파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금속노조 경기지부 시흥안산지역지회 동양피스톤분회는 조합원 390여 명, 전체 인원 600여 명 규모의 사업장이다. 2019년 3월에 노동조합을 설립했다. 이전까지 무노조 사업장이었다. 황훈재 동양피스톤분회장은 “현재 단협으로 유니온샵을 적용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동양피스톤은 엔진 피스톤 전문제조회사다. 승용차, 상용차, 선박, 산업용 장비, 이륜차, 군용기계, 농기계까지. 디젤엔진이나 가솔린엔진이 들어가는 곳이면 어디든 피스톤을 납품하고 있다. 황훈재 분회장은 “세계 물량의 10%, 국내 물량의 70% 담당하고 있다. 하루 생산량만 7만 개에 달한다”라고 설명했다.

황훈재 분회장은 “자체 연구소가 있어 연구역량도 있다”라고 덧붙였다. 현재 동양피스톤 연구소 인력은 50여 명이다. 황 분회장은 “최근 3년 사이에 연구인력을 확대했다”라면서 “50여 년 동안 피스톤만 생산하다가 산업전환 대응을 위해 친환경 사업부를 만들면서 연구인력을 확충했다”라고 부연했다.

동양피스톤은 2018년 ‘우신공업’의 수소연료전지 인클로저 사업부를 인수했다. 인클로저는 수소연료전지 스택을 둘러싼 보호 부품으로, 수소연료전지를 외부 충격에서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일종의 ‘커버’인 셈이다. 동양피스톤은 2021년 현대자동차와 269억 원의 인클로저 공급 계약을 맺었다. 이는 동양피스톤 전체 매출의 8~10% 수준이다.

황훈재 금속노조 경기지부 경기금속지역지회 동양피스톤분회장. 동양피스톤은 엔진 피스톤 전문제조회사로 승용차, 상용차, 선박, 산업용장비, 이륜차, 군용기계, 농기계까지 디젤엔진이나 가솔린엔진에 들어가는 피스톤을 생산, 납품하고 있다. 변백선
황훈재 금속노조 경기지부 경기금속지역지회 동양피스톤분회장. 동양피스톤은 엔진 피스톤 전문제조회사로 승용차, 상용차, 선박, 산업용장비, 이륜차, 군용기계, 농기계까지 디젤엔진이나 가솔린엔진에 들어가는 피스톤을 생산, 납품하고 있다. 변백선

주 최대 52시간 노동제 노사협의 한계에 노조 가입

황훈재 분회장은 “미래차에 대응하면서 자연스레 투자가 늘었다. 우선 인건비가 상승했고, 연구개발비 비중도 높아졌다. 이에 맞춰 고용유지지원금이나 기업활력법 지원 등 정부지원금도 받고 있다”라고 밝혔다.

무노조 사업장이던 동양피스톤에서 노조를 만든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황훈재 분회장은 “300인 이상 사업장 주 52시간 근무제를 적용하면서 사측이 생산방식을 바꿨다. 인원이나 투자를 늘리는 방식이 대신 기존인원과 설비로 노동강도를 배가하는 식이었다”라며 “이러면서 산재사고가 났고 노동자들 사이에 불만이 쌓였다”라고 답변했다.

황훈재 분회장은 “이미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던 사업장인데, 노동시간을 줄이면서 노동강도를 높이는 사측의 방식이 틀렸다고 판단했다. 노사협의회로 조정하려 했으나 결국 회사 뜻대로 흘러갔다”라면서 “노동조합과 회사가 임금·단체협약 체결을 위해 교섭하는 한 단계 높은 형태의 노사관계를 형성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라고 노조 설립 계기를 밝혔다.

길고 힘든 코로나 19 시기, 동양피스톤은 어땠는지 물었다. 황훈재 분회장은 “물량이 많이 줄었다”라고 즉답했다. 황 분회장은 “코로나 영향이라고 분석했지만, 사실 내부에서 의견이 분분했다”라며 “이미 폭스바겐 디젤게이트 때부터 피스톤 산업, 나아가 화석에너지를 사용하는 엔진 산업이 영향을 받은 것으로 봤다”라고 분석했다.

황훈재 분회장은 “시대 변화에 따라 산업전환, 에너지 전환 관련 고민을 회사가 계속했다. 생산품이 피스톤 하나밖에 없었으니까”라면서 “그러다 코로나 19가 터지기 직전에 에코사업부라고 부르는 수소차 발전기 커버를 만드는 라인을 인수합병으로 들여왔다”라고 설명했다.

황훈재 분회장은 “회사가 일찍부터 손에 잡히는 고민을 하지는 않았다. 자율주행으로 공장 안에서 자재를 옮기는 카트를 개발하던 미국 미시간 소재의 작은 업체를 인수하기도 하고. 여러 아이템을 두고 고민하는 과정이 있었다”라며 “수소차에 주력하는 것으로 정리했지만, 아직 수소차 대중화 문제가 있어 실적은 크지 않다”라고 설명했다.

황훈재 분회장은 “사실 수소연료전지 인클로저는 특출한 기술은 아니다. 기계, 사람, 돈이 있으면 만들 수 있다. 고부가가치 산업이 아닌 셈이다”라며 “지금 생산품도 기술을 더 특화하지 않는 이상 물량을 유지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라고 우려했다.

노조보다 앞서 ‘미래산업정책 노사합의’

동양피스톤분회는 지난 2020년 11월 사측과 ‘미래산업정책 노사합의’를 맺었다. 합의서에 코로나 19 시기 고용안정에 관한 내용과 함께 ▲고용안정을 위한 ‘미래산업경영안정기금’ 적립 ▲산업전환 논의를 위한 노사간담회 분기 1회 개최 ▲산업전환 대응을 위한 공동 노력 ▲정년퇴직자와 퇴사자를 대체하는 인력 충원을 위해 고용안정위원회 개최 등의 내용이 있다.

금속노조가 ‘고용안정기금’이라는 화두를 던진 것이 2020년, ‘산업전환협약’을 내건 것이 2021년이다. 노조보다 동양피스톤분회의 산업전환 대응 속도가 빨랐다고 할 수 있다. 황훈재 분회장은 “노동조합을 설립하고 코로나 19가 덮쳤다. 노동조합을 설립하기는 했는데 임금이나 복지를 향상해야 ‘노조 가입하길 잘했다’라는 말을 들을 텐데. 참 막막했다”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황훈재 금속노조 경기지부 경기금속지역지회 동양피스톤분회장이 산업전환기 현장 상황과 요구 등에 관해 인터뷰를 하고 있다. 변백선
황훈재 금속노조 경기지부 경기금속지역지회 동양피스톤분회장이 산업전환기 현장 상황과 요구 등에 관해 인터뷰를 하고 있다. 변백선

황훈재 분회장은 “당시 코로나 19가 심화하면서 매출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상황이었다. 나빠진 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논의를 하자고 회사가 먼저 제안했다”라고 밝혔다. 황훈재 분회장은 당시 두 가지 고민을 했다. 첫째, 위기 시 회사 현금보유량이 적어 ‘유동성 위기’가 올 수 있다. 둘째, 그동안 유동성 위기 시 사측은 노동자에게 고통을 전가해온 역사가 있다.

동양피스톤분회는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하려면 노동조합이 경영에 ‘간섭’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분회는 사측을 설득하기 위해, 사측과 노조가 각각 기금을 적립하자고 제안했다. 회사는 결산당기순이익의 70% 금액 중 8%를, 노조는 조합원들이 매월 2만 원씩 적립하는 방안이었다.

분회, 미래산업대비기금 설립 제안, 합의

황훈재 분회장은 “회사는 제안을 받고 불쾌함을 나타냈다. 노동조합이 경영을 못 한다고 지적한 셈이다”라며 “기금 조성에 합의하자 차츰 회사가 인식을 바꾸기 시작했다”라고 전했다. 이렇게 적립한 기금의 사용 역시 노사합의사항으로 못 박았다. 황 분회장은 “노조가 적립한 기금을 회사가 사용하면 나중에 사측이 메꾸는 합의까지 했다”라고 부연했다.

금속노조는 지난 2020년 ‘고용안정위원회’와 ‘고용안정기금’을 중앙교섭 요구안에 넣었다가 중앙위원회 토론을 거쳐 철회한 사례가 있다. 정일부 당시 노조 정책실장은 “산업구조조정에 대비해 마련한 요구안이었는데, 코로나 19가 터지면서 변화한 상황을 반영해야 했다”라고 철회 이유를 밝혔다.

고용안정위원회는 회사가 조합원의 고용안정에 영향을 미치는 정책을 시행하기 전 노사가 함께 심의·의결하는 기구다. 고용안정기금은 회사가 매년 재직 중인 노동자 임금총액의 0.5%를 기금으로 적립해, 노동시간이 현저히 줄어든 조합원, 실직 조합원, 정년퇴직자 등에게 생활 안정, 교육훈련, 구직·전직 지원 용도로 쓰자는 제도다.

노조가 철회한 고용안정위원회와 고용안정기금이라는 아이디어를 살려 2년째 운영 중인 황훈재 분회장에게 당시 노조 요구안에 관한 생각을 물었다. 황훈재 분회장은 “당시 요구안을 보면서 자본이 동의하기 어렵겠다고 생각했다”라고 운을 뗐다.

황훈재 금속노조 경기지부 경기금속지역지회 동양피스톤분회장이 산업전환기 현장 상황과 요구 등에 관해 인터뷰를 하고 있다. 변백선
황훈재 금속노조 경기지부 경기금속지역지회 동양피스톤분회장이 산업전환기 현장 상황과 요구 등에 관해 인터뷰를 하고 있다. 변백선

동양피스톤 노·사를 위해 쓰는 미래산업경영안정기금과 달리, 금속노조의 고용안정기금은 개별 자본이 ‘밖으로 나간 돈’으로 여길 가능성이 크다는 설명이었다. 황훈재 분회장은 “지회, 분회들도 그런 구조가 부담스럽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컸다”라고 평가했다.

황훈재 분회장은 노·사 모두가 미래산업경영안정기금 조성을 회사에 관한 고민, 경영과 자금에 관한 고민을 깊게 하는 계기로 삼았다고 설명했다. 황 분회장은 “회사가 무조건 ‘없애자, 깎자’라고 얘기하면 안 되는구나. 노동조합과 대화해야 하는구나. 그렇게 여기기 시작했다고 생각한다”라고 강조했다.

산업전환기 고용 내재화 요구

황훈재 분회장은 올해 교섭에서 미래산업과 관련해 고용을 내재화하는 안을 단체협약에 추가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래산업정책 노사합의서를 구체화해 ‘미래산업의 개발과 투자, 대량생산을 준비하는 전 공정을 내재화해 고용을 확대한다’라고 못 박는 안이다. 회사가 새로운 아이템을 추진할 때 분사나 법인 분리, 외주화를 못 하도록 막는 장치다.

황훈재 분회장은 “물론 쉽지 않으리라 예상한다”라면서 “그래도 반드시 합의해야 하는 안이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황 분회장은 “현대차의 신규 수소차 개발이 늦어지는 등 갈수록 변수가 많고, 변수의 폭이 커진다”라면서 “교섭을 시작하면서 전체 산업 상황을 한 번 더 점검해봐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황훈재 분회장은 “피스톤 수주 물량이 최대 50%까지 줄 수 있는 상황이라 조합원들 걱정한다. IMF, 금융위기, 코로나 19를 경험하면서 일은 나눈다, 고용은 유지한다, 그 안에서 채용을 만든다는 원칙을 세웠다. 조합원들에게 ‘같이 해보자’라고 얘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라며 교섭을 앞둔 심정을 밝혔다.

올해 금속노조가 내 건 총파업을 어떻게 생각할까? 황훈재 분회장은 “노·정 교섭을 통해 완성차 등 최종공급자가 모든 이익을 가져가는 구조를 바꿔야 한다. 이미 공단 안에서 3차, 4차 하청업체는 망하고 있다. 공급 사슬 아래로 내려갈수록 무너지는 속도가 빠르다”라고 지적했다.

황훈재 분회장은 “총파업 기조와 방향, 전술에 관해 현장은 최선을 다해 함께하려 한다. 함께 해야 산업전환에 노동조합의 목소리를 담고 노동자를 위한 정책이 나온다”라며 “금속노조가 한국 사회에 파급력을 미치고, 메시지를 던지는 투쟁을 만들었으면 좋겠다”라는 바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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