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2월26일 대법원은 두 개의 판결을 했다. ‘현대자동차 모든 공정의 사내하청노동은 불법파견이며 현대차의 정규직 노동자다’라는 판결과 ‘KTX 여승무원과 코레일간의 계약은 직접 근로계약, 파견계약 모두 아니다’라는 판결이다. 파견노동에 대해 상반된 두 개의 판결이 나왔다.

현대차 아산사내하청지회 조합원들이 불법파견 확정 판결을 받고 대법원 앞에서 언론사 인터뷰를 진행할 때 김승하 전국철도노조 KTX 열차승무지부장은 검은 코트를 입고 눈물을 머금은 채 언론사 카메라 앞에 섰다. KTX 승무원들은 11월27일 서울고등법원 파기환송심에 실낱같은 기대를 했지만 이마저 패소해 법률적으로 해결할 여지가 없어졌다.

김승하 지부장은 “파기환송심 판결이 나오기 전 조합원 총회를 했다. 투쟁 강도를 더 올릴 수밖에 없다고 제안했고 그렇게 결의했다”며 “조합원들이 매주 일요일과 월요일 서울역과 부산역에서 1인 시위를 진행하고 월1회 촛불문화제를 준비하고 있다”며 패소 후에도 조합원들이 계속 싸울 의지를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KTX승무원이 왜 철도공사 노동자가 아닌가

김승하 지부장은 “불법파견과 위장도급, 시민들의 안전문제가 걸려있기도 하지만 승무원 개인으로 보면 취업사기다. 젊디젊은 승무원들이 이제는 두세 살 아이를 둔 엄마가 될 때까지 줄기차게 싸운 원동력은 억울해서”라고 말했다. 김승하 지부장은 “고등법원에서 승소하며 우리의 정당성을 인정받고 억울함을 풀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상황에 놓이니 참 답답하다”는 속내를 비쳤다.

▲ 김승하 지부장은 “불법파견과 위장도급, 시민들의 안전문제가 걸려있기도 하지만 승무원 개인으로 보면 취업사기다. 젊디젊은 승무원들이 이제는 두세 살 아이를 둔 엄마가 될 때까지 줄기차게 싸운 원동력은 억울해서”라고 말했다. 신동준

불법파견의 기준 중 하나는 원청이 파견노동자에게 업무를 지시하고 인사노무관리를 수행하는가에 있다. KTX 승무원들은 철도공사의 업무지시에 따라 움직였고, 채용 면접에 철도공사의 간부가 면접관으로 참여할 정도로 인사노무관리에 원청인 코레일의 개입이 두드러졌다.

김영훈 전국철도노동조합 위원장은 불법파견이 아니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오자 “열차팀장과 KTX 승무원은 코레일의 스케쥴에 따라 함께 움직인다. 승무원 독립적 노무관리가 존재할 수 없었다”며 “대법원의 판결을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김승하 지부장은 “대법원은 열차팀장이 안전업무를 수행하고 KTX 승무원이 승객에게 응대하는 업무를 분리해서 수행한다고 했지만 서로 협조와 공조 없이 업무수행은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김 지부장은 “KTX 승무원은 열차팀장과 소통을 위해 무전기를 갖고 다니고 팀장 혼자 승객들의 승하차와 안전 여부를 확인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KTX 승무원들이 업무용으로 사용하는 PDA는 철도공사가 제공한 것으로 철도공사의 전산시스템에 접속해 업무를 수행한다. 누가 봐도 원청인 철도공사가 업무에 지배개입하고 열차팀장과 승무원이 밀접한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여러 불법파견 판례에 비춰보면 KTX 승무원들은 한국철도공사의 직원이라는 판단을 할 수밖에 없다.

 

철도공사가 KTX 승무원 직접 고용을 꺼리는 이유

김승하 지부장은 “문제는 공기업 평가다. 임금비율이 낮고 사업비용이 높으면 공기업 평가에서 가산점을 받는다. 철도공사가 승무원을 직고용하면 비용 측면에서 더 이익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 지부장은 “굳이 철도유통이나 관광개발에 사업비를 지급하면서 승무원 고용을 파견형태로 유지하려는 이유는 철도공사가 공기업 평가를 더 잘 받기 위한 속내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철도공사는 줄곧 민영화는 없다고 이야기하고 있지만 철도민영화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진행하고 있다. 업무를 분할해 회사의 부피를 줄이고 공공철도가 갖고 있던 작은 사업부터 민간에 위탁하는 방법은 외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민영화 방식이다. 코레일은 이 길을 충실히 걷고 있다.

▲ 정미정 KTX 열차승무지부 상황실장은 “우리가 받은 판결이 같은 사례에 놓인 분들께 선례가 돼서 마음이 무겁다. 그러기에 누군가는 이 자리에서 싸워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싸움을 계속하는 이유를 전했다. 신동준

건설교통부는 한국철도공사와 철도시설공단으로 운영과 건설을 나눠 철도조직의 부피를 줄이고 철도공사 업무에서 급유, 급수, 청소 등 업무를 쪼개 도급화 했다. 철도 관련 업무에 줄곧 비정규직이 늘어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철도공사가 자기 업무를 쪼개 도급화하는 마당에 KTX 승무원을 직고용할 이유가 없다.

 

누군가 이 자리에서 싸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정미정 KTX 열차승무지부 상황실장은 “이번 정권이 들어서며 사회가 뒤로 가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 흐름을 거스르기 위해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며 “우리가 받은 판결이 같은 사례에 놓인 분들께 선례가 돼서 마음이 무겁다. 그러기에 누군가는 이 자리에서 싸워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싸움을 계속하는 이유를 전했다.

투쟁을 시작할 때 380명에 달하던 조합원은 10년이 지나 33명으로 줄었다. 두 KTX 승무원은 지난 10년을 돌아보며 투쟁은 처절하고, 힘들고, 아팠지만 늘 그런 것은 아니었다며 웃었다.

정미정 상황실장은 “친구이자 동료인 사람들과 투쟁하며 하루 종일 같이 있을 수 있는 현실이 소중했다. 지금까지 남아있는 사람들은 힘든 과정을 이겨내고 즐기면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며 “힘든 시간을 함께 보낸 사람들과 기쁨을 함께 나누겠다는 마음으로 계속 싸울 것”이라고 각오를 밝혔다.

김승하 지부장은 “KTX 승무원들은 다른 투쟁에 비해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또 한 번 부탁드리고 싶다. 잊지 말아 달라. 새로이 시작한 우리 싸움을 앞으로도 계속 지켜봐 주시길 바란다”는 바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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