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독과 소설가를 꿈꾸던
한 총각이 있습니다.
나이 마흔. 그는 자동차를 팝니다.
자동차 파는 일이 싫겠다고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에게 자동차를 파는 일은
영화 속,
소설 속 세상보다
다양한 인간관계 속에서
삶을 읽을 수 있는
재미있는 일입니다.


▲ 대우자판지회 최강호 조합원은 98년 입사 후 자동차를 판 연수는 4~5년에 불과하다.


세상이 궁금한 한 남자, 자동차 판매원이 되다

최강호 조합원은 1998년 부푼 꿈을 안고 대우자동차판매(주)에 입사했다. 세상 구경, 사람 구경이 즐거웠던 최조합원에게 판매직은 최고의 직업이었다. 지명도가 낮은 대우차를 고객들에게 팔려면 남들보다 더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그럼에도 최조합원은 지점에서 차를 잘 파는, 잘나가는 남자였다.
‘술 한잔하면서 삶의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고객’이 수 백명이 될 즈음 어느 날. 다른 지점으로 옮기라는 명령을 받게 된다. 동료들도 정당치 못하다는 것을 알텐데 따르느 모습을 보고 최조합원은 실망할 수 밖에 없었다.
“지점 주변이 주 시장이고, 고객은 저를 만나기 위해 지점으로 찾아오는데 옮기라니요”. 부당발령이라고 생각한 최조합원은 바로 노동조합에 가입했다. 최조합원의 10년 투쟁기는 그렇게 시작됐다.

20여년동안 노조만 죽이는 사장

당시 대우자동차판매(주)은 부당노동행위로 악명을 떨치고 있었다. 회사는 조합원 개인별 성격, 가족관계, 종교 등 성향을 10여년동안 사찰하고, 노조탈퇴공작으로 영업소 폐쇄 협박, 징계협박, 인사발령, 금전적 차별, 반노조 교육 등 온갖 부당노동행위를 저지르고 있었다. 현 이동호 사장이 91년 대우자판 영업소장으로 부임해오면서 시작된 노조탈퇴 공작은 2000년 사장 부임 이후 3천여명이던 조합원을 2백여명으로 축소시키는 성과(?)를 낼 정도로 극에 달하고 있었다.
특히 2001년 판매직을 비정규직화 시키기 위한 임금체계 개악안은 가장 강력한 노조탈퇴 공작으로 손꼽힌다. 회사는 고정급을 4분의 1수준으로 줄이고 판매 인센티브를 높인다는 SR체계에 합의하지 않으면 퇴직시키겠다고 협박하며 동의서를 받아갔다. 2002년에는 조합원이 근무하던 영업소 43개 중 37개를 폐쇄하고, 전시장도 없는 골목길 슈퍼, 통닭집 2,3층으로 조합원을 인사발령 시켰다.
당시 대우자판지회(지회장 김진필)는 2년 6개월동안 노숙 상경투쟁 등을 진행하며 강하게 반발했다. 지회의 투쟁으로 임금체계는 지켜낼 수 있었지만 긴 투쟁이 끝날무렵 1백여 조합원만이 남았다. 이동호 사장의 한판 승리인 듯 보였다. 그러나 조합원들은 2001년 투쟁으로 전국에 흩어져있던 조합원들과 비로소 한마음을 같이하는 동지가 되었다고 기억한다. 지회는 현재까지 10여년을 싸울 수 있었던 원동력 역시 2001년 투쟁을 통해 다진 동지애라고 입을 모은다.

"끝장 한번 보자" 스카웃 제의 거부

임금체계 개악안 저지를 위한 투쟁이 한창이던 2002년 상경투쟁 중 최조합원에게 스카웃 제의가 들어왔다. 최조합원은 “대우자판 조합원들이 워낙 일을 잘해서 당시 많은 사람들에게 스카웃 제의가 들어왔습니다”며 자랑스러워 한다.
스카웃 제의를 받고 최조합원은 투쟁을 접고 면접을 보기 위해 비행기에 올랐다. 면접 후 합격이 확정됐지만 최조합원은 다시 서울행 비행기에 올랐다. “함께 싸우던 조합원들을 버리는 것은 현실에서 도망가는 것이었어요. 부끄럽고 자존심도 상했죠. 뭐가 되더라도 끝장을 보자고 결심하고 다시 투쟁에 결합했습니다”. 그로부터 2004년 임금체계 합의가 이루어질 때까지 최조합원은 대기발령을 받고 3년간 좋아하던 판매를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최조합원은 2년여 동안 지회와 투쟁하면서 ‘세상을 보는 눈’을 얻었기에 후회하지 않는다. 사회에 대한 궁금증이 많았던 최조합원에겐 큰 선물이었다.

"판매하게 해주세요"

임금체계가 합의된 2004년 1월 19일 이후 조합원은 다시금 판매를 할 수 있었다. 최조합원은 즐거웠다. 힘겹게 되찾은 판매사원 명함은 최조합원에게 다시 희망을 품게 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동호 사장은 2006년 또다시 기업분할로 노조 죽이기를 시도한다. DW&직영판매주식회사를 만들어 판매원들을 분리한 것. 지회는 반발했고, 차를 파는 조합원들에게 회사는 더 이상 차를 주지 않았다.
2001년 투쟁의 교훈으로 지회는 2년여 동안 조직 복원사업에 집중했고, 그 결과 기업 분할 반대 투쟁을 할 땐 SR 임금체계 사원들도 대거 가입된 상태였다. 조직력을 갖춘 지회는 이동호와 싸웠다.
그 결과 2007년 법원이 조합원들의 소속을 대우자판(주)이라고 판결했고, 곧 복귀됐다. 그러나 회사는 조합원들에게 대우자판 사번만 부여했을 뿐 고객명단조차 확인할 수 없도록 판매를 봉쇄했다. 또 회사는 보복조치로 대기발령을 시켰으나 이마저 불법으로 막히자, 회사는 50%가 넘는 조합원을 장거리 인사발령을 냈다. 심지어 조합원은 5천여만의 퇴직 위로금을 제시하면서 해고를 종용했다.
최조합원 역시 울산에서 부산까지 출퇴근하는 신세가 됐다. 더욱이 전시장도 없는 사업장으로 발령받아 차를 파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것. 회사는 “출근만 해라. 그 이후엔 알아서 해라”며 기본급만 지급하고 일체의 영업활동을 막았다. 그리고 2010년 대우자판 워크아웃으로 자택대기 상태인 지금까지 최조합원이 팔 수 있는 차는 없다. 최조합원에게 지금 꿈이 뭐냐고 물었을 때, 그는 ‘정상영업’이라고 말한다.

이동호, 사랑도 빼앗았다

조합원들은 마흔 노총각인 최조합원이 이동호 때문에 결혼도 못한다고 말한다.
실제 최조합원은 2008년 결혼을 약속한 사람이 있었다. 10월 약혼녀와 양가 인사를 드리고 11월 상견례를 계획하고 있었다. 그러나 2006년부터 전개해오던 파업이 교섭결렬로 2008년 10월 무기한 전면총파업투쟁에 돌입하게 된다. 바로 최조합원이 결혼을 약속한 지 며칠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최조합원은 지회와 함께 서울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조합원들이 본사를 점거하자 회사는 단전조치를 취했고 최조합원은 전화도 하지 못하고, 출입도 통제된 상태로 45일을 버텼다. 그렇게 결혼은 끝났다. “나가려면 나갈 수 있었죠. 그런데 직장이 이렇게 불안한 상황에서 약혼녀를 붙잡고 있을 수 없더라고요. 가장이 되는 건데 자신이 없었어요”. 이렇게 최조합원의 사랑은 빼앗겼다.
이번투쟁만 끝나면 결혼해야지…이라며 미뤄온 게 벌써 마흔이다.
“맞선 자리에서 직업을 물어보면 뭐라고 대답해야할지 몰라서 선도 못보겠어요”라는 최조합원. 결혼 적령기를 넘긴 대우자판지회의 총각 조합원들 역시 한결같은 호소다. “대기발령 중입니다”라고 말할 수 없기 때문에.

회사 망해도 노조는 안 돼!

1998년 입사
1999년~2001년 정상영업
2001년~2004년 투쟁 및 대기발령
2004년~2006년 정상영업
2006년~2010년 투쟁 및 대기발령,
전시장 없는 사업장에 장거리 발령
2010년 5월~ 자택대기 상태


98년 입사 후 12년 동안 최조합원이 정상영업한 년수는 겨우 4~5년. 올해 5월 4일부터는 아예 기약 없는 자택대기 중이다.
최조합원은 지금도 부산으로 출퇴근하면서 새벽 5시에 일어나 출근한다. 산으로 스포츠 센터로 출근한다. “양복을 입어야 하던 아들이 평상복으로 출근하는 모습을 보고 부모님도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계속 부모님을 속일 수도 없는 것. 양심의 문제도 있지만 이제 할 일이 없다. 최조합원은 “당장 다음 주엔 뭘 하면서 하루를 보내야 할지 걱정이에요”라며 걱정한다.
최조합원 뿐 아니라 많은 조합원들이 가정에서 생활고와 스트레스로 고통을 받고 있다. 10여년 간의 긴 투쟁으로 정상적인 월급을 받지 못한 조합원들은 최악의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 비조합원은 입사 후 6개월 만에 주임, 1~2년이 지나면 대리 그 후 과장, 차장, 부장으로 승진하지만 대우자판지회 조합원들은 15년째 주임이다. 월급도 처우도 승진도 조합원들에겐 제대로 주어지지 않았다.

이동호 물러나고 판권회복해야

대우자판(주)은 2000년 1천 4백억 원의 흑자, 2001년부터 2003년까지 6백억원 가량의 흑자를 기록해왔으며, 부채비율 70% 가량의 초우량기업으로도 유명했다. 이동호 사장이 노조를 죽이기 위해서 영업을 봉쇄하고, 판매보다는 건설에 투자한 이후에는 GM대우로부터 판권을 박탈당하고 부도직전 워크아웃 상황이 초래된 것이다.
그런데 경영진은 회사 살리기에 앞서기 보다는 경영위기를 빌미로 또다시 조합원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 더욱이 정리해고를 남발해 온 이동호 사장은 인원축소만이 회사를 살릴 수 있는 길인 양 언론에 선전하고 있다. 판매실적 저조로 인한 판권박탈의 책임을 조합원들에게 떠넘기고 있는 것이다.

6월 이동호와 한판 붙자

최조합원이 10여년을 투쟁해오고, 마지막까지 투쟁을 결의하고 있는 것은 인간이고자 하는 ‘자존심’ 때문이다. “정당한 노조활동을 막무가내로 막고, 회사를 위기에 처하게 한 이동호 때문에 좋아하는 회사를 떠나는 것은 자존심이 상합니다. 누구에 의해 떠밀려 나가는 것은 절대 하지 않을 것입니다”. 최조합원과 같은 마음으로 지회는 6월 투쟁을 준비하고 있다. 모일 곳이 없는 전국의 조합원들이 지역별로 사무실을 마련하고 조합원을 모으면서, 이동호 사장과 한판 붙을 태세를 갖추고 있다. 이동호 사장 퇴진과 정리해고 분쇄, 회사 정상화를 위해 대우자판 지회 조합원들의 결의가 6월 다시 한 번 울려 퍼질 것이다.
이동호는 노조가 없는 착취를 원하지만 최조합원은 열심히 일할 수 있는 회사를 원한다.
정리해고 돼야 할 사람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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