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법이라는 게 있다. 방송의 자유와 독립의 가치와 이를 보장하기 위해 필요한 내용들을 규정하고 있다. 방송법은 자유와 독립을 보장받는 방송이 수행해야 할 공적 책무도 기술하고 있다. 이는 공정과 객관, 균형, 소수자의 이익 보호 등을 위함이다.

방송법이 규정하고 있는 일련의 가치와 책무들은 무료 보편 서비스인 지상파 방송과 종합편성채널(이하 종편)을 포함한 유료방송도 예외 없이 적용된다. 하지만 다수의 종편들은 대부분 이 사실을 잊는 듯 보인다. 종편 탄생 이후 본격 등장한 변종 프로그램인 시사토크 프로그램들이 특히 그렇다.

Jtbc를 제외한 다수의 종편은 당초의 설립 취지를 무시한 채 다양한 장르의 프로그램을 ‘종합편성’하는 대신, 사실상 패널들의 ‘입’만으로 운영할 수 있어 상대적으로 제작비가 적게 드는 시사토크 프로그램들로 편성표를 채우고 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이 <한겨레21>과 1월 5일~2월1일 사이 종편의 편성표를 분석한 결과, 시사토크 프로그램은 채널A가 일곱 개로 가장 많았고, TV조선과 MBN이 각각 여섯 개, Jtbc는 한 개였다. 본방을 기준으로 주간 편성시간을 합치면 MBN이 1,850분으로 가장 많았고, 채널A 1,415분, TV조선 1,350분, Jtbc 200분순이었다.

프로그램은 줄지어 편성하고 있지만, 이 모든 프로그램에서 양질의, 전문성이 있는 출연자를 찾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그러다보니 겹치기 출연이 횡행한다. 모니터 보고서에 따르면 4주 동안 혼자서 종편들을 돌아다니며 52회나 등장한 출연자도 있었다.

▲ 전문성에 기초하지 않은 출연자들의 문제는 그저 주장일 뿐인 의견을 사실처럼 전달하고, 자신들끼리 주장의 선명성 경쟁을 하는 과정에서 편향성을 마구잡이로 드러내며 막말 등을 쏟아낼 가능성이 높다는 데 있다.

한 사람이 전문성을 갖고 말할 수 있는 주제는 한정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감안할 때, 종편 시사토크 프로그램들을 꼼꼼히 챙겨보지 않아도 출연자들이 대부분 전문성을 담보하지 않은 ‘썰’을 푸는 방식의 대화를 이어가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는데, 사실은 역시나 그랬다.

전문성에 기초하지 않은 출연자들의 문제는 그저 주장일 뿐인 의견을 사실처럼 전달하고, 자신들끼리 주장의 선명성 경쟁을 하는 과정에서 편향성을 마구잡이로 드러내며 막말 등을 쏟아낼 가능성이 높다는 데 있다.

실례로 TV조선 <정치옥타곤>에 출연한 한 시사평론가는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에게 내란음모 무죄, 내란선동 유죄를 선고한 ‘대법원 판사님들’을 비판했다. 하지만 사법부에 ‘대법원 판사’라는 직함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평론가는 “공안사범은 브로드하게(넓게) 큰 틀에서 잡아내야지. 헌법재판소에서 일일이 말씀한 거라고요. 왜 여기다가 반론을 제기하고 내란음모가 아니라고 그럽니까. 대법원 판사님들, 반드시 헌법재판소를 쫓아가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대법원의 최고법원 지위를 마음대로 부정하는 발언으로, 법률가가 아닌 이에게 방송에서 대법원 판결 분석을 맡긴 결과다.

MBN <뉴스 BIG5>에 출연한 전직 국회의원인 한 출연자는 경기도 안산 인질 살해 사건에 대해 “엄마가 문제가 있었다고 난 봐요. 죽은 딸이 2년 전에 (양부에게) 성폭행 당한 걸 알고 있었으면, 바로 경찰에 신고해 구속을 시켰어야죠. 엄마의 잘못된 일탈로 딸이 하나 죽고, 큰딸은 아버지(친부)가 자기 앞에서 살해당하고 동생이 성폭행 당하고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라고 논평했다.

그런데 피의자의 부인, 즉 죽은 아이의 엄마는 인질 사건 나흘 전 경찰을 찾아 도움을 요청했다. 경찰은 현행범이 아니라는 이유로 고소 절차를 안내하는 데 그쳤고, 그 사이 피의자는 범행을 저질렀다. 전후의 사실 관계를 정확히 파악하지 않은 상황에서 출연자가 자기주장만 내세우다 피해자에게 막말을 퍼부은 것이다. 이 방송은 이 출연자의 일방적인 주장을 해당 사안을 바라보는 하나의 관점으로 제시했다.

종편에서 즐겨 다루는 주제 가운데 하나인 북한 관련 사안에 대해선 확인 자체가 불가능한 ‘카더라’ 발언이 많다. 북한이 미인계로 해외 인사의 아이를 임신하게 하는 ‘씨받이 공작단’을 운영(MBN <뉴스파이터>)하고 있다며 이에 대해 한참 얘기하고, 김정일․김정은의 정력에 대해 토론(TV조선 <황금펀치>)하는 등의 모습이 심심찮게 방송을 타고 있다.

출연자들의 이런 발언들을 통제해야 할 사회자의 역할도 찾아보기 어렵다. 일례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의 현장지도에 대한 토론이 김정일․김정은 가문의 정력에 대한 얘기로 넘어갔을 때 사회자는 “김정일이 정력이 센가요?” “북한 고위층은 뇌물로 성기능 촉진제를 제일 좋아 한다는데요” 등의 질문으로 확인할 수 없는 사실에 대한 발언들을 부추기는 모습을 보였다.

토론이 주제를 벗어나지 않도록, 객관적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얘기들이 쏟아지며 편향적으로 논의가 흐르지 않도록 상황을 통제하던 전통 저널리즘의 사회자의 역할을 아무렇지 않게 방기한다. 저널리즘의 가치를 내던진 종편의 시사토크 프로그램은 종편의 시청률을 견인하고 있고 시청자들은 어느 순간 새로운 포맷의 프로그램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비극이다.

김세옥 / <PD저널> 기자

저작권자 © 금속노동자 ilabo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