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의 말] 24시간 투쟁을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나의 현장은 멀쩡하고 잘 돌아가는 것처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생채기 없는 나무는 없습니다. 꺼진 불도 다시 보랬습니다. 우리 여전히 싸우고 있는 현장을 돌아봅시다. 싸우는 현장에 금속노조의 여러 모순이 엉켜있습니다. 새 연재 ‘싸우는 우리’를 통해 엉킨 실타래를 푸는 단초를 찾아봅시다. 

새벽 6시, 군산에 굵은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전북지부 한국지엠군산비정규직지회 조합원들은 출근선전전을 시작한다. 한 조합원이 ‘해고자 원직복직, 총고용 보장 천막농성 *일차’라고 적은 현수막의 날짜를 바꾼다. 199일.

한국지엠의 비정규직 대량해고에 당할 수 없다는 심정으로 지난해 4월 지회를 설립했다. 6월29일 한국지엠 군산공장 동문 앞에서 천막농성을 시작했다. 그 사이 몇 명의 조합원이 회사의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지회를 떠났다.

▲ 1월13일 출근선전전을 마친 조합원들이 전기를 사용하지 못해 어두운 천막 안에서 회의를 하고 있다. 군산=강정주

1일차 천막농성을 같이 시작한 아홉 명의 조합원은 굳건히 천막을 지키며 투쟁하고 있다. 진제환 지회장은 “짧게 5년, 길게 12년 군산공장에서 일했다. 억울했다”고 투쟁을 시작한 이유를 강조했다. 절대 공장을 나갈 수 없다는 심정으로 천막을 세웠다.

 

억울해서 나갈 수 없다

김교명 조직부장은 “조합원들 마음은 모두 같다. 억울해서 싸움을 시작했다. 199일이 지난 지금 포기하면 더 억울할 것”이라며 “과연 이길 수 있겠느냐는 우려를 하지만 우리는 지금 이 싸움을 포기할 생각 없다. 앞으로 더 힘든 싸움이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진제환 지회장은 “아홉 명의 싸움이 큰 힘이 아니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우리가 싸우지 않았다면 이 큰 공장에서 수많은 비정규직이 억울하게 해고당하는 상황을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라고 이 투쟁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8개월 투쟁을 하는 동안 조합원들의 생각은 달라졌다. “정규직이 파업하면 저들만의 리그라고 생각했다. 아예 관심이 없었다.” 이랬던 조합원들이 지금은 전국 곳곳의 투쟁에 함께하며 연대를 배운다.

▲ 1월13일 한국지엠군산비정규직지회 조합원들이 한국지엠 군산공장 동문 앞에서 출근선전전을 벌이고 있다. 군산=강정주

“다른 사업장 집회를 다녀올 때마다 이런 얘기를 한다. 전국의 동지들에게 빚을 진 것 같다고. 어려운 동지들과 더 많이 연대하고 빚을 갚아야 한다고. 조합원들의 마음가짐이 많이 달라졌다.”

지회는 부평과 창원의 한국지엠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공동투쟁을 시작했다. 진제환 지회장은 “부평과 창원의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 얼마 전 업체 폐업, 물량 문제 등으로 비정규직을 해고하려 했다”고 상황을 전했다.

 

비정규직 해고, 어디든 다르지 않다

진제환 지회장은 “창원의 한 업체가 고용을 승계하겠다면서 새로 쓰라는 근로계약서에 ‘물량이 줄어들면 언제든지 해고할 수 있다’는 내용이 들어있었다”며 “물량, 회사의 어려움을 얘기하면서 가장 먼저 쫓겨나야 하는 비정규직 신세는 세 공장 모두 같다. 그래서 거리는 멀지만 같이 논의하고 소수지만 함께 싸우기로 결의했다”고 강조했다.

싸움이 길어지며 생기는 어려움이 많다. 이동수 조합원은 “조합원이 소수이다 보니 천막 지키고, 서울, 지역 투쟁에 결합하는데 사람이 부족하다. 몸이 힘들다”며 “가정을 지키려고 싸움을 시작했는데 투쟁하면서 생계 문제를 해결해야하는 큰 문제가 따라온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동수 조합원은 “어려움은 많지만 조합원들이 서로를 생각하면서 참기도 하고, 하나씩 맞추고 해결하면서 투쟁하고 있다. 이 자리에 있는 아홉 명 모두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 1월13일 지회 조합원이 '해고자 원직복직 총고용 보장' 현수막 농성 일자를 199일로 바꾸고 있다. 군산=강정주

지회는 조합원들의 어려움을 조금이라도 덜고자 양말 판매 재정사업을 시작했다. 전북지역 사업장과 다른 지역의 동지들을 찾아가 투쟁 상황을 알리고 재정사업 동참을 호소하고 있다. 진제환 지회장은 “동지들이 이 싸움에 한 번 더 관심 갖고 양말을 사주길 바란다. 그 힘으로 지회는 또 한 번 위기를 넘기고 열심히 투쟁 할 힘을 모으겠다”고 당부한다.

조합원들은 추운 날씨, 천막생활과 투쟁보다 주변의 무관심이 더 힘들다고 말한다. 강추위에 선전전을 하면서 “추위는 아무렇지 않다. 마음이 추워서 문제”라는 조합원의 말에 그 심정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임복희 연대부장은 “매일 아침 문 앞에서 선전물을 나눠준다. 얼마 전까지 같이 일했던 동료들이 선전물을 받지 않고 내 시선을 피하면서 공장 안으로 들어간다. 이런 반응이 가장 힘들다”고 토로했다.

 

투쟁이 길수록 동지들 손길이 그립다

임복희 연대부장은 “군산공장에서 10년 일했다. 3~4년을 제외하고 하루도 맘 편히 일한 적이 없다. 회사는 매번 물량과 고용으로 노동자들을 불안하게 했다”며 “지금도 한 달에 절반은 일이 없어 출근을 못한다. 이런 상황에도 현장 노동자들은 지회 투쟁과 자신들의 문제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투쟁이 길어지고 노동자들은 계속 불안하게 일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 1월13일 지회 조합원들이 공장 앞에서 투쟁을 외치고 있다. 군산=강정주

지회는 같은 금속노조 조끼를 입은 전국 조합원들의 관심과 연대가 어느 때 보다 소중하다고 강조했다. 진제환 지회장은 “우리가 돌아다녀보니 노조의 손길이 미치지 않아 힘들게 싸우는 동지들이 많았다. 우리 싸움이 길어지다 보니 피부에 와 닿는 문제”라며 “투쟁이 길어지면 사람들은 금방 잊어버리고 익숙한 일로 치부하지만 그럴수록 투쟁사업장 조합원들은 더 힘들다”고 말했다.

진제환 지회장은 “노동개악 문제가 우리 해고자들과 무관하지 않다. 우리도 총파업에 같이 하고 함께 싸운다. 전국의 금속노동자들도 노동개악 저지 투쟁, 그리고 곳곳에서 힘들게 싸우고 있는 투쟁사업장에 더 관심을 갖고 힘을 모아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한국지엠군산비정규직지회 양말판매 재정사업

주문, 문의) 010-2575-0895(임복희), 010-9224-2949(이완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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