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희 보도담당 사장이 앵커를 맡아 진두지휘하는 JTBC <뉴스룸>이 구설에 휩싸였다. 다른 일도 아닌 ‘도둑질’ 때문이다. JTBC는 이명박 정부의 자원외교 비리와 관련한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던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전 새누리당 국회의원)이 목숨을 끊기 전 <경향신문>과 진행한 인터뷰 녹취록을 무단 공개했다. 손석희 앵커는 ‘공익’을 앞세워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했다.

논란이라고 하지만 JTBC 혹은 ‘손석희’라는 이름을 빼고 보면 논란이라고 할 것도 없다. A라는 매체에서 특종 인터뷰를 했다. 이 인터뷰 내용이 정치․사회적으로 민감한 것이었기에 검찰이 수사에 돌입했고, A 매체는 검찰 수사에 협조하기 위해 해당 인터뷰의 녹취를 제출하고 다음날 전문 공개를 예고했다. 이 과정에 개입했던 ㄱ이라는 인물이 이 녹취를 빼돌려 B라는 매체에 넘겨줬고, B 매체는 곧바로 녹취 내용을 공개했다. A 매체의 단독이자 특종의 결과물을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빼돌려 먼저 ‘장사’를 한 것이다. 한 마디로 도둑질이다.

일부에선 선뜻 JTBC를 향해 도둑질을 했다고 말하기 어려워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대놓고 여권을 편들기 위해 탄생한 듯 보이는 다른 종합편성채널들과 ‘김비서’라는 조롱의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한 공영방송 사이에서, 매섭게 권력을 감시하고 약자를 향해 한 번이라도 더 시선을 던지려 노력하고 있다는 믿음을 주는 뉴스를 만드는 듯 보였던 JTBC이기 때문이다.

이러다 보니 여전히 어떤 이들은 손석희 앵커가, JTBC가 그렇게 한 데는 뭔가 이유가 있을 거라 믿고 싶어 한다. 이런 가운데 손 앵커는 <경향신문>보다 먼저 녹취를 공개한 데 대한 비판이 일자 ‘공익’을 이유로 내세웠다. “당초 검찰로 녹음파일이 넘어간 이후 이 파일을 가능하면 편집 없이 진술의 흐름에 따라 보도하는 것이 공익에 부합한다 생각했고, 이 파일이 검찰에 넘어간 이상 공적 대상물이라 판단했다.” (4월16일 <뉴스룸> 클로징 멘트)

▲ JTBC가 내세운 명분이든, 또 다른 무엇이든 그것이 과연 옳았는지 돌아보기 위한 시스템이 말이다. 굳이 당장은 밖으로 알리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제발 JTBC 내부에서 돌아보고 나아가기 위한 논의를 시작하면 좋겠다. 아직 대한민국 언론계에는 JTBC의 역할이 더 필요하고, 그렇기에 다시는 이런 일로 신뢰를 상실하고 싶진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익을 내세우기 위해선 <경향신문>이 녹취를 은폐하거나 짜깁기 공개로 진실을 감추려 한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알려졌다시피 <경향신문>은 녹취를 검찰에 증거로 제출했고, 인터뷰 전문을 지면을 통해 공개하겠다고 예고했다. <경향신문>의 전문 공개 몇 시간 전 서둘러 녹취 전체도 아닌 일부를 잘라서 공개한 JTBC의 행위를 ‘공익’이란 단어로 포장하는 게 무리한 이유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 직후 특보를 진행하던 JTBC의 한 앵커는 막 구조된 단원고 학생과 인터뷰를 하며 친구들의 죽음을 알리는 무신경한 인터뷰로 물의를 빚었다. 이때 손석희 앵커는 <뉴스9>(현 <뉴스룸>) 오프닝과 함께 사과를 했다. 어떤 변명도 필요치 않다며, 선임자로서 후배 앵커에게 제대로 알려주지 못한 책임이 크다고, 이 실수를 바탕으로 더 신중하게 보도에 임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구조 활동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사망 보험금을 계산하고도 재난보도의 관행이라며 반성하지 않는, 학생 전원구조 오보를 내고도 우리가 최초 오보는 아니었다고 다투는 언론들이 거의 전부였기에, 어떤 변명도 없이 잘못했다고 고개를 숙인 손 앵커의 모습은 돋보였다. 그리고 이후 JTBC는 세월호 희생자들과 가족들을 먼저 생각하는, 사려 깊은 방송을 이어갔다.

이번 상황이 벌어지고 1년 전 손석희 앵커의 사과가 개운치 않다는 생각이 뒤늦게 든다. 무슨 일이 있으면 과거의 일을 줄줄이 엮어 손가락질을 한다는 지적을 받아도 할 말은 없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게 사실이니까 말이다. 개운치 않은 지점은 이렇다. 당시 손 앵커는 생존 학생 인터뷰를 하던 앵커가 사려 깊지 못한 질문을 한 데 대한 책임을 자신에게 돌리며 선임자로서 후배 앵커에게 제대로 알려주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JTBC 보도를 책임지는 사장 입장에서 앞장서 책임을 통감하는 말이었겠지만, 사실 이 사안은 재난을 어떻게 보도해야 하는가에 대한 시스템의 문제였다. 물론 시스템으로 문제를 모두 해결할 수 있진 않다. 하지만 시스템은 문제를 최소화하기 위한 장치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손석희 앵커 혼자 후배들을 잘 가르치면 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이번 상황도 마찬가지다. JTBC는 <경향신문> 취재의 결과물을 가로채 보도했다. 손 앵커가 밝힌 것처럼 공익을 위함이라고 판단했든, 아니면 다른 판단이었든 결과는 그렇다. 그리고 이 결과를 놓고 많은 언론계 동료들이, 언론을 연구해 온 학자들이 잘못한 행위라고 한 목소리로 지적하고 있다. 그래서 필요하다. JTBC가 내세운 명분이든, 또 다른 무엇이든 그것이 과연 옳았는지 돌아보기 위한 시스템이 말이다. 굳이 당장은 밖으로 알리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제발 JTBC 내부에서 돌아보고 나아가기 위한 논의를 시작하면 좋겠다. 아직 대한민국 언론계에는 JTBC의 역할이 더 필요하고, 그렇기에 다시는 이런 일로 신뢰를 상실하고 싶진 않기 때문이다.

김세옥 / <PD저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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