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가 7월 6일 전면파업 돌입을 예고했다. 조경근 지부장을 만나 7월 총력투쟁 계획을 직접 들었다. 지부장의 올 하반기 사업 구상과 민주노조 활동에 관한 고민 등을 두 차례에 걸쳐 싣는다.

현대중공업 하면 중대재해 문제를 빼놓을 수 없다. 노동자들이 땀 흘려 세운 ‘세계 1등 조선소’ 현대중공업 이면에는 노동자들의 피와 눈물이 있다. 정주영·정몽준 부자는 노동자 생명을 갈아 넣어 세계 최대 선박건조회사의 영광을 얻었고 3세 정기선이 그 이득을 톡톡히 누리고 있다.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가 사측과 노동조합 자료 등을 분석한 결과, 1974년 현대중공업 창사 이후 올해 5월까지 노동자 469명이 산재로 죽었다. 매달 한 명꼴이다. 먹고 살기 위해 일터에 나온 노동자들이 일하다 추락사하고 끼여서 깔려서 질식해서 불에 타서 죽었다.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은 매일 죽음 옆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조경근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장은 현대중공업 자본이 노동자 임금과 작업 시간을 줄이기 위해 일상적으로 불법을 저지르고 안전시스템을 가동하지 않는다며 답답해했다.

“지난 5월 8일 우리 동료가 용접 일을 하다 그만 바닥으로 떨어져 사망했습니다. 사측은 추락방지용 안전망 등 기본 안전조치조차 없이 작업을 시켰어요. 중대재해가 하도 잦으니 죽음에 무덤덤해진다는 사람들도 있어요. 짓이겨진 노동자가 죽어 나가도 사측은 그저 장례가 빨리 끝나길 기다릴 뿐입니다. 정말 잔인하고 비참하죠.”

조경근 지부장은 사측이 중대재해 해결 의지를 갖고 있지 않다며 “사고 원인을 자세히 알아보거나 안전대책으로 정말 무엇이 필요한지 제대로 고민하지 않는다. 중대 재해 터지면 그때만 잠깐 피하려고 이전 사고 때 발표했던 내용 그냥 재탕, 삼탕한다”라고 비판했다.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가 5월 20일 고용노동부 울산지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잇따른 중대재해 문제 책임자인 한경석 현대중공업 대표이사를 구속수사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지부 제공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가 5월 20일 고용노동부 울산지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잇따른 중대재해 문제 책임자인 한경석 현대중공업 대표이사를 구속수사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지부 제공

매일 죽음 옆에서 일하는 현대중공업 노동자들

노조 현대중공업지부는 잇따른 중대재해의 주요 원인으로 다단계 하청 구조와 혼재 작업을 꼽는다. 경영권 편법 승계에 따른 자회사 남발, 무리한 분사로 최근 몇 년 혼재 작업 문제가 더 심각해졌다. 같은 공간에 여러 소속의 노동자들이 섞여 위험한 작업을 하지만, 현대중공업 원청은 종합적인 현장 안전 관리를 전혀 하지 않는다.

현대중공업지부는 사측에 매월 1회 노·사 대표가 참석하는 산업안전보건위원회를 열자고 제안했다. 사업주가 노동조합과 함께 작업장의 위험요소를 직접 살펴보고, 노·사가 공동으로 안전대책을 마련하자는 내용이다. 사측은 검토해보겠다는 말만 툭 던진 채 묵묵부답이다. 죽고 사는 문제에 사측은 여전히 느긋하다.

사측은 산재 사고를 노동자들 책임으로 몰기도 한다. 한영석 현대중공업 대표이사는 올 2월 열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산업재해 청문회에서 “불안전한 행동은 개선이 어렵다. 불안전한 행동을 하는 작업자가 많다”라며 노동자 부주의 탓으로 돌려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조경근 지부장은 “툭하면 사고 터지고 책임자들은 나 몰라라 하고, 노동자들은 하루하루 불안한 상태로 일한다”라며 “배 째라는 식 임단협 교섭, 강압적인 노무관리, 제왕적 재벌경영으로도 모자라 목숨줄까지 내놓으라는 사측을 노동자들이 어떻게 신뢰할 수 있겠냐”라고 토로했다.

“왜 사고가 생기고 해결 방안이 뭔지 현장 노동자들이 가장 정확하게 압니다. 그런데 노동부는 노동조합을 잘 만나주지도 않고 노동자들 의견을 무시해요. 상황이 이리 심각한데 회사 움직임이 없으면, 노동부라도 빨리 나서서 충분한 감시·감독 인력의 현장 상주를 통해 상시·주기적인 안전 진단과 불법 하도급 해결을 하고 혼합작업 규제하는 법 제도를 만들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조경근 지부장은 정부의 구경꾼 태도를 비판하며, 중대재해기업처벌법 강화와 권오갑 회장·한영석 사장 구속을 촉구했다. 노동자가 죽어야 현장에 얼굴을 빼꼼 들이미는 노동부의 책상머리 행정을 강하게 꾸짖었다. 죽음의 행렬을 멈추려면 정부라도 제 역할을 해야 하는데, 오히려 현대중공업 자본의 하청기관처럼 군다며 안타까워했다.

조경근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장이 5월 14일 이상남 열사 32주기 추모집회에서 열사 정신을 새기고 민주노조를 이어가자고 호소하고 있다. 지부 제공
조경근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장이 5월 14일 이상남 열사 32주기 추모집회에서 열사 정신을 새기고 민주노조를 이어가자고 호소하고 있다. 지부 제공

민주노조 역사를 찾다 보면 항상 나오는 사진이 있다. 트럭과 지게차에 올라탄 현대중공업·현대엔진 노동자들이 끝없이 쏟아져 나오는 장면 …. 1987년 전국적인 민주화 투쟁 열기에 합류한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은 그해 7월 노동조합을 만들고 이어 “민주노조 인정하라”라고 외치며 7·8·9월 노동자 대투쟁을 벌였다.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세우고 미포만에 민주노조 깃발을 꽂은 지 어느덧 삼십오 년이다. 조경근 지부장은 요즘 민주노조 활동에 관한 고민이 깊다. 인터뷰 내내 ‘민주노조’를 강조했다. 그에게 민주노조는 어떤 의미일까.

“민주노조는 노동자들의 자존심이 모인 구심체! 노동조합은 말 그대로 노동자들의 대표입니다. 노동조합을 하려면 당연히 민주노조를 해야죠. 사측이 주는 대로 군말 없이 받는 게 무슨 노동조합입니까? 노동자라는 자기 정체성을 부정한 채 사측 꼭두각시 노릇을 하는 사람들은 민주노조는커녕 노동조합으로도 인정할 수 없어요.”

빼앗겼던 시간이 있기에 민주노조의 중요성이 더 절실하게 다가온다. 사측의 노무관리와 현장 갈라치기는 교묘하고 치밀했다. 결국, 민주노조 깃발은 꺾였고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은 조선업 최고 호황기에도 사측이 주는 대로 받아야 했다. 87년 노동자 대투쟁의 상징이었던 현대중공업에서 노조 위원장이 사측에 단체교섭을 백지 위임하는 꼴까지 보게 됐다. 동트는 미포만의 새벽을 기다리며 어둠의 세월을 보냈다.

“사측 교묘한 현장탄압에 무너졌던 민주노조, 다시는 빼앗기지 말자”

조경근 지부장은 어깨가 매우 무겁다고 털어놓았다. “노동자들이 폭발했고 2013년 10월 ‘노조다운 노조’를 내세우며 다시 민주노조를 세우기 전까지 12년을 억눌린 채 살았습니다. 지금 우리가, 민주노조가 잘하겠습니다. 노동자 권리와 복지를 확대한 것은 노·사 상생과 협력을 부르짖는 사람들이 아닌 바로 민주노조입니다. 이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민주적 절차로 모은 현장 노동자들 의견을 중심으로 투쟁과 사업을 집행하고, 사측에 할 말 다 하면서 노동자의 건강과 일한 대가를 당당히 요구하는 민주노조가 현대중공업에서 계속 이어지고 발전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하는 조경근 지부장.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절규가 절로 나왔던 노동조합 초창기 시절과 이제 정년을 맞아 하나둘씩 현장을 떠나고 있는 선배노동자·동료들을 떠올렸다.

1987년 악명높은 현대중공업 경비대 폭력에 목숨을 잃은 이상남 열사, 88년 민주노조 인정하라며 현대엔진 본관을 점거하고 90년 민주노조 탄압과 공권력 행사에 맞서 골리앗 크레인에 올라갔던 현대중공업 노동자들, 그 과정에서 해고돼 다시 현장으로 돌아오지 못한 동지들 …. 조경근 지부장은 소위 민주노조 87년 1세대의 투쟁을 제쳐놓고 노동조합의 현재와 미래를 논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과거 뜨거웠던 열기 속에 머물러있겠다는 얘기가 아니다. 조경근 지부장은 “선배들이 세우고 일구어온 민주노조 정신을 바탕으로, 후배 노동자들이 시대적 변화와 현장 요구에 발맞춘 정책을 계속 새롭게 만들어내면서 민주노조를 힘차게 이어나가길 바란다”라고 밝혔다.

2019년 5월 전국의 금속노조 조합원들이 울산으로 모여 현대중공업 자본의 일방적인 법인분할 시도를 막기 위해 밤을 새웠다. 그 모습을 보며 금속노조와 함께한다고 자부하게 된 조합원들이 많다고 조경근 지부장이 알려 준다.
2019년 5월 전국의 금속노조 조합원들이 울산으로 모여 현대중공업 자본의 일방적인 법인분할 시도를 막기 위해 밤을 새웠다. 그 모습을 보며 금속노조와 함께한다고 자부하게 된 조합원들이 많다고 조경근 지부장이 알려 준다.

마지막으로 조경근 지부장은 금속노조 조합원들에 대한 감사 인사를 전했다.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은 2016년 12월 금속노조에 가입했다. 2004년 9월 당시 금속산업연맹(현 금속노조)이 현대중공업노조를 제명한 지 12년 만에 다시 민주노총과 함께하게 됐다.

금속노조가 우리한테 해준 게 뭐 있냐며 섭섭해하는 조합원들도 있지만, 2019년 5월 전국의 금속노조 조합원들이 울산으로 모여 현대중공업 자본의 일방적인 법인분할 시도를 막기 위해 밤을 새웠다. 그 모습을 보며 금속노조와 함께한다고 자부하게 된 조합원들이 많다고 조경근 지부장이 알려 준다.

조경근 지부장은 사측이 금속노조를 싫어하고 금속노조 가입투표를 방해한 데 다른 이유는 없다며, 산별노조로 노동자들 힘이 세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고 설명한다. 기업의 울타리를 넘은 산별노조답게 정부를 움직이고 정부 산업정책에 대응하는 데 더 힘을 실어달라고 주문했다.

조경근 지부장은 “올해 금속노조 핵심사업인 산업전환 대응이 자동차 중심으로 추진되는 모양새인데, 조선소에도 꼭 필요한 부분입니다. 정기선 부사장이 노동조합을 배제한 채 미래위원회를 만들어 독단 행보 중입니다. 금속노조와 함께 조선산업과 조선소 노동자들의 미래를 준비하고, 당장 시급한 임단협과 중대재해 문제도 잘 풀어나가겠습니다. 현대중공업지부 7월 총력투쟁에 금속노조 조합원 동지들의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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