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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랑>의 야심 찬 기획과 실패 이유[강준상의 영화와 나 07] 한국영화산업 구조와 욕망의 실패
강준상  |  edit@ilabor.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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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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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비 200억 원을 넘게 들인 영화 <인랑>이 개봉했다. 한국에서 제작비 200억 원을 넘게 들인 영화 만들기 자체가 비상식적인 일이다. 왜냐하면, 손익분기점을 맞추기 위해서 600만 명의 관객이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1,000만 관객 넘기는 영화가 종종 나오는데 투자해볼 가치가 있지 않느냐라고 반문할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국민 5,000만의 한국에서 1,000만 관객이 드는 영화가 있는 사실이 비상식적인 일이고, 그런 영화는 1년에 만드는 50편 중 한 편에 불과하다.

200억 원 넘는 제작비를 쓰는 영화는 일종의 도박일 수밖에 없다. 영화 <인랑>은 관객에게 악평을 들으며 흥행에 참패했고, 관객 100만 명을 넘을지조차 불확실한 실패작이 됐다. 작품성과 흥행 모두 실패한 <인랑>의 영화 산업적, 정치적 의미를 간략히 짚어보고자 한다.

 

영화를 만든 두 가지 이유

이야기를 시작하기 위해서 ‘왜’란 질문 먼저 해보자. 김지운 감독은 왜 일본 애니메이션 <인랑>을 영화화하고 싶었을까? 감독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첫째, 영화산업적 의미로, “이 작품을 리메이크해 <로보캅>, <배트맨>, <아이언맨> 등의 할리우드 영화에서 볼 수 있는 파워 슈트를 한국영화에서 구현해 보고 싶었다”라고 한다. 둘째, 정치적 의미로, “4·19 혁명, 6월항쟁 등 한국의 정치 사회적 격동기를 두루 돌아보다가 과거가 아닌 현존하는 위기감을 가까운 미래를 통해 그려보면 어떨까 생각을 했다”라고 한다.

옆 나라 일본의 사이버 펑크 문화 속에서 형성된 애니메이션 <인랑>의 기계와 인간이 결합한 세계를 통해 할리우드의 액션 영웅물을 만든다? 최근 한국영화에서 자주 소재로 삼고 있는 근현대사가 아닌 가까운 미래의 정치 사회적 배경 속에서 표현해보고 싶다? 참으로 야심 찬 기획이 아닐 수 없다. 한국을 대표하는 흥행감독인 김지운 감독(<밀정>, <악마를 보았다>, <놈놈놈>, <달콤한 인생> 등의 감독)이 아니라면 과연 이런 시도를 할 수 있는 감독이나 제작자가 있을까?

   
 

2024년, 남북은 통일 5개년 계획을 선포하나 주변 강대국들은 한국을 둘러싼 동아시아 세력균형을 위해 강력한 경제제재를 시행하고, 남북한은 민생 악화로 혼돈의 시절을 겪는다. ‘섹트’라는 통일에 반대하는 반정부 무장단체의 테러행위가 만연하고, 국가는 이를 진압하기 위한 특수경찰인 특기대를 대통령 직속으로 조직해 정국을 장악하기 시작한다. 권력의 핵심이던 공안부는 입지가 줄어든다. 공안부는 특기대를 해체하기 위한 음모를 꾸민다. 영화는 이런 정치 사회적 배경에서 시작한다. 장소는 광화문, 무장테러단체 섹트는 이곳에서 시위 민중 사이에 섞여서 총을 난사하고 폭탄을 투척한다. 아무 죄 없는 의경들과 민중만 죽어 나간다. 이때 특수한 강화복을 입은 특기대가 출동해 섹트를 전멸시킨다.

 

원작과 개작 사이, 예정된 실패를 향해

원작과 비슷하지만, 전혀 결이 다르다. 원작에서 무장단체 섹트와 민중은 사실상 구분이 어렵다. 누가 테러리스트이고 누가 평화 시위를 하는 민중인지 구분할 수 없다. 하지만 김지운 감독의 <인랑>에서 무장단체 섹트는 대놓고 거리 한복판에서 기관총을 어깨에 걸고 난사를 한다. 섹트의 무차별한 폭력은 특기대의 폭력 진압에 대한 명분을 준다. 도대체 왜 섹트가 도심 한복판에서 이런 총격전을 펼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원작에서 섹트는 국가권력에 저항하기 위한 민중의 결사체지만 내부에서 점차 소멸해가는 자기모순의 상황에 놓였다. 한국영화 <인랑>에서 섹트는 폭력적인 극우 테러집단이다. 이 설정은 시대착오일 뿐 아니라 설득력도 없다. 원작에서 특기대는 국가라는 조직의 목적에 따라 움직이나 그 안에서 회의하며 고민하고, 언론과 여론의 압박을 받아 존재가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김지운의 작품에서 특기대는 정의로운 영웅 집단이 돼버렸다.

영화는 망가져 간다. 김지운 감독은 원작 애니메이션 <인랑>의 세계, 조직과 개인 사이, 인간과 짐승, 인간과 기계의 경계에서 인간존재에 대해 질문하는 철학의 세계, 그리고 할리우드의 영웅 영화들, 인류를 위협하는 적들로부터 지구를 구하는 장르 영화의 세계 등 전혀 다른 두 개의 영화 세계를 하나로 결합하려는 모순의 시도를 한 것이다.

그래서 섹트의 아무런 자기 동인 없는 테러행위는 원인은 오직 강동원과 정우성 두 영웅이 강화복을 입고 영웅 액션을 벌이기 위한 장치에 불과한 것이 됐다. 또 하나 어이없는 장면. 강동원과 정우성의 액션 장면에서 강화복의 핵심인 총알을 막는 마스크를 벗고 싸우는 이유는 스타인 강동원과 정우성의 얼굴을 보여주기 의도 말고 다른 이유가 없어 보인다. 강동원이 한효주를 구하고자 조직을 떠나는 설정은 헛웃음을 자아낼 뿐이다.

김지운 감독 스스로 말한 이 영화를 만든 두 가지 이유는 바로 이 영화가 예정된 실패를 향해가는 두 가지 이유이다. 첫째 원작인 애니메이션 <인랑>은 할리우드의 영웅 액션 영화와 전혀 다른 구조를 가진 영화인데 <인랑>을 개작해 영웅 액션 영화를 만들려고 한 점. 둘째 원작 <인랑>은 국가조직이 복잡한 권력 관계로 분열되어있는 상황에서 민중은 고통받고 그 속에서 조직과 개인에 대해 질문하는 정치적 맥락은 있는데, 한국영화 <인랑>에서 민중은 사라져버렸고 두 영웅이 갈등하고 있을 뿐이다.

김지운 감독의 <인랑>은 한국형 블록버스터를 꿈꿨으나 처참하게 실패한 영화로 기록될 것이다. 영화 <인랑> 실패는 김지운 감독 개인의 실패이기도 하나 한국영화산업의 구조와 욕망의 실패이기도 하다.

강준상 _ 다큐멘터리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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