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창원에 위치한 제이티정밀 생산현장 문은 굳게 잠겨있다. 4월 27일 회사가 완제품과 반제품을 빼간 이후 조합원들이 들어가지 못하게 잠궈버린 것이다. 경남지부 제이티정밀지회 조합원들은 회사 측이 더 이상 제품을 반출하지 못하도록, 공장 안에서 다시 작업을 할 수 있도록 지회 사무실이 있는 직원식당에서 밥을 먹고 잠을 자며 철야농성을 진행하고 있다. 철야농성 28일차를 맞이하던 26일 이선이 지회장과 조합원들을 만났다.

2년 만에 다시 묶은 머리띠

지난 2008년 5월, 조합원들은 공장 매각에 맞서 137일 공장 점거 농성을 진행했다. 그리고 2년이 지난 올 해 5월 다시 농성을 시작했다.

제이티정밀은 1988년 일본자본이 씨티즌정밀이란 이름으로 세운 시계 제작 업체다. 조합원 중 제일 막내가 13년 넘게 일을 했고, 회사가 생긴 이후부터 지금까지 20년 넘게 일을 해온 조합원도 있다. 제이티정밀은 2년 전까지만 해도 부채가 전혀 없는 탄탄한 기업이었다. 그런데 2008년 씨티즌자본은 노동자들에게 아무런 말도 없이 고려TTR(대표이사 김선남)에게 주식 88만주를 팔고 일본으로 떠나버렸다. 매각합의서도 공개되지 않는 상황에서 조합원들은 씨티즌의 자본철수를 위한 위장매각이라는 우려 속에 투쟁을 시작했고, 137일에 걸친 일본원정투쟁과 점거 농성 등을 통해 고용과 단협승계를 쟁취했다.

▲ 제이티정밀 조합원이 회사의 기계반출에 대비해 공장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다.

매각 투쟁 이후에도 회사의 상황은 정리되지 않았다. 계속해서 물량이 줄어들고 적자가 발생했고 회사는 휴업을 반복했다. “매각이 끝나고 2년 동안 마음 놓고 일을 할 수 없었어요. 언제든 문제가 터질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죠” 매각 이후 회사는 어떠한 경영계획도 제시하지 않았고 생산 투자도 진행하지 않았다. 오로지 “노조 때문에 회사를 살릴 수 없다”는 주장을 하면서 노조에 고통분담만을 요구했다.

2009년 5월 회사는 적자를 해소하겠다며 관리자 7명을 해고했다. 그리고 그 해 10월 12일 단체협약을 해지하고 모든 노조활동 규제, 생리수당 및 월차수당 폐지, 통근버스 폐지 등을 진행했다.

해고로 회사 적자 막는 하루살이식 회사 운영

그리고 올 해 2월 회사는 올 한해 적자가 17억으로 예상된다며 적자를 해소하기 위한 회생방안을 내놓았다. 회사의 방안이라는 것은 100여명의 정직원을 41명으로 축소하고 임금을 1/3로 삭감하는 것이었다. 조합원들은 회사의 안에 합의할 수 없었고, 인원 구조조정이 아닌 단협 현행유지와 대주주 출자를 통한 회생방안을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회사는 노동자들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제이티정밀은 일본에서 시계 제품을 수주 받아 제작한다. 이선이 지회장은 “회사에서는 단가가 낮아 생산을 해도 적자를 볼 수밖에 없는 제품을 수주받아오고, 일본과 제품 단가 협상이 잘 되지 않는다는 핑계를 대고 있다”고 전한다. 회사는 일본과 협상이 어려운 이유도 노조가 양보를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결국 적자를 해소하기 위한 경영계획, 생산확대 노력은 하지 않고 노동자들에게만 희생을 강요하고 있는 것.

“왜 회사 적자를 충당하려고 우리가 희생해야 하나요?” 조합원들은 회사가 강요하는 고통분담을 받아들일 수 없다. “지난 해 적자는 관리자들을 해고하는 것으로 해결하고, 올 해 17억 적자는 노동자를 50% 이상 해고하고 임금을 깎아서 해결하겠다고 하는데 이런 하루살이 같은 회사가 어디 있느냐” 올 해 노동자들이 양보한다해도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결국 똑같은 상황이 반복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

▲ 5월19일 제이티정밀지회 조합원들이 '제이티정밀 폐업철회와 6월 총파업 승리를 위한 경남지부 확대간부 전진대회'에 참여하고 있다.

회사창립일을 맞아 조합원들이 휴가를 간 4월27일 회사는 관리자들을 불러내 약 20억 규모의 완제품과 라인에서 생산을 하던 반제품, 부품 등을 회사 밖으로 반출했다. 다음날 교섭 자리에서 만난 조준행 대표이사는 “2008년에 노조에서 회사를 점거해 물건을 출하하지 못했던 것에 대비해서 뺀 것 뿐”이라며 “회사의 안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7월30일부로 폐업하겠다”고 통보했다. 회사가 제시한 최종 안은 118명의 인원을 45명으로 축소, 상여금 200% 삭감, 각종 수당 폐지, 각종 휴일 축소, 노조 전임자 및 활동시간 축소 등이었다.

지회는 바로 전 조합원을 소집해 상황을 공유하고 생존권보장과 공장폐업철회를 요구하며 철야농성에 돌입했다. 그 날 이후부터 80여 명의 조합원들은 조를 짜서 부산에 위치한 고려TTR 앞에서 대주주인 김선남이 직접 교섭에 나와 사태를 해결할 것을 요구하며 1인 시위와 집회를 진행했다. 노동부도 찾아가 사태 해결을 위해 나설 것을 촉구하고 지역의 노동자들에게 상황을 알리고 연대를 호소하는 선전전을 진행하고 있다.

악랄한 자본, 매운맛을 보여줘야

조준행 대표이사의 이력이 참 재미있다. “노동부에서 일한 경험으로 노동자의 권리를 더 잘 보장하기 위해 노력하기는커녕 법을 잘 이용해서 앞장서 탄압하고 있어요” 조 대표이사는 제이티정밀 매각 당시 창원지방 노동청 소장이었고, 매각 이후 제이티정밀 전무이사로 들어와 대표이사가 됐다. 그리고 계속해서 노사관계를 악화시키고 경영난 해소에 걸림돌이 된다며 일방적으로 단협을 해지한 장본인이다. 노동부를 찾아가 항의를 해도 “도덕적으로 대표이사가 잘못을 했다고 해도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문제”라는 대답 뿐이다. 김선남 대표이사는 상황이 이러하지만 단 한 차례도 교섭에 나오지 않고 있다.

회사가 물건을 빼내고 문을 닫겠다고 통보했을 때 조합원들은 막막하고 답답한 마음에 투쟁을 시작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긴 싸움이 마무리된 지 2년 만에 또 다시 끝을 알 수 없는 싸움이 시작되고, 갈 곳을 잃을 수도 있다는 걱정이 컸다. 하지만 2년 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회사를 팔아버린 씨티즌자본과, 회사를 사놓고도 경영을 제대로 경영하려는 노력도 없이 노동자들만 희생하라고 얘기하는 고려TTR자본에 대한 분노를 참을 수는 없었다.

“경영을 하려고 회사를 산 것이 아니었습니다. 일본 씨티즌 자본이 철수하는 걸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 매각을 했다는 것이 확인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런 자본들, 이런 대표이사들을 그냥 두면 어디가서든 똑같은 일을 하고 노동자들만 당하게 될겁니다” 이 지회장은 투쟁할 수밖에 없는 이유 중 하나가 여기 있다고 말한다.

이번 싸움, 갈 때 까지 가보자

조합원들을 무엇보다 더 화나게 하는 것은 20년 넘게 같은 공장에서 일했지만 대표이사 지시에 따라 물건을 빼내고 회사 문을 걸어 잠근 관리자들의 행태다. 관리자들은 “회사에서 이미 법대로 다 조치해놨고 아무리 해봤자 너희가 질 싸움이니 나가랄 때 그냥 나가라”고 얘기한다. 하지만 우리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나가라는 지시에 고분고분 나갈 수는 없는 문제. 그렇기 때문에 싸움을 시작했다.

▲ 5월26일 제이티정밀지회 조합원들이 텅 빈 식당에서 조별 간담회를 벌이고 있다.

싸움을 시작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조합원들은 투쟁의 파고를 높여가고 더 똘똘 뭉쳐 하나가 되고 있다. “2년 동안 일하면서 늘 불안하기만 했는데 일이 벌어지고 이제 투쟁할 일만 남았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마음이 후련합니다” 2달 뒤면 회사가 문을 닫을지 모르는 상황이지만 투쟁의 전선에 서있는 조합원들의 표정은 밝다. 찡그리고 있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니니 막막하고 힘들지만 더 밝게 투쟁하자는 것이 조합원들의 생각.

지회장과 조합원 모두 이번 싸움의 결과가 무조건 좋을 것이라고 낙관하고 있지는 않다. 싸움을 통해 뭔가를 좀 더 받아내는 것을 원하는 것도 아니다. 자신들의 이득을 위해 노동자들을 무시하는 자본에게 맞서서 갈 때까지 가보자는 마음으로 붙은 싸움이다. 26일 뜨거운 햇빛이 내리쬐지만 조합원들은 힘차게 부산 고려TTR 앞으로 향한다.

이제는 금속노조가 나설 때

갈수록 국내에 외투기업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경기, 충남 등 전국 곳곳에서 외투자본의 횡포와 노동자 탄압이 자행되고 있다. 제이티정밀 사태는 한 회사의 문제가 아니라 이미 2008년 일본 자본이 철수하는 과정에서 시작된 문제로 전체 외투자본의 문제 속에서 발생한 것이다. 외투 자본의 무책임한 자본철수와 그로 인해 노동자들의 생존권이 위협받고 있는 상황.

“외투자본들 횡포 때문에 결국 노동자만 죽어가고 있습니다. 금속노조 차원에서 외투자본에 대한 규제 강화를 요구하고 싸움을 하지 않는다면 이 땅에서 노동자로서 제대로 일하고 자유로울 수 있는 노동자가 있겠습니까” 이 지회장은 한 사업장에서 시작된 싸움이지만 이제 노조가 나서 전체 외투자본에 대한 투쟁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조합원들은 노조에 쓴소리도 한 마디 한다. “작은 규모 사업장이 어려운 상황에 놓였을 때 이 문제를 개별적으로 놔둘 것이 아니라 노조가 전체 문제라고 인식하고 더 같이 싸웠으면 좋겠어요. 우리도 모두 금속노조 조합원이니까 말이죠” 지회에서 싸움을 하고 있지만 지회만의 대응으로는 대표이사와의 교섭 자리를 만드는 것 하나도 쉽지 않다.

“우리 조합원들은 앞으로 더 힘내서 싸울 겁니다. 그리고 이제 금속노조가 나설 차례입니다” 제이티정밀 조합원들은 더 큰 싸움을 준비하고 있다. 조합원들의 각오를 다지고 지역에서 함께하는 투쟁도 준비 중이다. 그 과정에 금속노조, 전국의 조합원들이 함께 연대의 뜻을 보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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