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노조와 노동운동진영은 대선을 앞두고 각 후보의 노동정책에 대해 관심이 크다. 노동정책 논의 가운데 북유럽 등 한국보다 노조의 힘이 강한 지역의 노동정책을 자주 거론한다. 그러나 비정규직 문제는 북유럽도 예외는 아니다.

1980년대부터 시작한 신자유주의 광풍에 전 세계가 휩쓸린 결과 유럽과 대부분 영미권 국가에서 비정규직이 급속히 증가했다. 노조 조직률과 가입률이 높은 북유럽에서 비정규직 문제가 고개를 들었다. 북유럽 국가들이 비정규직 문제를 다루는 과정에서 노동운동진영이 이분화 하는 모습이 나타났다.

정부 정책 중 정규직과 비정규직 모두의 이해가 일치하는 사회보장에 대해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같은 입장을 취했다. 그러나 고용보호에 대해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입장에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잘 조직된 정규직의 목소리가 노동정책에 더 강하게 반영될 수밖에 없고 정치가 정규직의 이해를 주로 대변하는 현상이 발생했다. 다시 말해 정치가 고용보장 등 내부자인 정규직의 이해관계가 걸린 노동정책을 우선 추진하고, 외부자인 비정규직의 처우개선 등은 노동정책에서 지속해서 배제했다. 이러한 노동의 이분화는 노동운동 전체의 힘이 약화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북유럽에 비해 정치, 사회에서 열세에 놓인 한국 노조와 노동운동의 가장 큰 고민은 비정규직 문제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 한국에서 노동자의 이익을 정치가 대변하는 것 자체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 노동운동은 ‘노동자의 정치세력화’에 큰 관심을 뒀다.

▲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연대해야 한다. 동일한 사업장에서 다른 처우를 받으면서 노동자끼리 갈등할 문제가 아니다. 이런 제도를 만든 노동자와 사용자가 갈등해야 하며, 노동자와 국가 사이의 갈등이어야 한다. 경찰이 3월31일 고양시 일산서구 킨텍스에서 열린 서울모터쇼 행사장에서 불법파견 현행범 정몽구 구속을 촉구한 노조 현대차울산비정규직지회, 기아자동차지부 화성지회 사내하청분회, 유성기업지회 조합원들을 연행하기 위해 폭행하고 있다. 사진=김경훈

한국에서 정치, 사회에서 열세인 노동운동의 현실을 당장 해결하기 어렵다. 현재 약한 노동운동은 식민지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북유럽이 1, 2차 세계대전을 피해 농민협동조합과 노동자 조직을 만드는 동안 식민지 시대 조선노동자들은 노동 소외와 탄압을 겪어야 했다. 해방 이후 한국전쟁, 군부독재, 권위주의 정권으로 이어지는 정치, 사회 속에서 노동자의 목소리를 대변할 조직을 만드는 운동, 저항하는 운동을 국가와 기업이 통제하며 지속해서 방해했다.

노동운동은 1987년 민주화 이후 성장했으나 정치, 사회에서 중요한 세력으로 성장하기 전에 비정규직 문제에 직면했다. 아이러니는 비정규직 문제가 시작된 때가 이른바 민주화 세력이 집권한 시기였다는 것이다. 김대중 정부가 IMF 구조조정 안을 받아들이면서 도입한 신자본주의 경제정책은 ‘노동의 유연화’를 요구했다. 가장 먼저 구조조정이라는 명목으로 정리해고를 시작했다. 노무현 정부는 기간제법과 파견법을 도입해 비정규직화의 제도 기반을 완성했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는 비정규직에 대한 정책은 오로지 고용 유연성 확대에 측면에서 다뤘다.

노조와 노동운동진영은 ‘약한 노동’을 해결하지 못한 상황에서 비정규직의 증가라는 큰 문제를 마주했다. 노동의 이분화 현상 속에서 비정규직 문제는 대선 뒤 노동정책 순위에서 뒤로 밀릴 가능성이 높다. 전체 노동자의 절반 가까운 노동자가 비정규직이지만 비정규직의 노조조직률은 겨우 2% 남짓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비정규직은 노조의 조직률이 낮아 조직노동운동에 한계가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자신의 요구를 조직적으로 나타내지 못한 결과 비정규직 문제는 사회의 주요 문제로 다루어질 때나 선거를 위한 공약(公約)에서 잠시 등장할 뿐이다. 비정규직 문제가 김대중 정부 이래 시장의 입장만 대변하며 고용 유연화의 길을 걸어 온 이유는 비정규직의 이해를 정치가 전혀 반영하지 않기 때문이다. 노동의 이분화 현상 속에서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의 처우 개선을 위해 자신의 문제처럼 투쟁하는 것도 아니기에 비정규직의 문제는 심각성에 비해 사회 인식이나 정책 결정과정에서 소외될 가능성이 높다.

외부자인 비정규직이 고통 받는 사이 내부자인 정규직의 힘도 점점 약해지고 있다. 창원 지역 사업장을 예로 들면 사용자가 신입사원을 대부분 비정규직으로 고용하거나 사내하청을 적극 활용해 정규직 신입사원을 몇 년째 뽑지 않는다. 조합원의 고령화와 은퇴로 조합원 수는 점점 줄고 있다. 노동조합의 주요 사업으로 은퇴 조합원들의 노후 설계를 도와야 한다는 이야기는 술자리 농담이 아니다.

약한 노동이 이분화한 상황에서 노동의 이해를 정치적으로 대변하기는 더욱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가 되고 있다. 노조와 노동운동진영이 처한 어려움은 노동의 이분화를 극복하는 방안에서 해결책을 찾을 수밖에 없다.

첫째, 비정규직의 노조 조직률을 높이고 활성화해야 한다.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기 위해 이해를 대변하는 조직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둘째,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연대해야 한다. 동일한 사업장에서 다른 처우를 받으면서 노동자끼리 갈등할 문제가 아니다. 이런 제도를 만든 노동자와 사용자가 갈등해야 하며, 노동자와 국가 사이의 갈등이어야 한다. 노동자와 사용자의 갈등으로 문제를 치환하고 협상으로 해결하기 위해 노동자 사이 연대가 필요하다. 원칙만으로 접근하기에 노조와 노동운동진영이 처한 현실은 간단치 않다. 금속노조 기아자동차지부가 1사1노조 재검토를 위한 조합원총회를 추진하는 모습은 정당함과 부당함을 다지기 전에 한국 노동계의 민낯을 보여주고 있다.

정규직 노조와 비정규직 노조의 갈등은 노동의 이분화를 보여주는 지표이자 한국의 ‘약한 노동’을 더욱 약화시키는 징후이다. 노동의 이분화 문제에 대해 노조와 노동운동진영이 스스로 답을 하지 못하면서 대선을 앞둔 정치권에게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요구할 수는 없다. 비정규직의 보호 등 노동정책의 변화를 이번 대선에서 이끌어내지 못하면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노동계에 불리한 제도와 법률 아래에서 소송 등 법률 수단에 기댈 수밖에 없다. 다시 5월이 다가오고 있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 ‘동일 사업장에서 동일한 대우를 받을 권리’라는 기본 원칙 아래 노조와 노동운동진영이 하나 되는 모습을 기대한다.

이환춘 금속법률원 경남사무소 변호사

저작권자 © 금속노동자 ilabo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