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자의 업무상 재해를 신속하고 공정하게 보상하며, 재해근로자의 재활 및 사회 복귀를 촉진하기 위하여 이에 필요한 보험시설을 설치·운영하고, 재해 예방과 그 밖에 근로자의 복지 증진을 위한 사업을 시행하여 근로자 보호에 이바지한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아래 산재법) 1장 1조의 목적이다. 법률이 명시하고 있는 산재법의 목적과 달리 많은 사람들이 산재하면 쉽게 떠올리는 단어는 ‘불승인, 승인받기 어려운 과정’이다. 근로복지공단의 산재 불승인 결정에 대한 문제제기는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아래 질판위) 비판으로 이어진다.

▲ 7월2일 민주노총이 산재보험 제도 개선 워크숍을 열고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의 운영에 대한 평가와 개선 방향을 논의하고 있다. 강정주

산재법은 업무상 질병 인정여부를 심의하는 근로복지공단 소속의 질판위의 설치, 운영을 명시하고 있다. 2008년 7월1일 개악 산재법이 시행됐다. 정부는 이때 질판위 제도를 도입했다. 민주노총은 논의 끝에 질판위 참여를 결정하고 2012년 9월부터 참여했다. 2년 6개월이 지난 현재 80여 명의 민주노총 추천 질판위원이 활동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7월2일 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서 산재보험 제도 개선 워크숍을 열고 질판위 운영 평가와 개선 방향을 논의했다. 이날 워크숍에 질판위에 참여하고 있는 위원들이 직접 참석해 질판위의 현황과 문제점을 제기했다.

경인질병판정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장안석 민주노총 인천본부 조직부장은 “2008년 산재법 개악 당시 근골격계질환과 관련한 핵심 개악안이 질판위 도입이었다”며 질판위 운영 이후 근골격계질환 산재 승인률이 10% 이상 낮아졌다고 설명했다. 뇌심혈관계 질환의 산재 인정률 역시 2008년 이후 지속 감소했다. 21.7%였던 인정률이 2011년 12.9%로 줄었다.

장안석 조직부장은 질판위 심의 과정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장안석 조직부장은 “경인질판위의 경우 한 차례 회의에서 평균 16건을 심의한다”며 “회의가 길어져 오후 5시가 넘으면 한 건 당 2분 만에 심의를 끝낸다. 심의자료를 검토할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 재해조사 자료 자체가 엉망이기 때문에 업무관련성에 대해 토론할 근거가 부족하다”고 현황을 설명했다.

질판위 도입 후 급락한 산재 승인률

장안석 조직부장은 “산재 신청 노동자가 일하는 곳에서 단 하루도 일하지 않은 사람들이 산재 승인 여부를 심의하는 현실이 질판위의 가장 큰 문제점”이라며 “현재 판정위원들은 다양하고 열악한 일터에 대한 경험이 없고, 노동자들이 어떻게 일하는지 전혀 모른다”고 지적했다.

▲ 7월2일 워크숍에서 경인질병판정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장안석 민주노총 인천본부 조직부장이 “2008년 산재법 개악 당시 근골격계질환과 관련한 핵심 개악안이 질판위 도입이었다”며 질판위 심의 과정의 문제점을 설명하고 있다. 강정주

이날 워크숍에 참석한 다른 질판위원들도 부실한 재해조사, 인력과 전문성의 부족, 기준없는 산재 심의 등 문제점을 동일하게 지적하며 질판위 운영의 한계를 꼬집었다.

서울질판위원으로 활동하는 최진수 민주노총 서울본부 노동법률지원센터 법규부장은 뇌심혈관계질환의 산재 심의 과정의 문제를 제기했다. 고용노동부 고시는 뇌심혈관계질환의 기준을 ▲돌발적인 사건과 급격한 업무환경의 변화 ▲단기간 동안 업무상 부담 ▲만성적인 과중한 업무라고 규정하고 있다. 만성적 업무에 대한 기준으로 발병 전 12주간 1주 평균 60시간을 초과하거나 발병 전 4주 동안 1주 평균 64시간을 초과하는 경우 업무관련성이 강하다고 예시하고 있다.

최진수 법규부장은 “뇌심혈관계질환은 업무 환경, 수행 내용, 개인의 신체 조건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질판위원들은 기계적으로 업무시간만 고려한다”고 지적했다. 예시에 불과함에도 고용노동부 고시인 평균 60시간, 평균 64시간 기준에 미달하면 불승인으로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최진수 법규부장은 “평균 60시간에서 5분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불승인 난 사례가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한 재해조사도 허술하다. 최진수 법규부장은 “조사시트가 구체적이지 않다. 조사시트에 근로시간만 구체적으로 명시할 뿐, 당시의 기온차, 급격한 스트레스 요인 등을 기록하는 항목이 없다”며 “산재 신청 노동자가 근로시간이 아닌 다른 스트레스가 있었다고 주장해도 조사보고서에 ‘스트레스 요인을 확인할 수 없음’이라고 기재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병명, 상황 같아도 승인 여부는 고무줄

최진수 법규부장은 “민주노총이 질판위에 참여하기 전 판정 절차 자체를 알 수 없었다. 질판위 참여로 베일에 가려있던 판정 절차를 확인할 수 있다. 요양신청에 관한 자료 전체를 검토할 수 있엇다”고 질판위 참여의 성과를 말했다. 최진수 법규부장은 질판위원 구성과 재해조사 통제 수단 부족, 심의 과정의 선입견 등의 한계가 존재한다고 밝혔다.

▲ 7월2일 워크숍에서 김대희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사무국장이 “같은 상병명, 같은 상황의 사례임에도 그 날의 질판위원 구성 등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온다. 산재 승인 기준이 종잡을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라고 질판위 산재 심의 과정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강정주

김대희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사무국장은 각각 다섯 가지 산재 승인, 불승인 사례를 소개하며 질판위 판정의 기준이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김대희 사무국장은 “같은 상병명, 같은 상황의 사례임에도 그 날의 질판위원 구성 등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온다. 산재 승인 기준을 종잡을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라고 비판했다.

이날 워크숍에 참석한 질판위원들은 질판위 구성의 변화와 심의 기준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의견을 밝혔다. 최진수 법규부장은 ▲조사관과 질판위원 충원 ▲산재 신청자 주치의 심의 참여 보장 ▲재해자 기준 판단 원칙 실현을 위한 고시 개정 ▲다수의 질판위원을 법률전문가로 구성하는 등 개선 방안을 제출했다.

장안석 조직부장은 “산재법 취지에 따른 판정을 할 수 있도록 법적 기준과 취지를 강화하는 것이 우선 필요하다”며 ▲재해조사 강화와 재해조사 보고서 개선 ▲최소 심의 15일 전 자료 공개 ▲질판위원의 작업장 조사권 보장 ▲사업주가 이견 제출시 청구인에게 자료 즉시 제공 등을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7월2일 워크쇼에서 권용수 노조 울산지부 노안부장이 “2008년 산재법 개악 이후 현장 노동자들은 제대로 치료받을 권리를 박탈당하고 있다”며 “질판위는 산재 승인을 제한하는 기구다. 근로복지공단이 정한 의학적 기준에 따라 불승인 결정을 한다. 질판위 제도 개선으로 객관성을 확보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발언을 하고 있다. 강정주

이날 워크숍에서 질판위 해체와 산재보험 제도 전면 개혁을 위한 전국 투쟁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부산·울산·경남권역 노동자건강권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는 권용수 노조 울산지부 노동안전보건부장(아래 노안부장)은 이같은 의견을 제시하며 산재보험 제도개혁을 위한 전국 건강권 대책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질판위는 산재 승인 제한 기구”

권용수 노안부장은 “2008년 산재법 개악 이후 현장 노동자들은 제대로 치료받을 권리를 박탈당하고 있다”고 제기했다. 권용수 노안부장은 “질판위 제도 도입 이후 산재 승인률이 급격히 낮아졌다”며 “2013년 민주노총이 질판위에 참여한 이후 승인률이 7% 높아졌다. 이 사실은 질판위 참여의 성과가 아니라 질판위에 대한 끊임없는 투쟁의 결과”라고 의견을 밝혔다.

권용수 노안부장은 “질판위는 산재 승인을 제한하는 기구다. 근로복지공단이 정한 의학적 기준에 따라 불승인 결정을 한다. 질판위 제도 개선으로 객관성을 확보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권용수 노안부장은 “모든 노동자가 산재법 보호를 받고 치료받을 수 있는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산재보험 제도 전면 개혁 투쟁이 필요하다”며 “2008년 이후 민주노총이 지역별 대책위원회를 구성해 건강권 투쟁을 하기로 결정했지만 현재 부산, 울산, 경남권역만 운영하고 있다. 전국 대책위를 구성하고 투쟁을 벌여야 한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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