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사는 동네엔 의료생협이 하나 있다. 2009년부터 준비해 2012년 병원을 개원하고 이듬해에 운동센터까지 열었다. 병원 개원 넉 달 전 의료생협이 존재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매달 조합비를 납부하는 조합원이 됐다. 조합원으로 가입하고 이년 육 개월 정도 지났는데, 매달 열리는 이사회와 각종 위원회가 논의한 내용을 홈페이지에서 확인한다. 간혹 늦을 때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빠짐없이 회의 속기록을 올리고 있다.

매달 조합비를 납부하는 조합원이기에 회의 속기록을 원하는 때 언제든 볼 수 있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을 뿐, 새삼스럽지 않았다. 어떤 논의가 오갔는지 알아야 조합원으로서 권리 행사와 의무를 다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KBS이사회에서 정한 회의 운영 관련 세칙을 보며, 회의록을 볼 수 있는 권리가 매우 새삼스러운 것임을 깨달았다.

지난 5월 국회의 방송법 개정으로 공영방송 이사회는 회의를 공개해야 한다. 국민의 재산인 전파를 사용하는 지상파 방송, 그중에서도 공영방송을 관리․감독하는 이사회는 사장 선임 등 막대한 권한이 있지만 공개의 의무가 없었다. 방송의 주인인 시청자들은 이 회의에서 어떤 논의가 오가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이는 시청자 권리를 훼손하는 것이라는데 여야의 공감한 것이다. 법 개정을 통해 공개 의무가 생긴 이후 공영방송 이사회들은 세칙의 부재를 이유로 한동안 회의 공개에 미온적인 모습을 보이더니, 시간을 끌며 마련한 세칙으로 ‘반쪽짜리’ 회의 공개를 밀어붙이고 있다.

이 가운데 특히 논란이 있는 곳은 KBS(한국방송공사)이사회다. KBS이사회가 10월1일 마련한 회의 공개 관련 세칙에 따르면 앞으로 이사회는 모니터로 시청하는 방식이긴 하나 어쨌든 방청을 허용하고 의사록도 공개한다. 의사록은 회의 일시와 장소, 출석인원, 의결 사항과 의안 제안자, 요약 회의 내용 등만 포함할 예정이다. 논의 과정에서 오간 이사들의 구체적인 발언 등이 담긴 속기록은 요청이 들어오면 열람을 허용하는데 이사들의 의결을 거쳐 결정한단다. 법이 공개의 의무를 부여했음에도 비공개를 원칙으로, 공개를 예외로 만든 모양새다.

이쯤에서 언론으로서 특수한 위치를 감안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 가능하다. KBS가 영국 BBC(British Broadcasting Corporation)와 함께 닮아야 할 공영방송의 모범으로 내세우고 있는 일본 NHK(Nippon Hoso Kyokai(Japan Broadcasting Corporation))를 보자. KBS와 마찬가지로 수신료로 운영하는 일본의 공영방송 NHK의 관리․감독을 맡고 있는 NHK경영위원회는 홈페이지에 의사록과 함께 참고자료까지 첨부해 대부분의 논의를 공개하고 있다.

NHK경영위원회 홈페이지에서 지난 2000년 9월 5일부터 올해 9월 24일에 열린 회의 의사록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의사록은 KBS 의사록과 달리 회의 일시와 장소, 참석자, 의제와 의제에 대한 논의 과정과 결론 등을 담고 있고 발언자 이름과 발언 내용까지 적고 있다. 사실상 속기록에 준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다. NHK경영위원회에서 이렇게 구체적인 내용의 의사록을 공개하고 있는 배경은 일본의 방송법 제41조다. 일본 방송법은 NHK경영위원회는 경영위원회 회의 종료 후 지체 없이 경영위원회가 정하는 규정에 따라 회의록(의사록)을 작성․공표하라고 명령하고 있다.

NHK 정보공개와 관련한 논의는 2000년 일본 정부의 특수법인 정보공개검토위원회의 보고서에서 시작했다. 해당 보고서는 ‘NHK가 방송법 상 방송의 자유를 향유하고 수신료 징수해 유지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수신료를 지불하는 수신자의 정보 요청에 부응하는 제도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NHK 정보공개의 의미를 짚었고, 이를 바탕으로 논의 끝에 일본 정부는 2001년 ‘NHK 정보공개 기준’을 마련하고 본격 정보공개에 나섰다.

NHK경영위원회는 이사회 의사록은 물론 위원장 기자브리핑과 관련 자료도 모두 홈페이지에 올리고 있다. 지난 2008년 NHK경영위원회의 권한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방송법을 개정한 이후부터 매년 6회 이상 전국 각지에서 시청자들의 의견을 청취하는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NHK가 시청자들에게 정보를 공개하고 NHK경영위원회가 회의 공개와 적극적으로 시청자들의 의견을 듣기 위한 장치들을 마련하고 있는 바탕엔 수신료로 운영하는 공영방송으로서 정체성과, 그런 공영방송을 관리․감독하는 기구에 주어진 권한에 비례하는 의무에 대한 인식이 있는 것이다.

NHK가 당연하게 고려하고 있는 시청자의 권리를 KBS는 까다로운 조건을 걸고 보장하겠다고 한다. KBS는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는 걸까. 생계든 뭐든 개의치 않고 KBS이사들의 발언 내용이 알고 싶으면 직접 KBS에 찾아오라는 식의 이사회 운영 세칙, 결국 권위주의 언론의 서글픈 일면이다.

김세옥 / <PD저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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