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훼이 관창, 처훼이 제구.(撤回關廠,撤回解僱 공장폐쇄 철회하라. 정리해고 철회하라)”

한국 서울 한복판 광화문빌딩 앞 노조 경기지부 하이디스지회 농성장에서 대만말 구호가 울려퍼졌다. 대만 사람들만 외치는 구호가 아니다. 1차부터 4차까지 대만 원정투쟁을 다녀온 노란색 조끼를 입은 대부분의 하이디스지회 조합원들도 주먹을 높이 치켜들며 대만말 구호를 망설임 없이 따라 외친다.

그 뿐 아니다. 익숙한 음악, 낯선 언어. 마이크를 잡은 대만 동지들은 <임을 위한 행진곡>을 대만어로 부른다. 조합원들도 힘차게 노래를 따라 한다.

▲ ‘대만 하이디스노동자 지지 전선’ 동지들과 하이디스지회 조합원들이 11월11일 서울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 하이디스 문화제에서 “처훼이 관창, 처훼이 제구(撤回關廠,撤回解僱 공장폐쇄 철회하라. 정리해고 철회하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김경훈

“여기가 대만인지 한국인지 모르겠다. 다시 대만에 와있는 것 같다.” 지회 조합원들은 기쁨과 감격이 섞인 표정으로 얘기한다. 11월11일 한국을 찾아 온 ‘대만 하이디스노동자 지지 전선(아래 대만하이디스전선)’ 동지들과 하이디스지회 조합원들은 대만에서 벌인 연대 투쟁 풍경을 다시 만들어냈다.

11일, 대만 중화통신노조, 국제이주노동자협회, 타이페이 지역노조, 타오위엔 지역노조, 공장폐쇄 네트워크 등 대만하이디스전선 소속 열 명의 동지가 한국에 입국했다. 15일 여덟 명의 동지가 이어서 한국에 왔다. 민주노총 창립 20주년을 맞아 해외 동지들을 초청했다. 두 명의 대만 동지가 초청을 받았지만, 열 여섯 명이 자신의 돈을 들여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 11월11일 하이디스 문화제에 참석한 ‘대만 하이디스노동자 지지 전선' 동지들이 하이디스 투쟁 승리를 염원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김경훈

이들은 민주노총 20주년 공식 행사를 마치자 마자 저녁 식사도 미루고 하이디스지회 수요문화제로 바삐 발걸음을 옮겼다. 대만 동지들이 무대에 나가 한 명씩 인사를 할 때마다 열띤 환호가 끊이지 않는다.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대만 동지들도 서투르지만 준비한 한국어 인사를 하며 두 손을 높이 들어 흔들었다.

공장폐쇄 네트워크 회원인 치홍 씨는 “정말 보고 싶었다. 대만에서 만나지 못했지만 SNS를 통해 하이디스 동지들이 계속 투쟁하고 농성하는 모습 봤다. 마음 아팠다”고 인사했다. 치홍 씨는 “하이디스 동지들이 투쟁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하고 있다. 동지들이 다시 대만에 오면 예전과 같이 연대하고 지지하겠다”며 “‘노동자는 하나’라는 진리를 보여주기 위해 같이, 함께 싸우겠다”고 연대의 뜻을 밝혔다.

▲ 민주노총 경기도본부와 타이페이시 지역노조가 11월12일 '노동자 국제 연대실천을 위한 민주노총 경기도본부·대만노동자 투쟁 지지 전선 자매결연식'에서 자매협약 체결서를 교환하고 있다. 수원=김경훈

한국 방문 둘째날인 12일, 대만하이디스전선 동지들은 수원 민주노총 경기도본부 사무실에 갔다. 하이디스지회의 대만 원정투쟁을 계기로 경기본부와 대만하이디스전선 소속 여덟 개 단체는 ‘노동자 국제 연대 실천을 위한 자매결연’을 맺었다.

장혜진 경기본부 사무처장은 “대만을 다녀 온 조합원들에게 대만 동지들이 적극 지지하고 함께 투쟁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하이디스 투쟁을 위해 눈물겹게 헌신한 사실을 알고 있다. 진심으로 고맙다. 한국 방문을 환영한다”고 대만 동지들을 맞이했다.

장혜진 사무처장은 “하이디스지회 투쟁을 지탱하는 힘 중 하나는 대만 동지들의 연대와 지지다. 자매결연으로 인연을 만들었다. 한국과 대만의 노동운동이 같이 발전하는 계기로 만들자”고 자매결연의 의미를 강조했다.

이날 자매결연을 맺은 대만 단체는 중화통신노조, 타이페이 지역노조, 타오위엔 지역노조, 전기전자노조, 대학노조, 인권협회, 공장폐쇄 네트워크, 국제이주노동자협회 등 여덟 곳이다. 모두 하이디스지회 네 차례 원정투쟁 중 대만하이디스전선을 구성하고 자신의 일처럼 앞장서 투쟁한 곳이다.

▲ 장혜진 경기도본부 사무처장이 11월12일 '노동자 국제 연대실천을 위한 민주노총 경기도본부·대만노동자 투쟁 지지 전선 자매결연식'에서 “하이디스 투쟁을 지탱하는 힘 중 하나는 바로 대만 동지들의 연대와 지지다. 자매결연으로 인연을 만들었다. 한국과 대만의 노동운동이 같이 발전하는 계기를 만들자”라고 자매결연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수원=김경훈

대만 동지들의 인사가 이어졌다. 타오위엔 지역노조 쫜푸카이 위원장은 “아직 투쟁이 승리하지 않았지만 지속해서 투쟁하는 하이디스 동지들 보며 감동 받았다. 존경한다”며 “자본은 국경을 넘어 노동자를 탄압한다. 국제 연대를 강화해 더 좋은 사회를 만들도록 노력하자”고 화답했다.

언징이 중화통신노조 부위원장은 “중화통신노조는 대만에서 규모가 큰 노조다. 자원과 인력도 많다. 힘든 투쟁을 하는 노동자들을 더 도와주고 같이 싸워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낀다”며 “대만 자본이 한국에서 나쁜 짓을 했다. 이 때문에 피해받고 해고된 한국 노동자들이 대만에 왔다. 당연히 같이 싸워야 한다”고 하이디스지회와 연대투쟁을 결심한 이유를 설명했다.

“자기 나라에 갇혀 생각하면 안 된다. 자본은 이것을 원한다. 우리가 국경을 넘어 단결하지 않으면 자본만 이롭게 해주는 꼴이다”라며 “하이디스 동지들의 투쟁을 보고 같이 싸우면서 우리가 더 많이 느낀다. 국제 연대의 필요성을 온몸으로 느꼈다. 우리가 많은 것 보고 느끼게 해 준 하이디스 동지들에게 고맙다.” 언징이 부위원장은 하이디스지회에 고마움의 인사를 전했다.

▲ 치홍 공장폐쇄 네트워크 회원이 11월12일 '노동자 국제 연대실천을 위한 민주노총 경기도본부·대만노동자 투쟁 지지 전선 자매결연식'에서 연대의 의미를 담아 민주노총 경기도본부에 공장폐쇄 네트워크 깃발을 전달하고 있다. 수원=김경훈

이들은 자매결연식을 진행하며 네 차례 대만 원정투쟁 모습을 담은 영상을 함께 봤다. 당시 투쟁을 떠올리며 모두 영상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대만 동지들은 각 단체의 깃발과 물품을 한국 동지들에게 선물했다.

이상목 하이디스지회장은 “하이디스 노동자들은 힘들게 싸웠다. 투쟁 과정에서 대만 원정투쟁은 무엇보다 중요한 싸움이었다”며 “이 자리에 온 대만 동지들이 없었다면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고맙다”고 인사했다. 이상목 지회장은 “노동자의 패배는 투쟁을 포기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때문에 반드시 승리한다. 승리한 뒤에 다시 대만에 가서 동지들을 만나겠다”고 약속했다. 대만 동지들은 “꼭 대만에 와라. 기다리겠다. 대만에서 만나자”고 화답했다.

11월12일 대만하이디스전선 동지들은 경기 이천에 방문했다. 서울에서 만나지 못한 하이디스지회 조합원과 3차 원정투쟁을 함께했던 배재형 열사의 부인을 만나기 위해서다. 말은 통하지 않지만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서로를 껴안고 눈물을 흘렸다. 어느 자리에 가든 헤어질 때 많은 시간이 걸렸다. 한 사람 한 사람 사진을 찍고, “잘가라. 또 만나자”는 인사를 수 없이 했다.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른다는 아쉬움에 쉽게 손을 놓지 못했다.

“원정 가기 전 먼저 다녀온 조합원들에게 많은 얘기를 들었다. 막상 대만에 가니 이해할 수 없었다. 도대체 이 사람들이 왜 이렇게 우리에게 도움을 주는지, 왜 자기 일처럼 같이 싸우는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시간을 들여 농성하고, 밤새 회의를 하며 투쟁 계획을 세우고,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며 같이 싸웠다. 그리고 우리를 보기 위해 한국까지 왔다. 정말 고마운 동지들이다.” 이지연 조합원은 대만 동지들을 만난 소감을 얘기했다.

▲ 배재형 열사의 부인과 천쇼리엔 대만 국제이주노동자협회 연구원이 11월12일 이천의 한 식당에서 오랜만의 만남 후에 헤어짐을 아쉬워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천=김경훈

이들의 연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5차 하이디스지회 대만 원정투쟁을 논의한다. 이길 때까지 함께 싸우겠다는 마음을 전달했고 이 투쟁은 한국과 대만에서 계속 이어간다.

노조는 하이디스지회, 한국 노동자들과 함께한 대만 동지들의 연대 투쟁에 대한 고마움의 뜻을 담아로 11월30일 40차 정기대의원대회에서 대만 하이디스노동자 지지 전선에 감사패를 전달하기로 했다.

‘동지들이 있어 우리는 외롭지 않게 투쟁할 수 있었습니다. 반드시 현장으로 돌아가겠습니다. 노동자는 하나다.’ 하이디스지회 조합원들이 대만 동지들에게 전한 글귀다. 대만과 한국 노동자들의 특별한 한국에서 만남은 더 끈끈하고 단단한 연대와 내일을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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