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대 끝자락에 태광하이텍(현 하이텍알씨디코리아)에 입사해서 현재 사십대 끝자락에 와 있다.(태광하이텍은 글로벌시대에 발 맞춘다는 의미로 하이텍알씨디코리아로 이름을 바꿨다.)

삼십대, 사십대 젊은 청춘을 이곳 하이텍에서 보냈다. 인생의 절반 조금 못 미치는 세월이다. 입사한 첫 해를 제외하고 평화로웠던 시기가 없었다. 줄곧 회사와 싸우며 살아온 것 같다.

이곳에 입사하기 전에는 노동조합에 대해서 관심도 없었고 알지도 못했다. 시험에 나오는 ‘노동3권은 단결권, 단체행동권, 단체교섭권이다’라는 것만 달달 외웠을 뿐, 그 의미를 알지는 못했다.

1998년 입사 이듬해 회사는 구조조정이라 포장된 정리해고를 단행했다. 회사는 정리해고 명단을 뿌리며 나가라고 협박했고 사원들 간의 갈등을 조장했었다. 나는 그런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희망퇴직서를 제출했다. 그때 노동조합은 내가 공장을 떠나지 않도록 같이 싸워줬다. 많은 동지들이 복직할 수 있게 도와줬다. 노동조합의 의미와 역할에 대해 알게 된 순간이었다.

복직투쟁을 하는 과정에 의기소침해있는 나에게 힘이 돼주고 항상 곁을 지켜줬던 조합원들이 있었다. 나는 그때 나에게 은혜를 베풀어 준 노동조합과, 조합원들에게 은혜를 꼭 갚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고마운 조합원 동지들이 아직도 내 곁에 있다. 나를 포함한 일곱 명의 조합원. 이제는 너무나 서로에 대해서 잘 안다. 함께 지내온 세월이 얼마인가.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 그리고 가족들도 이해하지 못하는 우리들만의 속마음을 서로 이해해주고 토닥여주는 고마운 사람들이다. 사실 나는 우리 조합원들과 있을 때 가장 많이 웃는다.

▲ 노동조합이 있는 사업장과 없는 사업장의 노동실태는 하늘과 땅 차이다. 박천서는 민주노조 깃발 아래 일터를 지키고, 자기의 말을 순순히 듣지 않는 우리가 싫어서, 없애버리고 싶은 마음을 숨김없이 드러내고 있다. 지난 10월21일 조합원들과 연대 동지들이 '공장폐쇄 분쇄 민주노조 사수 하이텍 분회 투쟁 승리를 위한 결의대회'를 열고 있다. 사진=신동준

하이텍알씨디코리아분회 조합원들 곁에는 연대동지들도 있다. 20여 년을 이어온 그 끈들은 끊을 수 없는 정으로, 동지애로 우리를 연결 짓고 있다. 참 고마운 동지들이다. 지금껏 투쟁을 전개할 수 있었던 원동력인 것 같다.

얼마 전 우리는 그토록 만나고 싶었던, 만나야 했던 박천서 회장을 오창 하이텍 본사 회장실에서 맞닥뜨렸다. 박천서 회장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악랄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우리에게 반말을 내뱉으며 “니들과 할 말이 없다.” “월급 따박 따박 받아가면서 무슨 생존권이야?”라고 우리를 인간 이하 취급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참으로 씁쓸하고 비애감이 느껴졌다.

그러더니 도망은 왜 그리 잽싸게 가는지. 자칫 도망가는 차에 우리 조합원이 다칠 뻔 한 아찔한 상황도 벌어졌다. 조합원이 다칠 뻔 했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기 도망가기에만 급해 쏜살같이 차를 몰고 갔던 박천서 회장을 잊을 수 없다.

우리는 지금 그런 박천서 회장에 맞서 싸우고 있다. 박천서 회장은 공장 부지를 매각했고 다른 곳에 공장을 마련해 놨으니 그곳으로 출근 하라고 한다. 우리가 평생을 지켜온, 청춘을 바쳐온 공장을 자기 마음대로 팔아 치우고, 이곳에서 일해서 삶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일방적으로 나가라고 한다. 우리는 안다. 이곳이 우리들의 마지막 일터라는 것을.

하이텍알씨디코리아분회 조합원들은 투쟁을 결의했다. 9월23일부터 공장사수 농성을 시작했다. 서울지부 남부지역지회, 공동대책위원회, 지역의 동지들과 공장을 지키고 매일 선전전과 결의대회를 이어가고 있다.

요즘 들어 이런 질문을 많이 받는다. 왜 새로 마련해 놓은 공장으로 가지 않고 이곳에서 힘들게 싸우고 있느냐고. 그래서 나에게도 반문해 봤다. 왜 싸우고 있는지.

답은 하나다. 생존권의 싸움이기 때문이다. 하이텍 자본은 새로운 공장으로 간다고 해도 고용을 보장하지 않는다. 그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곳으로 갈 바보들이 어디 있겠는가. 우리는 이미 박천서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 인간은 결코 우리의 고용을 끝까지 보장해 주지 않을 것이다.

노동조합이 있는 사업장과 없는 사업장의 노동실태는 하늘과 땅 차이다. 박천서는 민주노조 깃발 아래 일터를 지키고, 자기의 말을 순순히 듣지 않는 우리가 싫어서, 없애버리고 싶은 마음을 숨김없이 드러내고 있다.

부지매각 철회와 공장이전 박살, 생존권 쟁취, 민주노조 사수 요구를 내걸고 농성을 전개하고 있는 지금의 투쟁이 일곱 명의 조합원으로 감당하기에는 정말 힘들고 벅차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과 일터를 지켜야한다는 다짐으로 매순간 갈등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 싸움은 단순히 하이텍알씨디코리아분회 일곱 명의 조합원들만의 싸움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노동자의 권리를 지켜주는 노동조합과, 늘 같이 웃고 같이 울어주는 조합원들과 연대 동지들이 있기에, 그리고 그 끝에 있을 승리의 순간을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는다. 투쟁!

방혜정 / 서울지부 남부지역지회 하이텍알씨디코리아분회 사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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