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자판기노조라는 말이 참 이상하더라구요”

경기지부 에스제이엠지회 이주일 노동안전부장은 조합 모든 활동이 그렇듯 노동안전(아래 노안) 활동도 조합원 참여가 있어야 바로 선다고 강조한다. 노안 활동은 사고가 벌어졌을 때 사고수습과 산업재해(아래 산재) 신청을 대행해줄 뿐만이 아니다. 조합원 스스로 현장을 다시 보게 하고 아프다는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하는 과정이라는 것.

▲ 이주일 부장은 노안활동은 조합원 참여와 빠짐없는 기록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 부장은 기록은 혹시라도 모를 산재신청을 대비해 근거와 증거를 모으는 활동이고 조합원 참여는 사고가 터지기 전에 문제를 미리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되짚는다. 안산 = 성민규

에스제이엠은 자동차와 선박, 플랜트에 들어가는 벨로우즈를 만드는 사업장이다. 벨로우즈는 배기 시스템의 진동과 소음을 잡아주는 부품으로 스테인레스로 만든다. 에스제이엠은 자동차용 벨로우즈를 만드는 1사업부가 안산에 있다. 대형선박과 플랜트용 벨로우즈를 만드는 2사업부는 시흥에 있다. 만드는 제품 크기가 다른 만큼 안전사고 형태도 다르고 노안 활동 접근 방향도 다를 수밖에 없다.

안산공장은 크기가 작은 자동차용 벨로우즈를 생산한다. 생명을 위협하는 중대재해는 드물지만 작업 중 벌어지는 근골격계질환, 협착사고, 타박상, 자상이 잦다. 시흥공장은 대형구조물을 만든다. 대형사고가 발생할 위험성이 높고 고소작업과 작업물 관리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 부장은 사업부와 부서별로 다른 현장의 특성상 외부강사를 불러 일관적으로 진행하는 강의식 노안교육이 큰 효과가 없다고 진단했다. 조합원들이 자기 일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운 구조라는 것이다.

“조합원들이 강의만 시작하면 자거나 다른 일을 한다. 주의 깊게 강의를 듣는 사람은 얼마 없다. 그래서 현장을 잘 아는 우리들 스스로 서로의 강사가 되면 어떨까 생각해봤다”

이주일 부장은 일단 조합원 입을 여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조합원들이 노안 문제에 입을 열도록 하기 위해 노안 교육에 대한 고정관념을 없애고 ‘말해도 소용없다’로 요약되는 냉소주의를 타파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 에스제이엠 조합원들이 현장 반별로 안전교육에 참가해 안전을 위해 스스로 지켜야 할 행동을 '우리의 안전 다짐'이라는 이름으로 정리해 놓고 있다. 에스제이엠지회 제공

외부강사 대신 지회 노안 부장이 직접 노동안전교육을 하기로 결정했다. 이 부장은 현장에 대한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다. 조합원 작업자세, 작업대에 걸려있는 물건, 적재팔레트에 쌓인 눈까지 보이는데로 일상 사진을 찍어 모았다. 교육도 통으로 진행하지 않고 부서별로 진행했다.

이 부장은 “필요한 자료만 정리해 파워포인트로 설명하고 교육시간 절반은 조합원 토론으로 진행한다”며 “현장사진을 조합원들에게 보여주면 일에 빠져 보지 못했던 것들을 발견한다. 그 내용을 정리해 안전다짐이라는 표를 만든다. 자기가 지적하고 실천하자고 결의한 것이라 남이 지적한 것보다 더 효과가 크다”고 평가했다.

어느 사업장이나 강조하는 사항이지만 안전사고에 대한 인식과 현장보존에 대한 의식도 더 강화해야 한다. 에스제이엠 생산과정은 손을 사용하는 작업이 많다. 자주 날카로운 면에 찔리거나 베인다. 조합원들은 안전사고라고 의식하기보다 알아서 반창고를 붙이거나 대충 지혈하고 다시 작업에 들어갔다.

▲ 질병판정위원회는 질병으로 인한 산재보험급여를 수령받기 위해 거쳐야 하는 기구다. 이주일 노안부장은 질병판정위원회 불투명한 운영에 대비해 근골격계 질환에 대한 최대한 많은 자료를 모으고 있다. 에스제이엠지회 제공

에스제이엠 작업과정은 수동에서 자동으로 많이 바꿨다. 성형기는 자동화로 제품의 처리시간이 41초에서 20초대로 줄어들었고 사람이 개입할 여지가 많이 줄었다. 콘베이어 벨트와 기계에 사람이 따라다가보니 자기도 모르게 작업에 빨려들게 된다.

이 부장은 “살이 찢기고 피부가 베이는 것은 작더라도 분명한 안전사고다. 하지만 자기 업무에 열중하면 자신이 다쳤다는 것보다 일을 계속해야 한다는 생각이 더 강할 수 있다”며 “아프면 아프다고 얘기하고 다치면 다쳤다고 얘기해 주는 것도 조합원이 할 수 있는 노안활동”이라고 강조했다.

노조에 바라는 점을 묻자 조금 머뭇거리다가 대답이 나왔다. 이 부장은 “초보 노안부장이라 실무에 접근하기 어려웠다. 산재신청서 작성예라든지 작업현장을 영상기록할 때 짚어야 할 중요사항을 담은 활동 매뉴얼이 있으면 좀 쉽게 접근할 수 있겠다”며 “다른 지회 간부가 가진 비결을 쉽게 공유해서 누가해도 제대로 된 성과를 낼 수 있는 체계가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주일 부장은 지난 1년간의 활동을 되돌아보며 조합원 참여와 빠짐없는 기록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기록은 혹시라도 모를 산재신청을 대비해 근거와 증거를 모으는 활동이고 조합원 참여는 사고가 터지기 전에 문제를 미리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되짚었다.

이 부장은 근골격계질환을 유발하는 작업들을 기록한 사진을 보여주며 “처음 작업모습을 사진으로 찍을 때 쑥스럽다고 찍지 말라던 조합원들이 이제는 자연스럽게 작업을 이어간다”며 “꾸준히 하니 현장에 변화가 생기더라”고 웃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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