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시대가 변한다. 산업이 변한다. 사람도 변한다. 2022년 금속노조는 ‘노동중심 산업전환 노정교섭 쟁취’를 걸고 20만 총파업 조직에 나섰다. 현장은 산업전환을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준비하고 있을까. 현장의 요구는 무엇일까. ‘산업전환기’라는 격랑의 파고를 온몸으로 받아내는 금속노동자들을 만나 산업전환과 20만 총파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때 이른 여름 날씨로 기후위기를 절감하던 5월 중순, 금속노조 경기지부 현대케피코지회를 찾았다. 오병섭 현대케피코지회장은 “산업전환과 관련해서 우리 지회보다 더 어려운 사업장이 경기지부 안에 정말 많아서 말을 보태기 민망하다”라며 운을 뗐다.

현대케피코는 현대자동차그룹 1차 계열사로 내연기관 엔진에 들어가는 연료분사 시스템을 생산한다. GDI, MPI, PDI, 디젤 엔진 등 생산 품목 대부분이 내연기관과 관련 있다. 전기차, 수소차 등 미래차로 산업전환 시 매출에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는 구조지만, 오병섭 지회장은 “1차 하청이라서 상황이 그나마 나은 편이다”라고 덧붙였다.

오병섭 지회장은 지난 4월 7일 국회에서 금속노조가 주최한 ‘전환기 자동차부품산업 해법 찾기 토론회’에서 급속한 산업전환에 따른 위기감과 불안감을 호소했다. 오병섭 지회장은 “특히 사무·연구직 노동자들이 내연기관 신규 프로젝트가 없어 불안을 느끼고 있다”라며 “급변하는 산업에 적응할 수 있도록 전환 속도를 조절할 필요가 있다”라고 제안했다.

현재 현대케피코지회 조합원은 기술직 450여 명, 사무·연구직 440여 명으로 890여 명 규모다. 오병섭 지회장은 과거보다 사무·연구직 조합원 비율이 상당히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기술직 신규 채용은 주는 반면, 사무·연구직 채용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다른 금속노조 사업장과 마찬가지로 현대케피코지회에도 세대 간 차이가 있다. 지회 조합원 평균 나이는 45세 정도다. 사무·연구직만 놓고 보면 평균 30대 초중반이다. 오병섭 지회장은 “기술직 조합원들은 정년연장 요구가 시급하나, 사무·연구직 조합원들은 내연기관 개발 프로젝트 축소로 일거리 문제가 심각하다고 인식한다”라고 밝혔다.

오병섭 노조 경기지부 현대케피코지회장은 “특히 사무·연구직 노동자들이 내연기관 신규 프로젝트가 없어 불안을 느끼고 있다. 급변하는 산업에 적응할 수 있도록 전환 속도를 조절할 필요가 있다”라고 제안했다. 변백선
오병섭 노조 경기지부 현대케피코지회장은 “특히 사무·연구직 노동자들이 내연기관 신규 프로젝트가 없어 불안을 느끼고 있다. 급변하는 산업에 적응할 수 있도록 전환 속도를 조절할 필요가 있다”라고 제안했다. 변백선

“급변 산업전환 적응하도록 속도 조절해야”

오병섭 지회장은 “회사가 잘 나갈 때는 세대 간 갈등이 크게 드러나지 않았지만, 일이 줄고 위기감이 생기면서 불만이 나오고 있다”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현대케피코지회 최초로 사무·연구직 강인호 부지회장과 러닝메이트로 선거에 나왔다. 회사가 미래 먹거리 관련해서 하는 말을 검증할 수 있는 눈과 지식이 있어야 한다고 봤다”라고 설명했다.

오병섭 지회장은 “예전 단체협약과 교섭에 사무·연구직 요구가 거의 들어가지 못했다. 지금은 기술직과 거의 같은 수다 보니 사무·연구직 목소리가 커졌다”라고 전했다. 오병섭 지회장은 과거 기술직이 70%가 넘던 시절과 달리, 올해 강인호 부지회장을 필두로 사무·연구직 요구를 파악하고 교섭에 반영하기 위한 간담회 자리를 만드는 등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오병섭 지회장은 사무·연구직 출신인 강인호 부지회장이 조합활동을 함께하면서 사무·연구직 조합원들과 접촉면이 늘었다고 말했다. 오병섭 지회장은 “기술직만으로 지회를 구성했을 때는 접근 자체가 어려웠다”라면서 올해 커피타임, 중식 모임 등 다방면으로 청년 조합원들에게 접근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토론회에서 전환 속도를 조절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 이유 역시 사무·연구직 조합원들의 상황을 반영한 말이라 설명했다. 오병섭 지회장은 “산업전환을 마냥 늦추자는 것이 아니라, 두 트랙으로 대응하자는 말”이라고 부연했다. 연료 효율을 높여 환경에 부담을 덜 주는 내연기관 연구개발을 진행하면서, 동시에 미래 먹거리를 함께 준비해야 한다는 얘기다.

오병섭 지회장은 “전에는 기술직 위주의 요구안을 만들어 사측에 던졌는데 지금은 연구소 요구안도 있다. 이 둘을 잘 조화하는 일이 지회 앞에 놓인 과제다”라고 말했다. 오병섭 지회장은 사무·연구직들이 진급, 고과, 사측의 압박 등으로 조합 결합력이 떨어졌지만, 최근 세태도 변했다고 전했다.

오병섭 지회장은 “사무·연구직이 노동운동을 하는 데 구조상 한계가 있다”라면서 “과거에 진급, 고과 때문에 사측의 눈치를 많이 봤다. 최근 들어온 20대, 30대 조합원들은 ‘회사가 나를 지켜주지 않는다, 노동조합을 통해서 권리를 찾아야 한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라고 강조했다.

사무·연구직 임단협 요구와 기술직 요구 조화

현대케피코 사무·연구직 조합원들은 현대자동차 남양연구소와 달리 진급을 거부하는 경우가 드물다. 현재 사무·연구직 조합원은 진급하면 조합을 나가야 한다. 지회는 조합원 범위 확대를 고민하고 있다. 지회 집행부 공약 사항이면서 현재 임단협 의제 중 하나다.

현대케피코지회는 산업전환과 관련해 사측과 분기별 1회 미래전략위원회를 운영하고 있다. 미래 먹거리를 노·사가 머리를 맞대고 논의해보자는 취지로 2020년 교섭에서 합의했다. 오병섭 지회장은 “내연기관과 달리 전기차에 현대케피코 주력 상품인 연료분사장치가 들어가지 않는다. 그럼 미래에 뭐할 거냐. 그런 이야기를 주로 한다”라고 말했다.

오병섭 경기지부 현대케피코지회장이 5월 10일 경기도 군포시 소재 현대케피코 노동조합 사무실에서 ‘금속노동자’와 만나 산업전환기 속에서의 현장 상황과 요구 등에 대한 인터뷰를 나누고 있다. 경기=변백선
현대케피코지회는 산업전환과 관련해 사측과 분기별 1회 미래전략위원회를 운영하고 있다. 미래 먹거리를 노·사가 머리를 맞대고 논의해보자는 취지로 2020년 교섭에서 합의했다. 오병섭 지회장은 “내연기관과 달리 전기차에 현대케피코 주력 상품인 연료분사장치가 들어가지 않는다. 그럼 미래에 뭐할 거냐. 그런 이야기를 주로 한다”라고 말했다. 변백선

오병섭 지회장은 “회사는 내연기관이 갑자기 줄지 않는다고 보고 효율을 높인 연료분사 시스템을 개발하면서, 배터리나 수소센서, 전기차 제어기 모듈 등 2세대, 3세대 개발을 병행하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전동 이륜차 개발도 완료했다. 이렇게 전동화 역량을 축적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다음 세대 아이템 양산은 어디서 할까? 오병섭 지회장은 “현재 양산이 목전에 와있다. 설비나 물량은 노·사가 교섭해야 한다”라고 답변했다. 오병섭 지회장은 회사가 지난해 베트남에 설치하려던 수소센서 라인을 지회가 군포에 설치하도록 만든 사례를 들었다.

오병섭 지회장은 “수소차와 전기차는 메커니즘이 조금 다르다. 최근 수소차 양산이 뒤로 밀리면서 약간 문제가 생겼지만, 회사와 미래 생산물량과 관련한 대화를 계속 나누고 있다”라면서도 “내연기관 물량을 전량 대체할 부품 아이템은 확실하지 않다”라고 덧붙였다.

현대케피코지회는 베트남공장 실사를 준비하고 있다. 회사는 한국공장에 투자한다고 말하지만, 해외공장에 신규 아이템 생산을 맡길 수 있기 때문이다. 지회는 지난 5년 동안 코로나 19등 여러 이유로 실사를 가지 못했다. 해외공장 실사는 노·사가 함께 간다. 이번에 강인호 부지회장이 가서 진행 상황을 직접 점검한다.

오병섭 지회장에게 2022년 금속노조가 내건 ‘노동중심 산업전환 노정교섭 쟁취 20만 총파업’에 관해 묻자 “금속노조가 방침을 정하지 않았나. 지회는 열심히 복무한다”라고 밝혔다.

오병섭 지회장은 “2022년 올해 뭐라도 해야 하는 산업전환기다. 윤석열 정부는 반노동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노조가 위력 있는 진짜 총파업을 조직하고 실행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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