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가 6월22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재벌 탈법·편법 경영세습 문제점과 대안’이라는 제목으로 세 번째 재벌개혁 정책토론회를 열었다.

이날 토론회에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아래 경실련) 재벌개혁위원장인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가 ‘재벌세습 : 폐해와 해결방안’, 참여연대 집행위원장인 김경률 회계사가 ‘삼성 이재용 경영세습의 문제점’, 송덕용 회계사가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변화)와 문제’ 등을 발제했다.

토론자로는 박유기 노조 현대차지부장과 김성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아래 민변) 민생경제위원회 수석위원이 나섰다.

▲ 노조가 6월22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재벌 탈법·편법 경영세습 문제점과 대안’이라는 주제로 세 번째 재벌개혁 정책토론회를 열었다. 발제자들이 방청객들 질문을 받아 답변하고 있다. 김형석

이날 토론회 좌장을 맡은 전성인 홍익대학교 경제학부 교수가 “기업이 제일 무서워하는 조직은 노조”라며 노조 교섭력을 강화하는 노동법 개정 중요성을 소개하는 등 발제자와 토론자들이 입을 모아 재벌개혁에서 노조 역할과 참여를 강조했다.

노조를 대표한 인사말에서 박상준 수석부위원장은 “금속노조는 올해 현대기아차그룹사 공동교섭을 요구하는 총파업 투쟁에 나선다”며 “노조는 현대자동차그룹의 경영권 세습에 대한 찬반을 물을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재벌개혁은 경제살리기

박상인 교수가 본 재벌문제 핵심은 지배권 세습과 이를 가능케 하는 경제력 집중이다.

박상인 교수는 “총수일가는 평균 총 주식의 5%도 안 되는 주식으로 기업집단 전체를 지배한다”며 “10대 재벌 자산총액이 GDP(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2003년 48.4%에서 2014년 105.2%로 상승했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재벌총수일가는 집중된 경제력을 활용해 법조계, 정치계, 학계, 언론계를 관리하고 영향력을 행사한다”며 “이 같은 경제력 집중은 불공정 경쟁을 넘어 경제 전반에 시스템 리스크를 유발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상인 교수는 삼성, 현대, SK그룹 사례에서 불법·편법 경제력 집중과 이를 이용한 경영권 세습을 ‘종자돈으로 종자기업 지배 → 부당 내부거래로 종자기업 키우기 → 종자기업을 이용한 그룹 전체 세습’으로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기업 이익이나 노동자 이해관계와 상관없이 계열사 간 M&A나 사업부문 양도가 일어난다.

▲ 6월22일 토론회에서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가 발표하며 “노조가 조합원과 노동자에게 재벌개혁 필요성을 알리고 우리 사회 근본 틀을 바꾸는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김형석

박 교수는 재벌개혁으로 경제위기 방지, 제조업 경쟁력 향상과 기술혁신, 소비자 후생향상 등을 달성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 대기업-중소기업 관계를 정상화하고 비정규직으로 분절된 노동시장 위기를 해소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박상인 교수에게 많은 질문이 쏟아졌다. 해외에도 가족경영 사례가 있다는 질문에 박상인 교수는 해외 가족경영 기준으로 본다면 우리나라에 가족경영 기업이 없다며 재벌총수가 미미한 지분으로 그룹을 지배하고 있음을 환기시켰다. 박 교수는 우파정부 주도로 과감한 재벌개혁에 성공한 이스라엘 사례를 소개하고 우리나라도 지금이 적기라고 설명했다.

재벌개혁이 안 되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 박 교수는 “재벌이 힘이 있고 국민이 복잡한 사정을 몰라서”라고 답하며 “노조가 조합원과 노동자에게 재벌개혁 필요성을 알리고 우리 사회 근본 틀을 바꾸는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기업에 막대한 손해를 끼치는 재벌사 경영세습

김경률 회계사는 구체 사례를 들어 삼성그룹의 편법·불법 경영세습 문제점을 지적했다.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은 아버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에게 받은 60억원으로 1995년 비상장 계열사 주식을 상장 직전에 구입해 시세차익 563억원을 남겼다. 이 부회장은 이 돈으로 헐값 발행한 에버랜드 전환사채를 사들인 후 이를 다시 이건희 회장과 계열사들이 포기한 주식으로 바꿔 에버랜드의 최대주주가 됐다. 이어 에버랜드는 삼성 계열사 지배권을 쥐고 있던 삼성생명 주식을 매입해 삼성그룹 지주회사 지위에 올랐다.

이재용 부회장은 단 돈 60억원으로 삼성그룹 지배자가 됐다. 이를 위해 에버랜드 경영진은 주당 8만5천원 정도 받아야 하는 전환사채를 10분의1 가격도 안 되는 7천7백원에 발행해 회사에 막대한 손해를 끼쳤다. 특정경제가중처벌법의 ‘업무상 배임’ 범죄다. ‘월급쟁이’ 삼성 임원들은 2003년 기소돼 처벌받았지만 이건희 회장은 조사조차 받지 않았다.

▲ 6월22일 토론회에서 김경률 회계사가 “재벌개혁은 모두가 행복해지기의 시작”이라며 “노동조합이 보다 조직적으로 대응하면 좋겠다. 누구나 할 수 있으니 많은 관심을 바란다”고 당부하고 있다. 김형석

이건희 회장은 이후 열린 삼성 특검에서 다시 기소됐지만 유사 사건에 유죄선고를 냈던 대법원은 무죄 판결을 내렸다. 특검에서 에버랜드가 매입한 삼성생명 주식이 이건희 회장의 차명주식이라는 증언이 있었지만 대법원은 이 역시 인정하지 않았다.

김경률 회계사는 검증되지 않은 재벌 3세 경영능력에서 비롯한 문제도 지적했다. 이재용 부회장은 삼성그룹 각종 인터넷사업(e비즈니스) 독점권을 보장받아 국내외 인터넷 벤처 사업을 크게 벌였지만 대실패로 끝났다. 김경율 회계사는 “실패할 수 없는 사업”이었다며 “물론 이로 인한 손해는 계열사가 떠안았고 이 부회장은 오히려 투자금보다 많은 자금을 회수했다”고 설명했다.

김경률 회계사는 “재벌개혁은 모두가 행복해지는 것의 시작”이라며 “노동조합이 보다 조직적으로 대응하면 좋겠다. 누구나 할 수 있으니 많은 관심을 바란다”고 당부했다.

 

재벌개혁은 노동자의 경영참여부터

송덕용 회계사는 경영권 세습과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나타난 일감 몰아주기, 원하청 불공정 거래 등 문제점을 설명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현대차의 최대주주인 현대모비스를 소유하는 사람이 그룹 경영권을 차지한다. 이를 위해 현대차그룹은 그룹 차원의 일감 몰아주기와 인수·합병 등으로 정의선 부회장이 보유한 현대글로비스, 현대이노션, 현대엔지니어링 등의 계열사 주식 가치를 끌어올렸다.

송덕용 회계사는 “물류업체인 글로비스는 특별히 수익성이 높을 요소가 없는 회사지만 매년 업계 평균의 2배인 4.5% 이상 영업이익률을 보인다”며 일감 몰아주기 폐해를 지적했다. 정의선 부회장은 2001년 30억원에 글로비스 지분 60%를 취득해 15년 동안 주가 상승과 매각 등으로 2조6천억원을 넘게 모았다. 지배구조 개편을 위한 자금 확보인 셈이다.

▲ 6월22일 토론회에서 송덕용 회계사가 “현재 법제도는 나쁜 일 방지가 아닌 나쁜 일을 인정하고 추인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라며 “결국 노동자가 직접 경영에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김형석

이 와중에 정몽구 회장은 글로비스 지분 등을 공익재단에 증여하거나 매각한 결과 보유 주식 가치를 1조원 이상 떨어뜨렸다. 현대차와 현대제철의 기업가치도 동반 하락했다.

송덕용 회계사는 서울 삼성동 한국전력 부지 구입 문제도 거론했다. 송 회계사는 “현대차그룹은 5조원짜리 한전 부지를 10조원에 사며 5조원이나 손실을 봤다”며 “앞으로 이 손실은 고스란히 하청업체를 통해 보전받는다”고 덧붙였다. 이로 인해 현대차 주식은 하락했고 이 시점에 정의선 부회장은 일감 몰아주기로 가치를 끌어올린 글로비스와 이노션 등 계열사 주식을 매각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현대차는 세계최고 수준의 수익률을 꾸준히 유지했다. 송 회계사는 이를 원하청불공정거래 덕이라고 분석했다. 단가 후려치기로 수익을 내는 구조다. 실제 현대차 매출에서 재료비가 차지하는 비율은 폭스바겐보다 평균 10% 가량 낮았다.

이 같은 폐해를 방지하기 위한 법규제 실효성은 턱없이 낮다. 송덕용 회계사는 “현재 법제도는 나쁜 일 방지가 아닌 나쁜 일을 인정하고 추인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라며 “결국 노동자가 직접 경영에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벌개혁은 깡패잡기

토론에 나선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민생경제위원회 수석위원인 김성진 변호사는 “알고 뜯기는 건 갈취지만 모르고 뜯기는 건 편취”라며 “우리나라 경제는 재벌이 갈취와 편취하는 구조다. 모든 것이 총수 일가로 빨려 올라간다”고 설명했다.

김성진 변호사는 소유와 지배의 괴리 문제가 심각하다며 이 같은 구조 개선을 위해 자본시장법에 영국식 의무공개매수 제도 도입을 제안했다.

▲ 6월22일 토론회에서 김성진 변호사가 “총수 일가가 세습과정에서 편취로 지배해 우리 것을 빼앗기는 문제”라고 지적하고 “재벌개혁은 깡패잡기”라고 규정하고 있다. 김형석

의무공개매수란 특정 주주가 상장회사 지분을 30% 이상 확보해 지배력을 확보하거나 추가 확보할 경우 나머지 다른 주주의 ‘잔존 주식 전부’에 대해 공개매수를 제안하도록 강제하는 제도다. 계열사 지배에 필요한 출자 부담 늘려 문어발 확장을 막고 소유와 지배를 일치시키자는 의도다.

김 변호사는 상법과 공정거래법에 노동계 추천이사 선임 의무화도 제안했다. 노동자가 직접 재벌을 견제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다.

김성진 변호사는 토론을 정리하며 “총수 일가가 세습과정에서 편취로 지배해 우리 것을 빼앗기는 문제”라고 지적하고 “재벌개혁은 깡패잡기”라고 규정했다.

 

재벌개혁은 불평등을 해소하는 길

박유기 현대자동차지부장은 정몽구 회장 황제경영으로 인한 ‘오너리스크’ 등 폐해를 밝혔다.

박유기 지부장은 중국에서 현대·기아차 판매량이 현격히 줄었는데도 2개 공장을 증설한 일화를 소개했다. 현대차그룹은 중국 서부 충칭에 공장을 세우길 원했으나 중국 정부가 북경 지역을 고집하자 논란 끝에 정몽구 회장이 둘 다 지으라고 지시했다는 내용이다.

▲ 6월22일 토론회에서 박유기 현대자동차 지부장이 “올해 금속노조가 요구하는 현대기아차그룹사 공동교섭은 이 같은 잘못된 재벌경영을 바로잡고 그룹이 통제하는 노무관리 전략에 공동으로 맞서는 투쟁”이라며 “끝내 교섭을 거부하면 7.22 상경투쟁에 3만 대오를 양재동에 올려 휩쓸겠다”고 발표하고 있다. 김형석

박유기 지부장은 “정의선 부회장은 말할 것도 없고 정몽구 회장 역시 전문 경영인은 아니다”라며 “운 좋게 미국발 경제위기와 일본 대지진으로 위기를 피해왔을 뿐 실제 위기를 맞아 극복한 경험이 없다”고 지적했다.

박 지부장은 현대차그룹 일감 몰아주기와 납품단가 후려치기, 비정규직 불법사용을 거론하면서 “재벌개혁은 불평등을 해소하는 길”이라고 정의했다.

박유기 지부장은 현재 사외이사 제도로 재벌을 견제할 수 없다는 의견을 밝혔다. 현대차그룹에 있는 수많은 사외이사들은 한해 여덟 번 만 회의에 참석하고 1억원 가까운 연봉을 받는다. 이들은 회사결정에 한 번도 반대한 적이 없다고 소개했다. 박 지부장은 “회사는 최근 손익계산서를 들이밀며 믿으라고 하지만 노동자 경영참여는 거부하고 책임만 묻고 있는 회사를 신뢰할 수 없다”며 “기업경영에 참여한 만큼 책임을 묻는 것이 옳은 일”이라고 말했다.

박유기 지부장은 토론을 마치며 “올해 금속노조가 요구하는 현대기아차그룹사 공동교섭은 이같은 잘못된 재벌경영을 바로잡고 그룹이 통제하는 노무관리 전략에 공동으로 맞서는 투쟁”이라며 “끝내 교섭을 거부하면 7.22 상경투쟁에 3만 대오를 양재동에 올려 휩쓸겠다”고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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