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 고장 신고가 접수됐다. 티센크루프엘리베이터 서울 북부사무소에 있던 보수 담당자가 차를 타고 현장으로 출발한다. 고장 신고가 접수된 것은 경기도 양주에 있는 한 대형마트 엘리베이터. 현장에 도착해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르락 내리락 몇 번 반복하더니 금방 문제점을 찾아낸다. 수리를 위해 엘리베이터를 멈추고 그 위에 올라간 모습이 위험천만하다. 곳곳에 각종 전선과 철판, 전기 자재 등이 복잡하게 자리잡고 있다. 허리를 숙이고 들어가야 하는 좁은 입구와 먼지, 심지어 더위까지 수리 작업을 힘들게 한다. 엘리베이터를 들락거리는 얼굴은 땀이 범벅이고 옷에는 먼지가 가득하다. 중앙 장치를 확인하기 위해 기계실로 올라간다. 3층 높이로 고층건물도 아닌데다 기계실에 에어컨도 있는 정도면 보수 현장 중 행복한 축에 속한단다. 50여 분의 사투 끝에 엘리베이터는 다시 운행을 시작했다. 오늘도 성공이다.

▲ 김성민 조직부장이 고장난 엘리베이터 출입문을 점검하고 있다.

티센크루프엘리베이터코리아는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 무빙워크 등을 제작, 설치하는 업체다. 설치가 끝이 아니다. 승객들이 안전하게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수 있도록 점검하고 보수(A/S)하는 것도 노동자들의 몫이다. 6일, 서울지부 티센크루프엘리베이터지회 김성민 조직부장을 만나 전국의 엘리베이터를 움직이는 사람들, 보수 노동자들이 사는 얘기를 들어봤다.

전국 1만 개 엘리베이터를 움직이는 손

티센크루프엘리베이터코리아는 서울에 7개의 보수 사무소를 두고 있다. 서울 북부사무소의 18명 조합원들은 서울 광진구, 노원구, 그리고 경기도 양주시까지 지역의 900여 개 엘리베이터를 관리하고 있다. 전국의 조합원들이 관리하는 엘리베이터는 1만 여개. 일상적으로 엘리베이터 상태를 점검하고 고장 신고가 들어오면 즉시 출동해 엘리베이터를 수리한다. 그러다보니 다른 공장처럼 일하는 현장이 한 곳이 아니라 수십 개의 현장을 옮겨 다니며 일을 한다. 고장 신고가 들어오면 어떤 곳이든 내가 일하는 현장이 되는 것. 예전에는 2명이 짝을 지어 보수 업무를 하기도 했지만 현재는 혼자 현장을 다닌다. 같은 사무소에 있어도 아침 출근 시간에 보는 것을 제외하면 같이 얼굴 맞대고 있는 시간은 거의 없다. 심지어 전국 곳곳에 뿔뿔이 흩어져 있다 보니 다른 지역 조합원들 얼굴 보는 것도 1년에 한 두 차례 뿐이다.

보수 업무의 특성상 24시간 사무소를 지켜야 한다. 그래서 모든 조합원이 월 4회는 사무소에서 숙직을 하면서 야간 보수 업무를 처리한다. 지역에서는 일명 ‘콜대기’라는 것이 있었다고 한다. 사무소에서 숙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집에 가서 자다가 고장 신고가 들어오면 보수를 하러 가는 것. 그러다보니 집에 가서 잠을 자도 맘 편히 잘 수도 없고 벨소리에 민감해서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단다.

▲ 김성민 조직부장이 고장난 엘리베이터 안에서 수리 작업을 하고 있다.

엘리베이터에 사람이 갇히는 사고가 생기면 조합원들은 119보다 빨리 가야 한다. 조합원들이 먼저 도착해서 문을 열어주면 간단하지만, 멀리 떨어진 곳에 있어서 늦게 도착하기라도 하면 구조대원들이 사람들을 구조하기 위해 문을 억지로 벌리고 부수다시피 하니 대형 공사가 돼버리는 것. 엘리베이터 사고 현장에서 119 구조대원만큼 간절하게 필요한 사람들, 바로 엘리베이터 보수직 조합원들이다.

“우리는 서비스직 노동자나 다름없어요”

엘리베이터 보수 업무를 하는데는 각종 어려움이 따라다닌다. 조합원들이 피하고 싶은 것 중 하나는 고층건물. 높은 건물을 보면 한숨부터 나온다. 대부분 엘리베이터 기계실은 건물의 옥상, 가장 꼭대기에 위치해있다. 그러다보니 25층 아파트 엘리베이터가 고장이라도 나면 꼼짝없이 옥상까지 계단으로 걸어 올라가야 한다. 김 조직부장은 20kg, 30kg 무게의 부품을 가지고 25층 건물을 3번이나 걸어 올라간 적도 있었다. 워낙 계단을 오르내리다 보니 조합원들 중 무릎이 아픈 사람도 많다.

더위도 조합원들을 괴롭히는 요인 중 하나. 대부분 기계실에는 에어컨이 설치되어 있지 않다보니 요즘 같은 날씨에는 땀으로 목욕을 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안그래도 더운 날씨에 옥상에 위치해 있고, 기계까지 돌아가고 있어 40도가 넘는 고온을 견디며 일해야 한다. 땀이나면 더운 것을 견디면 되는 문제만이 아니다. 전기 부품들을 다루다 보니 손에 물이 묻으면 전기가 통할 수도 있고, 부품에 땀이라도 떨어져 제품이 망가질 수도 있다. 여름보다야 겨울이 낫지만 겨울 추위도 힘들기는 마찬가지.

▲ 엘리베이터 작동을 관리하는 기계실에서 작업하는 김성민 조직부장. 더운 날씨 탓에 땀이 가득하다.

이 날 김 조직부장은 근처 지역에서 점검을 하던 조합원과 같이 점심을 먹었다. 이런 일도 흔히 있는 것이 아니란다. 각자 지역에 흩어져 하루 종일 일을 하다 보니 혼자서 밥을 먹는 경우도 많고, 갑자기 고장 신고가 들어오거나 일을 많으면 식사 때를 못 챙기는 경우도 많다. 쉬는 시간, 점심 시간 모두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일을 하는 틈틈이 본인이 알아서 챙겨야 하니 제 때 챙겨 먹기가 쉽지 않다.

무엇보다 힘든 것은 고객을 상대하는 것이다. “업무는 제조업으로 분류되어 있지만 점검이나 보수를 나가면 고객들을 직접 만나고 민원도 접수 받아야 하니 서비스직이나 다름없어요” 고장이 났을 때 현장에 주로 가다보니 고객들이 좋은 소리를 하기보다는 불만을 쏟아내는 경우가 더 많다. 가끔은 욕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고객들의 민원이 조합원들을 힘들게 하기도 하지만 이것이 지회의 주요한 파업 전술이 되기도 한다.

파업 끝내고 민원처리도 조합원들 몫

지회는 지난 5월부터 회사와 임단협 교섭을 진행해왔다. 하지만 회사는 단협안 62개의 개악안을 지회에 들이밀었다. 대부분이 노조 전임자, 노조활동 시간 등의 내용이다. “회사가 노조에게 모든 것을 내놓고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식이니 투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죠” 지회는 6월부터 3차례에 걸쳐 전조합원 총파업을 진행했다. 총파업 출정식에는 제주도에 있는 조합원들도 올라왔다.

지회 전체 조합원 중 60% 정도를 차지하는 보수직 조합원들도 전국에서 업무를 중단했다. 전국 1만 여 대의 엘리베이터를 관리하고 있는데 고장 신고를 해도 고치러 갈 사람이 없으니 고객들의 민원이 쏟아질 수밖에 없다. “처음에는 회사에서 워낙 보수 업무도 협력업체를 늘리고 있는 상황이라 효과가 얼마나 있을까 싶었지만 협력업체에서 자기들이 담당하는 엘리베이터에 우리 몫까지 감당하는게 쉽지가 않더라구요. 7월 1일, 2일에도 총파업을 하고 주말에도 보수 당직 업무를 안했으니 민원이 엄청났죠” 파업 투쟁으로 고객들의 민원을 조직하고 회사를 압박하는 셈. 하지만 보수직 조합원들의 파업은 좀 다른 것이 있다.

하루 파업을 하더라도 현장에 복귀했을 때 쏟아지는 고객들의 불만과 민원을 처리하고 머리를 조아려야 하는 것도 조합원들의 몫이다. “지난 주 4일 파업을 했으니 오늘도 조합원들이 현장 다니면서 욕도 많이 먹고 힘들거예요” 오늘 현장을 찾아갔던 한 조합원은 예상대로 파업 기간에 고장이 발생한 일로 고객에게 한바탕 싫은 소리를 듣기도 했다. 현장을 다니다보면 왜 파업을 하냐고 묻기도 하고, 또 할거냐고도 묻는다. 이런식으로 하면 계약을 해지할 수도 있다는 협박(?)도 조합원들이 직접 들어야 한다. 그리고 결국 조합원들의 현장이 없어지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한다.

지난 1992년과 1998년 지회는 6개월과 37일의 장기간 파업을 진행했었다. 지회의 요구는 쟁취했지만 보수직 조합원들의 현장은 없어졌다. 장기간 파업 때문에 고객들이 계약을 해지한 것. 김 조직부장이 있던 사무소는 현장이 하나도 남지 않아 결국 사무소를 폐쇄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파업 끝나고 보니 생산 공장은 돌아갈 곳이 그대로 있었는데, 우리는 일할 곳이 아예 없어져 버린 거죠. 솔직한 심정으로 현장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거에 대해서 조합원들이 걱정도 하고 불안해하기도 하죠” 생산과 설치, 보수가 업무의 내용도 특성도 너무 다르다보니 조합원들 사이에서 갈등이 생기기도 했다. 보수직 조합원들은 당직과 잔업 수당이 임금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다보니 임금에 대한 걱정과 불만도 있었다. 하지만 올 해 총파업, 전국의 보수직 조합원들은 단 한 명도 빠지지 않고 일손을 멈췄다.

"제대로된 파업 13년만에 처음"

회사는 생산, 설치, 보수 업무까지 협력업체의 비중을 조금씩 늘려가고 있다. 파업을 해도 회사에서 협력업체 쪽으로 일을 넘겨 대응하기 때문에 요즘 지회의 전술을 기습파업이다. 전 날 밤 10시 “내일은 파업입니다”라는 문자를 받는 것으로 다음 날 기습파업에 돌입한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김 조직부장은 협력업체 비중 증가는 “결국 지회의 영향력을 없애겠다는 속셈”이라고 말한다. 현재 회사는 북부사무소가 담당하고 있는 지역의 일부도 협력업체에게 넘기려고 하고 있다. 워낙 방대한 지역을 담당하면서 멀리 이동을 해야하니 회사의 뜻에 동의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우리의 현장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것이 김 조직부장의 생각이다.

김 부장에 따르면 제대로된 파업이 13년만이라고 한다. 지난 98년 투쟁 이후 회사는 조금씩이지만 꾸준히 임금을 인상해왔고, 지회는 부분파업 이외에 큰 투쟁을 만들지 않았다고 한다. 2006년과 2008년 두 차례의 희망퇴직과 구조조정이 있었지만 그때도 마찬가지였다는 것. “사실 회사는 별다른 마찰은 하기 싫고 조금씩 조합원들을 길들여온거죠. 그때 좀 더 제대로 투쟁을 했더라면 올 해처럼 회사가 지회 자체를 없애겠다고 나서지는 못했을 거예요” 김 조직부장은 노조 활동은 아예 못하게 하겠다는 개악안을 들이밀면서 파업을 하자 “이건 서로를 죽이는 길이다. 서로 윈윈하자”고 나서는 회사의 태도에 분노했다. 그리고 “이번만큼은 제대로 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13년 동안 조합원들의 생각이 많이 달라지기도 했지만, 이제는 해도 너무하는 회사의 안을 보고 조합원들도 분노하고 있어요. 쟁의행위 찬반투표에서도 대부분이 찬성표를 던졌구요” 새롭게 시작하는 것과 같은 상황의 어려움도 많지만 분명히 희망이 있다. 조합원들과 끝까지 투쟁해서 승리해야하지 않겠냐는 의지가 든든하다.

“우리가 없으면 엘리베이터는 누가 고치나요”

사무소는 노원구에 있지만 오늘 점검 현장이 양주에 있다보니 오늘 식사 장소는 양주의 보리밥집. 함께 밥을 먹은 조합원과 다시 헤어져 각자의 현장으로 간다. 오늘 김 조직부장이 점검해야 하는 엘리베이터가 있는 현장은 10여 층 높이의 아파트. 아파트가 동수가 많다보니 점검도 2일이 걸린다고 한다. 투쟁도 하고 엘리베이터 수리도 하느라 바쁜 요즘이다.

▲ 점심식사를 같이 한 김성민 조직부장과 한 조합원. 각자 현장에 흩어져 일을 하다보니 점심을 같이 먹거나 제 때 식사를 하는 것도 쉽지 않다. 어려움도 많지만 고장난 엘리베이터를 수리해 제대로 가동될 때, 노인들과 아이들이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는 모습을 봤을 때 자부심을 느낀다.

보수 업무를 하면서 가장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언제일까. “우리 업무는 없으면 안되는 일이잖아요. 고장났을 때 우리가 없으면 고칠 수가 없으니까요” 김 조직부장은 고장난 엘리베이터를 고쳐서 노인분들과 어린 아이들이 계단을 오르내리지 않아도 됐을 때가 가장 기분이 좋다고 전한다. 내가 고친 엘리베이터가 잘 운행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부심도 느낀다. 싫은 소리를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수고했다며 집에 들어가 밥이라도 먹고 가라고 말하는 고객들도 있어 힘이 나기도 한다. 멈춰버린 엘리베이터를 다시 움직이게 만들고, 사람들의 안전과 편안함을 책임지는 티센크루프엘리베이터 보수 조합원들. 더위와 싸우고 구슬땀을 흘리면서 오늘도 어느 건물 계단을 올라가고 있을 이들이 있기 때문에 오늘도 엘리베이터 이상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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