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저녁, 서대문 독립공원 내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서 광복65주년 기념공연이 열렸다>

제가 사는 곳은 서울 서대문구 독립문네거리 근처입니다.
직장 따라 서울로 올라온 지 26년째 이 일대에서 살아왔습니다.
지금은 옛 서대문형무소 자리에 조성된 독립공원 바로 옆에 살고 있습니다.
오늘 저녁 이 독립공원에서 광복 65주년 기념 특별공연이 열렸습니다.
저녁을 먹고 아내와 딸과 함께 바람도 쐴 겸 해서 구경을 갔었습니다.

옛 서대문형무소는 경기도 의왕으로 이전하고 그 자리에 독립공원으로 만들었는데,
형무소 옥사와 사형장 등의 공간은 구청에서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으로 꾸몄습니다.
평소는 유료입장인데 밤인데다 오늘은 특별히 광복절이어서인지 개방을 했더군요.
역사관 잔디밭에 마련된 공연무대 주변에는 휘황찬란한 조명이 빛나고 있었고,
이미 2천여명은 족히 돼 보이는 주민들이 모여들었더군요.  


<독립공원 인근 주민 다수가 잔디밭에서 공연을 지켜봤다. 뒤로 아파트가 보인다>

공원으로 들어서자 굵직한 목소리의 한 남성이 낯익은 글귀를 낭독하고 있었습니다.
백범 김구 선생이 쓴 <백범일지>에 부록 격으로 실린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를
탤런트 이영후씨가 낭독하고 있었는데요, 그는 더러 백범 선생으로 나오는 분입니다.
이어 젊은 여성국악인이 나와서 판소리 <안중근 열사가>를 부르고나서는
다시 피아니스트 임동창 작사.작곡의 <우리가 원하는 우리나라>를 불렀습니다.

팜플릿을 하나 구해서 보니 행사는 모두 4부로 돼 있더군요.
1부-다시 찾은 광명의 환희, 2부-빛으로, 기억으로, 3부-아름다운 나라, 4부-빛나라! 대한민국.
기념공연의 취지는 광복65주년을 맞아 지난날의 우리 역사를 돌아보고
나아가 희망과 자긍심이 넘치는 우리를 다짐해보자는 그런 것 같았습니다.
행사 마지막까지 지켜보았습니다만, 나름으로 알차게 준비한 것 같았습니다.

우리가 공연장에 도착하기 직전에 프롤로그와 1부 노래가 몇 곡 불리워졌더군요.
홍난파 작곡의 ‘봉선화’와 ‘고향의 봄’, 그리고 윤극영 작곡의 ‘반달’이 그것입니다.
모두 우리가 어린시절에 즐겨 불렀던, 귀에 익은 노래들이죠.     
그런데 이런 노래들을 이날 이런 자리에서 부르는 건 좀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홍난파와 윤극영은 모두 일제 때 친일을 한 사람들이거든요
괜히 딴죽을 걸려는 게 아닙니다.
유럽에선 나치협력 음악가의 음악을 공식행사장에선 연주를 금지하는 나라도 있습니다.

홍난파
윤극영

 

저는 이 인근에서 20년 넘게 살아온 관계로 독립공원이 조성된 경위를 좀은 압니다.
당시 서울시는 88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옛 형무소 자리에 독립공원을 조성했는데요,
주민들이 형무소 건물 때문에 집값 떨어진다고 민원을 제기한 것도 한 계기라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서울시가 공원을 조성하면서 생각이 짧았던 점이 없지 않습니다. 
당시에도 서울시는 이곳에 민족의 수난사를 홍보, 전시할 ‘역사관’ 건립을 밝혔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작업 과정에서 ‘역사관’보다는 ‘공원’ 조성에 무게를 둔 나머지
그로 인해 옛 서대문형무소 건물 가운데 80% 정도를 철거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서대형무소는 흔히 나치하 유태인수용소였던 아우슈비츠 수용소와 비견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두 곳의 현재 모습은 판이하게 다릅니다.
몇 년 전에 가봤더니 아우슈비츠는 과연 듣던 대로 원형보존 돼 있더군요.
(* 참고로 지금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서는 헐린 옥사 가운데 일부의 복원작업이 한창입니다.)


<원형 보존된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 입구>

일제의 압제에서 해방된 지 오늘로 65주년.
분명 기쁘고 또 축하할 일인 것은 맞습니다.
해방 후 우리는 경제적 성장과 민주화를 상당부분 이뤄 냈습니다.
외형으로만 치면 세계 10대 국가의 언저리에 와 있습니다.
세계는 우리나라의 비약적인 성장과 발전을 부러워하며 또 칭송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과연 우리가 선조들에게 자랑스런 후손인지는 의문입니다.
특히 일제하 중국 등 이역 땅에서 항일투쟁을 벌인 애국선열들에게는 말입니다.
반민특위 와해 후 해방 60주년이 돼서야 겨우 친일파 청산을 위한 특별법을 제정했으며,
최근엔 1919년 3.1만세의거 후 중국 상해에서 세운 임시정부를 폄하하기도 하더군요.
또 일부 극우세력들은 일본의 조선 강점이 근대화에 기여했다는 망언도 서슴치 않구요.


<컴컴한 사형장 건물 너머로 공연장의 화려한 불빛이 보인다>


<서대문형무소 시절의 사형장 모습. 현재도 보존돼 있다>

오늘, 광복 65주년 기념 특별공연장 바로 옆에는 사형장이 있습니다.
이곳에선 유관순 열사, 강우규 의사, 김동삼 선생, 허위 의병장 등 수많은 애국선열들이 순국하였으며,
해방 후 독재정권 하에서는 죽산 조봉암 등 진보인사 다수가 이곳서 최후를 맞기도 했습니다.
사형장 입구에는 10미터도 더 돼 보이는 커다란 미류나무가 한 그루 있습니다.
수 년 전에 공원에 나온, 이 인근에서 오래 살아온 한 노인한테서 들은 얘깁니다만, 
사형장에 들어서던 사형수들이 이 나무를 붙잡고 통곡하곤 했답니다.

이 밤, 컴컴한 사형장 너머 무대에선 화려한 조명과 함께 축가가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애국선열들이시여!
고혼이나마 편히 잠드소서!

기사제휴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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