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m CCTV 철탑위에 올라도,
70여일 단식으로 목숨을 내던져도,
6년을 길 위에서 투쟁해도 달라질게 없는 기륭전자 해고 노동자들.
이들의 싸움은 ‘불법 파견’에서 비롯됐다. 2002년 기륭전자는 파견업체를 통해 불법으로 노동자들을 고용했다. 그 후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자 집단해고 시키고 직장을 폐쇄했다. 그리고 노동자들은 돌아갈 곳도, 돌아갈 방법도 없이 거리에 내몰렸다.
당시 기륭전자는 ‘불법 파견’ 판결을 받고 벌금 500만원을 물었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이후 회사는 생산라인을 완전 도급으로 바꿨고, 파견기간 2년이 넘지 않았던 해고자들은 2년부터 정규직 전환이 되는 현행 파견법으로도 구제될 도리가 없다.

위장도급 숨기기에 도가 튼 사용자들

사용자들은 더 이상 뻔히 보이는 위장 도급, 불법 파견 같은 과오는 범하지 않는다.
여러 차례 법정에서 패하고, 벌금을 물어오면서 더욱 교묘한 방법으로 값싼 노동자들을 손쉽게 사용하는 방법을 익혔기 때문이다.
현대미포조선 경우 도급회사명만 존재할 뿐 채용, 징계, 승진, 상여, 출퇴근, 휴가, 근로시간, 근무태도 등 모든 노동조건을 원청이 담당했다. 2008년 대법은 ‘사실상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현대미포조선과 묵시적 근로계약관계가 성립한다’며 위장도급을 인정했다. 현대미포조선 같은 판례가 쌓일수록 원청은 채용, 임금, 징계, 근로지시 등에 직접 개입하지 않는 방법으로 법을 피하면 그만인 것이다. 민주노총 권두섭 법률원장은 “판례에 따라 원청은 도급 외형을 바꿔가기 때문에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점점 ‘위장 도급’을 입증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한다. 더욱이 위장 도급, 불법 파견이 증명되더라도 원청사업주와 직접 근로계약관계가 성립되지 않아 고용의무는 주어지지 않는다.
도급에 대한 관리감독 및 규제조치 마련이 시급함에도 정부는 의지가 없다. 같은 공정을 하는 노동자들이 한명은 정규직, 한명은 비정규직인 모습이 빤히 보이는 공장을 외면한 정부와 노동부는 이미 노동자를 착취대상으로 인식한지 오래다.

‘엎친 데 덮친 격’ 파견 확대, 정규직이 사라진다

최근 노동부가 32개 업무에 한해 파견을 허용하던 파견법(파견근로자 보호 법률)을 제조업을 포함해 49개로 늘리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이미 금속노조 사업장 비정규직의 98%가 사내하청 노동자다. 불법을 피하는 방법에 단련된 사용자들은 합법적으로 질 좋고, 값싼 노동자로 라인을 채우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파견범위가 제조업까지 확대되면 정규직들은 더 이상 설자리를 잃게 될게 뻔하다.
사용자들은 사내하청을 파견노동자로 전환하기보다는 사내하청은 계속 유지하고 정규직 일자리를 줄여나갈 것이라고 분석되기 때문이다. 민주노총 권변호사는 “현행 파견법엔 2년 이상 파견 시 정규채용의무와 동종 업무를 수행하는 근로자와 차별 처우 금지조항이 있기 때문에 사용자들은 기본업무는 도급 형태를 유지할 것”이라고 설명한다. 사용자들은 굳이 2년 후 정규채용의무를, 차별 처우에 대한 감시를 받고 싶지 않을 것. 결국 도급형태는 그대로 유지되고, 주변업무부터 파견을 확대해 전체노동자가 간접고용 노동자가 되는 결과가 초래된다.
현재 ‘모닝’이라는 완성차를 생산하면서도 외주화로 비정규직 신세를 면치 못하는 동희오토 노동자들. 업체 폐업, 계약거부 등 일상적으로 해고되고 이들의 현실은 파견법 확대의 목적이 무엇인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파견축소로 돌아선 일본…한국만 역주행

파견 노동자를 확대해오던 일본정부가 파견축소로 방향을 선회한 것은 주목할만 하다. 일본정부는 지난 3월 ‘근로자파견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내용을 살펴보면 등록형 파견 금지, 제조업에 대한 근로자 파견 금지, 일용 및 단기간 파견금지 등이 골자다. 노동자 파견에 대해 규제완화에서 규제강화로 전환하고, ‘근로자보호법’으로서의 성격을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장기적이고 전문적인 제조업 생산 공정에 비정규직 노동자가 확대돼 대량 해고, 고용불안정을 낳자 일본정부가 나서서 해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파견법․간접고용 철폐로 단결하자

최근 사법부에서는 사내하청 등 간접고용 노동자들에게 의미있는 판결을 내리고 있다. 지난 3월 ‘현대중공업은 협력업체들의 폐업을 유도함으로써 협력업체 노조 활동을 위축시키거나 침해하는 부당노동행위를 했다’고 대법원은 판단했다. 이는 도급, 파견 등을 위장하면서 제3자인양 빠져있던 원청사용자가 노동조건 및 노조활동을 실질적으로 지휘하고 있는 사용자임을 밝힌 것이다.
민주노총 권변호사는 “현행법으로는 불법이 밝혀져도 직접적 고용관계가 성립되지 않아 고용 등 원상복귀할 의무가 주어지지는 않는다”며 “이 같은 판결이 나올 수 있는 것은 수년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통해 사회문제로 공감됐기 때문이다. 결국 판결의 의미가 현실화되려면 우리가 싸우는 것 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회사에서 일을 하고 그것으로 이득을 보는 사람은 있으나 비정규직을 책임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파견법이 사용자에게 이러한 무한권리를 주고 있다”는 GM대우비정규직지회 신현창 지회장의 말에서 노동권이 무참히 짓밟힐 우리의 모습을 본다. ‘간접고용․파견법 철폐’를 외치며 오늘도 거리로 나선 간접고용 노동자들. 이제 정규직과 간접고용 노동자가 동일한 사용자를 상대로 함께 싸우는 것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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