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O 국제노동기구(아래 ILO) 이사회는 3월22일 민주노총과 금속노조가 제소한 ‘삼성 무노조 정책과 간접고용 남용을 통한 결사의 자유 침해 사건’에 대한 권고를 채택했다. ILO는 한국정부에 “간접고용 노동자 결사의 자유 보장 방안을 강구하라”고 요청했다.

제소에 포함된 삼성 인도네시아 공장에서 발생한 노조파괴에 대해 한국정부는 “한국 기업이 해외 사법 관할권에서 현지노동자를 채용하여 운영할 경우 기업은 현지법을 적용받는다”고 주장했다. ILO는 결국 인도네시아 공장 건은 심의에서 다루지 않았다.

세계화 시대에 기업이 노동자들의 노동으로 이익을 얻고 노동자들의 권리 보장 책임을 회피하는 유력한 수단으로 규제가 느슨한 나라에 공장을 짓고 현지 노동자들을 고용하거나 그런 나라에서 생산한 자재나 부품을 공급받는다.

프랑스기업 발레오는 국내 완성차기업과 안정 납품관계를 맺기 위해 만도를 인수한 후 2010년 직장폐쇄를 시작으로 노조 경주지부 발레오만도지회 활동을 무력화하기 위해 온갖 불법을 저질렀다. 발레오 본사는 발레오만도 경주공장에서 벌어진 노동기본권 탄압, 인권 침해에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될까? 결론부터 말하면 지금까지는 그래 왔지만 이제 사정이 달라졌다.

 

프랑스, 인권․노동권 침해 예방 의무화 법 도입

프랑스는 3월27일 ‘모회사와 발주기업의 인권 실사 의무에 관한 법’을 도입했다. 기업 활동으로 발생할 수 있는 인권․노동권 침해, 산업재해, 환경 피해 등을 예방하기 위한 계획을 스스로 수립해 실행하고 계획과 실행 결과를 매년 공개하도록 했다.

이 법은 자회사까지 국내에서 5,000명 이상 고용하거나 전 세계 10,000명 이상 고용하고 있는 프랑스 기업에 적용한다. 이들 기업이 책임지는 범위는 본사와 자회사, 상업 관계가 있는 모든 기업인 하청업체와 납품업체를 모두 포함한다.

▲ 프랑스기업 발레오는 국내 완성차기업과 안정 납품관계를 맺기 위해 만도를 인수한 후 2010년 직장폐쇄를 시작으로 노조 경주지부 발레오만도지회 활동을 무력화하기 위해 온갖 불법을 저질렀다. 발레오 본사는 발레오만도 경주공장에서 벌어진 노동기본권 탄압, 인권 침해에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될까? 결론부터 말하면 지금까지는 그래 왔지만 이제 사정이 달라졌다. 발레오만도 사측이 2011년 복귀한 노동자들에게 화랑대 교육이란 명목으로 가혹행위를 하고 있다. <자료사진>

이 법에 따르면 32개국에서 92,000명을 고용하고 있는 발레오 프랑스 본사는 경주 발레오만도(현 발레오전장시스템코리아)처럼 전 세계 자회사와 자회사 협력업체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인권․노동권 침해 위험요소를 밝히고, 예방하기 위한 계획을 마련해야 한다. 계획에 ▲위험요소를 밝히고 분석하기 위한 계획 ▲인권․노동권 침해를 예방하기 위한 계획 ▲자회사․하청업체·부품사 노동자를 대표하는 노동조합과 협력해 실재하는 위험요소를 보고받고 수집할 메커니즘 ▲침해 예방 조치 실행 여부와 효과를 점검하고 평가할 계획 등을 포함해야 한다.

 

발레오에 인권노동권 침해, 부당노동행위 조사 요구

이 법은 기업 의무와 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시 제재방안을 담고 있다. 노동조합을 비롯한 이해당사자들은 기업이 계획 수립, 실행, 보고 의무를 다하지 않으면 법원에 진정할 수 있다. 법원은 이에 따라 시정명령을 내릴 수 있다.

시정명령을 내리고 3개월이 지난 후 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1천만 유로(약 120억 원)를 과태료로 부과할 수 있다. 이 의무를 다하지 않아 피해가 발생한 경우 기업은 민사상 책임을 져야 한다. 기업이 떠안을 보상금은 최대 3천만 유로(약 360억 원)쯤 이다.

이 법이 도입되기 전 경주에서 발생한 무수한 인권․노동권 침해에 대한 책임을 프랑스 본사에 물을 수 없다. 이 법은 발생한 침해에 대해 책임을 묻는 게 아니라 발생할 인권 침해를 예방하기 위한 계획 수립 책임을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인권침해가 발생하더라도 해당 기업이 인권 실사 계획을 수립하고 실행했다면 그 계획이 권리 침해를 예방하기에 충분하지 않았다는 점을 따져야 한다.

우리는 발레오 본사에 이미 발생한 침해의 진상을 철저하게 조사하고, 책임을 규명하라고 요구할 것이다. 노조와 민주노총은 국제노총(ITUC)과 유럽노총(ETUC), 프랑스노총(CGT) 등과 프랑스 본사에 ‘법안 도입으로 발생한 인권․노동권 침해 예방 의무를 다하기 위해 발레오만도가 벌인 각종 인권침해, 부당노동행위 등을 철저하게 조사하라’고 요구할 수 있다.

 

‘초국적기업이 책임져라, 진짜 사장이 책임져라’ 요구는 세계 대세

국제 노동조합 운동은 이윤은 극대화하면서 책임은 최소화하려는 초국적기업에 제동을 걸기 위한 시도를 여러모로 벌이고 있다. 지금껏 국제노동기구, 국제연합 등이 채택한 여러 기준은 기업의 인권․노동권 침해 예방책임을 ‘자발적 준수’ 원칙에 의존해 왔다. 침해에 대한 구제 절차가 있지만 법적 책임 부과보다는 ‘문제 해결’에 초점을 두었다.

국제 노동조합 운동은 이런 한계를 넘어 원청 기업에 사용자의 책임을 분명히 규정하고 실행을 강제하는 국제기준 도입을 시도하고 있다. 국제노동기구는 새로운 협약 채택을 목표로 2016년부터 논의를 개시했고 국제연합은 구속력 있는 조약을 도입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각국 정부가 이런 국제기준을 비준하고 국내법으로 입법하도록 한다는 구상이다.

국제노총은 프랑스에서 시도한 기업의 인권 실사 의무법을 다른 나라로 확대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노조와 민주노총 역시 재벌의 사용자 책임을 확대하기 위한 법안 발의를 준비하고 있다. 책임 범위를 그룹이 직접 고용한 노동자와 하청업체, 납품업체로 확대한 프랑스의 시도를 눈여겨봐야 한다.

류미경 <민주노총> 국제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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