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부터 세 번이나 회사 소유주가 바뀌었다. 직원들이 불안해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닙니까?”

김영신 지회장은 자리에 앉자마자 주연테크가 처한 상황을 이야기했다. 주연테크 창업자는 작년 9월 광통신 사업을 한다는 ‘우리로’에 회사를 매각했다. ‘우리로’는 세 달 만에 ‘화인베스트’에 주식을 넘겼다. ‘화인베스’트가 ‘화평홀딩스’에 주연테크 주식을 넘기면서 세 번이나 소유주가 바뀌는 험난한 과정을 겪었다.

새 최대주주는 회사 인수 이후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려했다. 지회는 최대주주가 모습을 드러내야 책임경영에 대한 약속을 신뢰할 수 있다고 했고, 때마침 상암동 본사에서 일하는 직원 41명이 지회에 가입하며 최대주주와 면담을 할 수 있었다.

김영신 지회장은 “새 최대주주는 M&A 전문가지만 기업사냥꾼은 아니라고 말했다. 누가 쉽게 신뢰할 수 있겠나. 시간이 믿음을 회복시켜 줄 거라고 했지만 기존 경영진도 회사 매각 전에 다 그렇게 얘기했다”고 면담내용을 설명했다.

주연테크지회는 2008년 정리해고 투쟁을 벌인 후 힘들게 조직을 유지했다. 정리해고 당시 200명의 직원이 회사를 떠났다. 회사는 정리해고 당시 서울 가산동 공장을 안산, 인천 등으로 옮기겠다며 주부사원들을 중심으로 희망퇴직서를 받았다. 지회가 일방 공장이전과 정리해고에 반대하며 본사 점거했을 당시 제물포로 공장을 이전한다는 문서를 발견하기도 했다. 지회는 회사와 안양 이전에 합의하고 현장에 돌아왔지만 주연테크지회는 크게 쪼그라들었다.

▲ 김영신 지회장은 “사무실에 달린 CCTV는 이미 없앴고, 식대 현실화에 대한 문제제기도 꾸준히 하고 있다. 회사가 일방 축소한 복리에 대해 교섭 자리에서 강하게 항의했다”며 “조합원들이 노조에 대한 신뢰를 갖도록 항상 활동을 공유하고 회사와 어떤 얘기를 하는지 공개한다”고 밝혔다. 성민규 편집부장

김영신 지회장은 “당시 나간 사람들이 절대로 회사를 그만두지 말라고 얘기하더라. 요즘 제조업 공장 어디나 정리해고 얘기가 나오고 있다”며 “이 나이에 회사를 나가면 어딜 갈 수 있겠나. 회사 소유주가 바뀔 때마다 2008년 정리해고 기억 때문에 극도로 불안해 질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2008년 정리해고 투쟁 이후 비조합원과 조합원 사이 심리적 거리가 멀어졌다. 한때 일하는 사람들끼리 눈도 마주치지 않으려고 했다. 조합원들도 긴 투쟁에 지쳐 지회 활동에 참가하는 동력이 떨어졌다.

김영신 지회장은 “퇴직, 탈퇴 등으로 많이 나가고 조합원이 11명 남았다. 의리와 악과 깡으로 남았다”며 “이대로 지회가 오래 못가겠다 싶어 조합원끼리 사는 얘기도 하고 함께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생각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준비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주연테크지회는 11명의 조합원들이 나들이를 가고 영화를 보고, 교육시간을 이용해 이야기나누기도 하는 등 가벼운 마음으로 조합활동을 할 수 있도록 했다. 투쟁이 즐거울 수 있다는 인식을 심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판단으로 준비한 프로그램들이다.

“예전에 파업하자고 하면 어려운 빛을 보이던 조합원들이 파업에 기꺼이 나섰다. 놀러가는 기분으로 집회에 나가고 공장을 나서면 그게 파업이 되는 것이다.”

 

금속노조니까 가입했다

주연테크지회는 지난 5월 상암동 본사 직원 41명이 가입하며 조직이 급성장했다. 회사 상황이 워낙 급박하게 돌아가자 부서장을 포함한 사무직원들이 금속노조 가입을 결정하고 지회의 문을 두드렸다. 김영신 지회장은 본사 조합원들과 간담회를 열고 그동안의 상황을 청취했다. 간담회 결과 본사 상황이 참 열악했다.

김 지회장은 “주연테크는 임금이 짰다. 최저임금보다 조금 더 준다. 서울 본사 직원들도 임금이 적긴 안양공장이나 매한가지다”며 “업무에 사용하는 문구류를 자기 돈으로 사야한다. 한 끼 식대도 4천원에 불과하다 겨우 5천원으로 올랐다. 사무실에 CCTV가 있고 단협이 규정한 휴가조차 설명을 듣지 못해 쓰지 못하는 경우가 한둘이 아니었다”고 전했다.

지회는 상암동 본사에 노조 게시판을 만들고 단협사항을 알렸다. 7월 본격 조합원 교육에서 조합원의 권리를 모두 알게 하고, 노조활동에 대한 의견을 모을 예정이다. 김 지회장은 본사 조합원들이 느끼는 지회 이미지를 바꾸는 일이 급선무라고 했다. 지회는 사람 생각 바꾸기가 하루아침에 가능하지 않지만 작은 성과를 공유하고, 함께 어울리면 조합원들이 지회에 더 큰 소속감을 품을 것이라고 자신하고 있다.

김영신 지회장은 “가입 당시 본사 직원들 중 일부가 금속노조는 너무 강성 아니냐. 기업노조 하면 안 되냐는 질문을 했다. 정리해고 투쟁 당시 지회의 활동을 본 직원들이 그런 질문을 했다”며 “강성이라는 평가의 뒷면에는 적어도 이 노조가 노동자의 권리와 고용을 지켜줄 수 있다는 신뢰가 있다는 얘기도 된다”고 설명했다.

김영신 지회장은 “사무실에 달린 CCTV는 이미 없앴고, 식대 현실화에 대한 문제제기도 꾸준히 하고 있다. 회사가 일방 축소한 복리에 대해 교섭 자리에서 강하게 항의했다”며 “조합원들이 노조에 대한 신뢰를 갖도록 항상 활동을 공유하고 회사와 어떤 얘기를 하는지 공개한다”고 밝혔다.

주연테크는 완성 PC시장에서 중견기업으로 이름난 회사다. 정부와 공공기관에 납품하고 모니터 등 주변기기 제조 판매하는 것이 매출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김 지회장은 주연테크 매출상황을 설명하며 노동조합이야말로 회사의 지속성을 가장 걱정하는 조직이라고 말했다.

김영신 지회장은 “노동자들이 회사 걱정하면 안 된다. 노동자들이 아무 근심 없이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할 수 있는 판을 깔아주는 게 경영진의 역할이라고 본다”며 “지회는 더 커진 조직을 토대로 조합원들 이익을 지키고, 안전하고 편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것이다. 이런 성과가 쌓이면 자연스럽게 노동자 사이 오해가 풀리고 안양공장 조직 확대도 가능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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