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노동위원회는 외국의 유사기구들이 노동쟁의 조정과 부당노동행위 심판을 주로 담당하고 있는 것에 더해 부당해고 등 구제심판이라는 나름 특유한 기능을 더 가지고 있습니다. 작년 한 해 9천여 건이나 되는 부당해고 등 구제신청 사건이 전국 지방노동위원회(이하 지노위)에 접수되었는데, 노동위원회가 분쟁해결율이라 부르는 사건 종결율(취하 또는 화해되거나 불복하지 않아 판정이 확정된 사건 비율)은 무려 95%에 이릅니다. 법원소송까지 이어지는 5%를 제외한 95%의 사건이 지노위와 중노위 단계를 거치면서 어쨌건 모두 종결된다는 얘기입니다. 노사관계 분쟁사건에서 차지하는 노동위원회의 엄청난 영향력을 가늠케 해주는 수치입니다.

법원소송절차에 비해 적은 비용과 신속한 판정을 받을 수 있는 장점이 있어 부당 해고, 징계, 인사발령 등을 당한 노동자들이 대개는 노동위원회를 찾습니다. 저희 법률센터에서 주로 담당하고 있는 사건들도 구제신청 사건들입니다. 그런데, 이 노동위원회라는 곳의 좋은 취지와 위상 및 구성에도 불구하고 그 운영의 실태를 들여다보면 참 답답하고 안타까울 때가 많습니다.

분쟁해결율 95%

2007년부터 서울지노위 노동자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어 한 달에 한번 정도 지노위에 갑니다. 근로기준법에 해고 시 서면통보 규정 신설 이후 노동위원회 부당해고 사건의 반의 반 이상은 진실게임이 된듯합니다. 해고 시 그 사유와 시기를 서면으로 통보해야만 적법한 해고가 되는 관계로 서면통보 없이 행해진 해고사건에서 사용자들의 대응은 대개 해고한 사실이 없다는 주장 일색입니다. 노동자가 제 발로 나갔다는 것이죠.

▲ 중앙노동위원회 홈페이지 화면에 게시된 중앙노동위원회 홍보물
음식점 주방에서 일하던 A는 아파서 결근을 했습니다. 사장이 전화를 받지 않아 동료 직원한테 알리고 쉬고 있는데 노발대발한 사장한테서 전화가 왔습니다. “그 딴 식으로 할 거면 나가! 오늘부로 해고야!” 그렇게 해고가 되었고 지노위에 구제신청을 했습니다. 여기까진 A의 주장입니다. 사장인 B의 주장은 이렇습니다. “무단결근을 하여 전화를 해봤더니 집에서 놀고 있더라. 단순 감기인 것 같은데 특히나 바쁜 주말에 연락도 없이 결근을 해서 뭐라고 좀 했더니 오히려 화를 내며 나가겠다고 했다” A와 B 모두 상대방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며 얼굴이 벌게집니다.

진실게임에 임하는 그분들의 자세

서면통보 규정 신설 이후에 특히 이런 진실게임이 훨씬 많아진 것을 봤을 때, 일단은 대개 사용자측이 법 규정을 피해가기 위한 거짓말을 하는 경우가 더 많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양측 다 증거가 없습니다. 당사자와 하늘 외에 진실은 며느리도 모릅니다. 이럴 땐 정황 속에서 결론을 추단해낼 수밖에 없습니다. 사직은 말 그대로 자발성에 기초한 것인데 이 퇴직에 자발적 사직의 경위가 있는가, 퇴직의 직접적 계기가 뭔가, 그리고 곧바로 구제신청을 제기하고 이렇게 복직명령을 구하는 신청인이 눈앞에 앉아 있고, 무엇보다 해고 시 서면통보 규정은 노동자의 고용을 더 두텁게 보장해주고자 하는 입법취지를 가진 제도라면, 양측 다 분명한 입증을 못하는 상황에서는 보다 노동자 보호적 관점에 입각한 판정을 하는 것이 노동법 원리에 맞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공익위원들의 심문내용이 찜찜하다 못해 어느덧 루비콘강을 건너갑니다. 결근일 전날이 월급날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이직률이 얼마나 되는지, A의 평소 불평불만 제기 사실, 나아가 사장이 홧김에 설령 나가라고 했다 해서 그걸 해고라 볼 수 있느냐 등등, 어느새 A는 피의자가 되고 공익위원들은 고압적이고 집요한 검사가 됩니다.

보석 같은 노동위원회가 되는 길

노동위원회가 노동자들로부터 신뢰를 받는 훌륭한 기구가 되지 못하는 이유는 노동위원회 스스로에게 있습니다. 대부분의 위원들이 비상임이다 보니 사건서면을 심판회의 고작 몇 일 전에야 보게 되고 심문회의 당일 한 시간의 심문회의 석상에서 모든 진실을 확인해야하는 구조적인 한계야 일단 불가피하다 해도, 더 큰 문제는 위원들의 자세와 태도에 있습니다. 무엇보다 신속하고 효율적인 노동자 권리구제에 그 사명과 역할이 있는 노동위원회의 입법취지와 제도적 위상에 대한 분명한 인식이 없는 것이 가장 큰 문제점입니다.

부당해고 구제신청 인정율이 전국 노동위원회를 통틀어 지난 2년 사이에 무려 10% 이상 떨어진 것으로 확인됩니다. 노동법 원리에 오히려 무지한 법원에서 설령 판단이 뒤집히더라도 노동위원회는 노동위원회다운 판정들을 쏟아내 주어야 합니다. 잘못된 법원 판례들도 마침내 바꿔내는, 그것이 노동위위원회의 존재이유일 것입니다. 95%라는 엄청난 분쟁해결율을 가진, 노사관계 분쟁사건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노동위원회의 올바른 자리매김에, 특히 우리 조직된 민주노조 노동자들의 더 큰 주목이 필요합니다.

박성우 / 민주노총 서울본부 법규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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