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13일 수요일.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의 주도로 24년째 이어 오고 있는 수요시위가 열리는 날이다.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1213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에 ‘12월28일 한일 위안부 합의’ 파기와 ‘일본정부의 법적 책임과 사죄’를 요구하는 시민들이 가득 모였다.

정부가 지난 12월28일 일본정부와 위안부 합의를 마무리 했다고 발표한 이후 많은 시민들이 수요시위에 참가하고 있다. 최저 기온 영하 8도로 내려간 추운날씨였지만 역사를 공부하는 학생들, 지역에서 올라온 시민들, 만화가, 정치인 등 전국 곳곳,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모여 정부의 합의를 비판했다. 시민들은 정부의 위안부합의가 졸속이며 당장 철회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날 수요시위에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를 비롯해 이옥선, 박옥선, 이용수, 강일출, 길원옥 할머니 등 여섯 분의 할머니가 시민들 앞에 나서 입장을 밝혔다. 여섯 명의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은 시민들과 함께 한국정부와 일본정부가 맺은 위안부 합의를 거부하는 행동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 1월13일 일본대사관 앞에서 정대협이 주최한 '1213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에서 피해 할머니들이 한일정부의 합의는 무효라는 내용의 발언을 하고 있다. 김형석

김복동 할머니는 “정부는 우리에게 협상을 한다는 얘기도 없이 멋대로 일본과 논의하더니 합의안이라고 가져와서 받아들이라고 한다. 우리는 절대 정부의 합의안에 대해 반대한다”고 밝혔다. 김복동 할머니는 “소녀상 이전이 합의의 전제조건이라는 얘기가 있는데 정부가 국민들이 세운 소녀상에 대해 왈가왈부해선 안 된다”고 분명히 못 박았다.

 

피해자 의사 상관없이 정부가 독단으로 맺은 합의

김복동 할머니는 “일본 정부가 보상금으로 백억원이 아닌 천억원을 준다고 해도 받을 수 없다. 우리가 돈이 없어서 싸우는 게 아니다. 억울하게 끌려가 희생당한 우리의 한을 돈으로 어떻게 풀 수 있겠느냐?”며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김복동 할머니는 “민간단체에서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이 돈을 모아 일본이 내놓을 돈을 대신해 재단을 만들자고 한다”며 “국민들이 재단을 만들면 나도 참여하겠다. 더 많은 사람들이 마음을 모아 함께 했으면 한다”고 요청했다.

수요시위에 참여한 시민들은 한국 정부와 일본 정부가 맺은 합의안의 문제점에 대해 조목조목하게 지적했다.

당진고등학교를 다니는 학생이라고 밝힌 이현진 학생은 “피해자들이 엄연히 존재하는데 정부가 마음대로 협상하고 합의내용까지 정리해 내놓은 행위는 정말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이현진 학생은 “일본은 이번 합의 이후로 한국이 더 이상 위안부 문제에 대해 국제사회에 얘기하지 말고 입을 다물라고 한다. 이게 어떻게 완벽한 해결이라고 할 수 있냐”고 되물었다.

이현진 학생이 다니는 당진고등학교 역사동아리 D-VANK는 수요시위 참석을 위해 아침부터 버스를 타고 서울로 상경했다. 학생들은 준비한 손 팻말을 들고 수요시위가 진행되는 내내 손에서 내려놓지 않았다.

이현진 학생은 “이번 정권 들어 위안부 합의뿐 아니라 교과서 국정화 등 역사와 관련한 굵직한 이슈들이 터져 나오고 있다”며 “국정교과서 문제는 역사를 하나의 시각으로 서술하고 가르치겠다는 건데 정권에 입맛에 따라 역사가 달라질 수도 있다”라며 말을 이어갔다.

이현진 학생은 이번 위안부 합의 내용을 보면서 교과서를 만들 이 나라 정부가 미덥게 느껴지지 않는다”며 “정부가 피해자인 할머니들을 무시하고 자기들 마음대로 협상했다. 교과서 서술도 일방적으로 진행할까 걱정한다”고 우려를 표했다.

 

갑자기 불어난 경찰을 보며 합의에 문제 있다고 느껴

역사를 공부하는 대학생들도 수요시위에 함께하며 합의철회를 외쳤다. 대학에서 역사교육을 전공하고 있는 임지섭씨는 위안부 문제가 여성의 인권문제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전쟁 때문에 벌어진 전쟁범죄라고 지적했다.

▲ 1월13일 일본대사관 앞에서 정대협이 주최한 '1213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 ' 참여 학생들이 손팻말 들고 있다. 김형석

임지섭 씨는 “일본은 군비증강과 헌법개정을 통해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돌아가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위안부 문제는 그들이 저지른 전쟁이 범죄였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하나의 거울이다”라고 정의했다. 임지섭 씨는 “일본이 위안부 문제를 서둘러 덮고 싶어 하는 이유는 자신들의 전쟁범죄를 덮고 서둘러 전쟁할 수 있는 보통국가로 돌아가고 싶어서라고 생각한다”고 잘라 말했다.

임지섭씨는 “섣부르게 봉합하는 식의 합의가 두 나라 사이의 진정한 화해와 평화를 가져올 수 있을지 의문이다”며 “일본이 평화헌법을 지키고 전쟁으로 인한 과거사를 사죄하려 한다면 이런 식으로 졸속으로 합의해선 안 된다”고 밝혔다.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경기도에서 왔다는 문승아 씨는 대오와 조금 떨어진 장소에서 “일본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게 사죄하라”는 내용의 그림 팻말을 들고 서 있었다.

문승아 씨는 “12월28일 위안부 합의가 있기 전 가끔 집회에 참석했다. 정부의 합의발표 이후 오늘 처음 와봤다. 예전과 비교해 정말 많은 사람들이 와서 깜짝 놀랐다”고 소감을 밝혔다. 문승아 씨는 “시민, 학생들이 할머니들과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속해서 두 나라 정부에 보여줘야 한다. 국민의 관심이 쉽게 식지 않을 것이라고 알려야 한다”고 호소했다. 문승아 씨는 사정이 되는 한 수요집회에 자주 참석할 생각이라고 약속했다.

문승아 씨는 집회장을 에워싸고 있는 경찰에 대해서 불만을 표시했다. “24년 동안 평화롭게 진행한 수요시위다. 지금까지 문제를 일으킨 적이 없는데 경찰을 과도하게 배치해 참가자들에게 위압감을 준다”고 비판했다.

문승아 씨는 “수요시위에 경찰이 이렇게 많이 깔린 적은 없었다. 정부의 위안부 합의 발표 뒤 수요시위의 평화 기조는 달라지지 않았다”며 “12월28일 이후 경찰병력이 급격히 불어난 현상을 보며 시민들은 정부의 합의가 문제 있다고 느낄 것이다”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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