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는 제조업 뿐 아니라 서비스업의 건강권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서서 일하는 노동자의 앉을 권리, 환경미화원의 씻을 권리, 따뜻한 밥 한 끼를 먹기 위한 휴게공간의 권리 등 사회적 관심과 지지 속에 다양한 노동자의 건강권 투쟁이 전개되고 있다. 피 흘리고 부러지고 죽지 않더라도 건강권을 주장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는 듯하다.

이렇게 되기까지, 금속노조는 20년간 한국사회의 건강권 투쟁을 이끌어왔다. 한국의 건강권 운동은 금속노조에게 마음으로부터 깊은 고마움을 갖고 있다. 그 중 한 사람으로서 오늘은 금속노조의 노동안전활동에 쓴 소리를 하고자 한다.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금속노조 노안활동의 내일이 밝지 않기 때문이다. 첫째, 노안활동가의 수명이 짧아지고 있다. 둘째, 금속노조의 울타리 밖에 있는 노동자들을 챙기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이 두 가지는 하나의 뿌리를 가지고 있는 듯하다.

노안활동가의 수명이 짧은 것은 활동 전망의 문제

80년대 말 노동자 대투쟁을 거치면서 민주노조를 세웠고, 산업재해로 인한 동료의 죽음을 지켜보았으며, 15세 문송면의 수은중독 사망과 원진레이온 투쟁을 함께 하면서 자연스럽게 노안활동가로 숙명처럼 살게 된 노동자들이 있다. 자신이 집행부에서 노안담당을 맡건 맡지 않건 스스로를 노안활동가로 여겼다. 풍부한 경험을 가지고 지역의 노안활동을 총괄하기도 하고, 현장에서 일하면서도 지역의 건강권 운동단체에 가입하여 활동하는 경우도 있었다. 사명감과 자부심으로 넘치는 이들은 후배 노안활동가들의 거울이었다. 헌신적인 이들을 통해 노안활동에 눈을 뜬 후배들이 생기면서, 노안활동가의 층이 넓혀져 왔다.

그런데, 문제는 단련된 활동가들을 흡수하는 체계가 금속노조에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느 정도 지회활동을 통해 단련된 활동가에게 경험이 부족한 신규 지회나 활동가가 부족한 소규모 지회를 돕게 하거나, 지역의 미조직노동자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건강권을 위해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줄 수 있어야 했다. 금속노조가 지역의 노안활동 체계를 갖추지 못함에 따라, 활동가는 지회 내에서만 활동전망을 봐야 했고, 집행부 임기를 마치고 현장에 복귀하면 자신의 노안활동도 끝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세대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여기에는 입장이 다른 집행부가 들어서면, 전 집행부의 활동가가 나서는 것을 꺼리는 풍토도 한 몫 했다.

▲ 충남지부의 지회 노동안전 담당자들이 발암물질 진단을 위한 현장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금속노조에서는 지역지부의 노안활동을 강화해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지만, 지부노안담당자 한 명을 두는 것으로 지역의 노안활동이 강화될 리는 만무하다. 지회를 뛰어넘어 지역의 사안에 대해 활동하고자 하는 활동가들을 체계적으로 양성하지 못함에 따라, 지역지부 노안활동은 지부노안담당자 한 명의 역량에 좌지우지 되는 상황을 초래하게 된 것이다.

노안활동의 위상을 울타리 밖으로 넓혀야 문제가 해결

문제의 근본 원인은 금속노조가 노안활동의 상을 크게 그리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지회별로 조합원의 건강권을 지켜나가는 노안활동 뿐 아니라, 160만 금속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노안활동, 지역의 소규모 사업장이나 미조직노동자들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보호하기 위한 노안활동의 상이 존재했어야 했다.

그런데, 이러한 위상은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다. 노안활동에 흥미를 갖고 더 많은 일을 해보고자 하는 활동가들에게 지역 활동의 비전을 만들어 줌으로써 금속노조의 지부역량을 풍부하게 만들었어야 했다. 지역의 일을 고민하는 활동가들이 만들어지면, 지역에서 노안이슈가 발굴되면서 지역 활동은 더욱 내실있게 강화되었을 것이다. 사람을 만들어내는 것 자체가 중요한 대안이라는 뜻이다.

지역활동가는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다. 집행간부로서의 임기를 마쳤지만, 자신의 경험을 살려 지역에서 활동을 하고자 하는 동지들에게 한 달에 하루 정도 소규모 지회나 비정규직 지회를 방문하여 안전진단 활동을 직접 함께 하면서 경험과 지식을 지원하는 멘토 활동을 하도록 이끌어낼 수도 있다. 크게는 지역명예산업안전감독관으로 임명해서 지역의 미조직사업장이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상담활동과 지원활동, 지역에서 중대재해 발생 시 노동부의 근로감독을 감시하는 활동 등 다양한 활동을 하게 할 수도 있다. 이미 유럽에서는 지역명예산업안전감독관이 미조직 노동자를 위한 중요한 대안으로 자리잡고 있다.

문제는 이들에게 공식적인 직책과 역할을 금속노조에서 마련해 줄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다. 노안활동가들이 개인의 의지가 아니라 조직적인 공식성을 가지고 활동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이러한 활동가들을 위해 금속노조에서 상급노안활동가 교육과정을 운영한다면, 활동가들의 경험도 나누고 활동의 질도 더욱 높일 수 있게 될 것이다. 노안활동가에게 보람과 긍지를 주는 금속노조를 기대한다.

김신범 / 녹색병원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산업위생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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