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는 서출 홍길동은 신분체제의 서러움을 이기지 못하고 집을 뛰쳐 나갔다. 세상을 떠돌던 홍길동은 추악한 신분제의 모순이 자신의 문제만이 아님을 알고 이를 극복해 보고자 세상과 싸움을 시작하게 된다.

오늘날 홍길동과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가득하다. 사장님을 사장님이라 부르지 못하고, 노동자가 노동자라 불리지 못하며 회사에서 쫒겨나는 사람들이다. 용역, 하청, 사내하청, 파견, 도급, 소사장, 자영업자 등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며 극단적인 고용불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결국 쫒겨나서 세상을 떠돌며 간접고용의 모순이 자신의 문제만이 아님을 알고 이를 극복해 보고자 세상과 싸움을 시작하게 된다.

근로기준법 제9조(중간착취의 배제)에는 ‘누구든지 법률에 따르지 아니하고는 영리로 다른 사람의 취업에 개입하거나 중간인으로 이익을 취득하지 못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렇지만 중간인으로써 이익만을 취하고 사용자로써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 ‘바지사장’들이 즐비한 현실이다.

부산대학교 경비원 강춘근씨는 지난 2009년 1월 1일 해고되어 부산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넣었으나 기각되었고, 이후 행정소송까지 벌였지만 결국 또 기각되었다. 이유는 ‘사장이 없다’는 것이다. 원청인 부산대학교는 도급을 주었기 때문에 사장이 아니고, 2008년 도급을 받았던 회사는 ‘계약이 끝났기 때문에’ 사장이 아니고, 2009년 도급을 받았던 회사는 ‘채용한 적이 없기 때문에’ 사장이 아니라는 것이다.

해고당한 사람은 있는데 사장이 없으니 해고가 아니라는 것이다. 훌륭하다 노동위원회, 위대하다 행정법원.  

▲ 간접고용노동자 증언대회에서 비정규직 노동자가 간접고용제도의 문제점을 비판하고 있다. 민중의소리 제공
강춘근씨는 2007년 부산대학교의 휴게시간 문제로 노동부에 진정을 제출한 적이 있다. 점심시간 30분간 장기를 두었다고 시말서를 쓰게 되었는데, 사실 점심 이후 휴게시간에 대해 회사는 휴게시간이라는 이유로 임금도 지급치 않아왔던 것이다. 노동부에서는 이를 인정했고 향후 부산대학교는 휴게시간으로 책정한 4시간의 임금을 모두 지급해야 했다. 금액으로 환산하면 연 6억원 가량이다.

그리고 강춘근씨는 2008년 1월 1일 해고되었다. 학교는 매년 경비업무를 다른 회사와 새로 도급계약을 채결하고 있는데, 올해는 무인경비시스템을 도입하여 2명을 줄이기로 했다. 그 2명에 강춘근씨가 포함되었던 것이다. 누가 봐도, 노동부 진정문제로 해고했다는 것이 분명했다. 다른 1명은 강춘근씨가 노동부 진정을 제기할 당시 사실확인서에 서명을 해준 동료였다. 그러나 원청인 부산대는 이들에 대해 ‘우리 학교 직원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앞의 회사는 ‘계약기간이 1년이라 만료되어 당연퇴직’이라 주장했고, 뒤의 회사는 ‘우리 회사에서는 채용한 적이 없다’고 했다. 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했고 지노위 중노위 모두 부당해고라는 판정이 나와 강춘근씨는 그해 10월에 겨우 다시 복직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강춘근씨는 2달을 보내고 2009년 1월 1일 다시 해고당했다. 방법은 똑같았다. 이번에도 무인경비시스템으로 전환되며 3명의 인원이 남는데 강춘근씨가 또 포함된 것이다.

같은 사건인데도 이번에는 노동위원회는 이를 기각시켰다. 사장이 없다는 것이다. 해고된 사람은 있는데, 해고시킨 사람이 없으니 책임을 묻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행정소송을 했지만, 패소했다.

강춘근씨는 2002년부터 부산대학교에서 8년간 경비원으로 근무한 사람이다. 2005년 부산대 경비미화원 대량해고 당시에 노동조합 부지회장으로 총장실을 52일간 점거하며 투쟁한 당사자이기도 하다. 투쟁을 통해 부산대학교와 고용승계에 대한 합의도 받아냈지만, 합의문은 별로 효력을 미치지 못했다. 어쨌든 학교는 사용자가 아니고, 옛날회사는 1년 계약을 했으니 끝이고, 새 회사는 채용한 적이 없다는 이유로 강춘근씨는 일터에서 쫓겨났다.

8년간 일한 일터에서, 부당함에 대해 노동부 민원을 제기했던 이유로 해고되어도, 결국에는 ‘사장이 없어서’ 아무런 권리회복을 할 수 없는 처지. 간접고용의 심각한 문제인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한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다.

부산센텀병원 간병인 노동자 8명은 ‘노동자가 아니라고’ 길거리로 쫒겨났고, 부산 한진중공업의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땡전 한 푼 없는 바지사장이 폐업신고와 함께 줄행랑을 쳐서 퇴직금 임금조차 날렸고, 언양 대우버스 사내하청 노동자들 200명은 예고 한마디 없이 회사가 사라져 버렸다. 더러는 소송을 하기도 하고, 더러는 집회를 하고 피켓팅을 하기도 하지만, 쉽사리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마저도 노동조합으로 조직되거나 원청에 노동조합이 있는 경우에나 가능할 뿐, 조직되지 않은 많은 이들은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이다.

사장을 사장이라 부르지 못하는 세상, 노동자가 스스로 노동자라 호명하지 못하는 세상. 이건 심각한 문제다.

양성민 / 민주노총 부산본부 법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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