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고 허리야. 저 산재신청 해야겠어요.”

“살다보면 허리, 어깨, 무릎, 발, 무릎, 발 안 아픈데가 어딨어. 산재는 무슨 산재.”

8월28일 안산 에스제이엠 3공장 식당이 떠들썩하다. 생산 현장도, 관리자 사무실도 아닌 식당이 ‘산재’ 때문에 소란스럽다. 이 곳에서 노조 경기지부가 준비한 노동안전 기획교육 연극 <울고넘는 근골격계> 공연이 한창이다.

작업을 하던 춘식이는 허리가 아파서 도저히 일을 할 수 없다. 사장은 손가락이 잘린 것도 아닌데 무슨 산재냐며 손사래를 친다. 병원도, 질병판정위원회도 업무상 질병이 아니라고 등을 돌린다. 당연히 승인될 거라 생각했던 산재는 춘식이에게 너무 먼 얘기다.

▲ 8월28일 극단 '동네풍경'이 노조 경기지부 에스제이엠지회에서 경기지부 노동안전 기획교육 연극 <울고넘는 근골격계> 공연을 펼치고 있다. 안산=강정주

경기지부가 올해 근골격계질환, 근로복지공단의 산재 승인 과정 문제점을 담아 기획한 연극의 내용이다. 극단 ‘동네풍경’이 지부 사업장을 돌며 공연을 펼친다. 사업장에서 안전교육시간에 조합원들과 이 연극을 관람한다.

“연극으로 보니까 쉽고 재밌다”

30여 분의 공연 시간 동안 조합원들은 같이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노래도 따라 부르며 웃는다. 산재 승인의 어려움에 안타까운 탄식을 쏟아내기도 한다. 에스제이엠지회 한 조합원은 “우리들이야 근로복지공단이나 산재 신청 이런거 잘 모르지. 그런데 연극으로 보여주니까 쉽고 재밌다. 연극을 볼 기회가 잘 없는데 아주 좋아. 따봉이야”라고 소감을 전한다. 여느 안전교육과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문춘경 조합원은 “어느 사업장을 가봐도 안전교육시간은 늘 딱딱하다. 영상을 보거나 이론 교육이 대부분이다. 조합원들이 지루해한다”며 “근골격계 산재 문제를 연극으로 보여주니 신선하고 재밌다. 교육은 조합원들이 얼마나 받아들이는가가 중요하다. 쉽고 재밌게 다가가니 조합원들이 더 집중한다”고 이날 교육을 평가했다.

김진태 조합원은 “근골격계질환과 산재 승인 과정의 문제점에 대해 조합원들이 공감할 수 있는 공연이다”라며 “노동안전은 간부 몇 명이 아니라 전체 조합원이 중요한 문제로 인식하고 활동해야 한다. 현장에서 노동자 사이에 노동안전에 대해 인식 격차가 크다. 작더라도 공감대를 만들고 무엇이 문제인지 인식을 맞춰가는 활동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진태 조합원은 “새롭고 다양한 방식을 시도한 점이 좋다. 조합원들이 현장에서 느끼는 문제, 실제 사업장에서 벌어진 상황을 접목하면 더 느끼는 것이 많을 것이다”는 소감도 덧붙인다.

▲ 8월28일 경기지부 에스제이엠지회 조합원들이 연극을 보며 배우들과 함께 구호를 외치고 있다. 안산=강정주

에스제이엠지회는 3월, 6월, 9월 세 차례 안전교육을 진행한다. 이현옥 지회 노동안전2부장은 “교육을 자주하다보니 조합원들의 기대치가 높아진다. 매번 다양한 주제와 교육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며 “사업장의 노안간부들은 비슷한 고민을 한다. 지부 기획교육도 이런 문제를 해소하고자 준비했다”고 설명한다.

분기 1회 안전교육, 지부 집단교섭 합의사항 강제 역할

경기지부 노동안전 간부들은 월 1회 정기 회의를 한다. 사업장에서 간부를 늘리고 일상활동을 확대하기 위한 고민을 진행해왔다. 현장 노안 활동의 어려움이 많지만 여러 간부들이 토로하는 고민 중 하나가 조합원들의 노안 사업에 참여 방안이다. 김성학 경기지부 노동안전보건부장은 “현장에서 조합원들과 같이 하는 노안 사업은 교육, 현장 안전점검을 할 때 의견을 듣는 정도다. 조합원들의 관심이 많지 않고 참여할 수 있는 사업도 부족하다”고 진단했다.

김성학 부장은 “안전 교육을 하더라도 조합원 대부분은 일하다 쉬는 시간이 생겼다고 생각한다”며 “신규 노조는 경험이 없어서 교육 진행을 힘들어하고, 경험이 많은 사업장은 이론교육을 반복하다보니 조합원들이 자는 시간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지부 지회 노안 부장들은 새로운 방식의 교육으로 조합원들이 노안 사업에 관심을 갖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데 뜻을 모았다.

마침 경기 지역에서 활동하는 극단에서 노동자들과 함께 할 사업을 고민하고 있다고 전했다. 여러 차례 지회 노안 간부들과 회의를 거쳐 대본을 완성했다. 김 부장은 “산재 문제는 어느 사업장에서나 발생하는 문제다. 실제 산재 승인 과정이 복잡하고 어렵다는 것을 알고, 우리가 움직이지 않으면 법이 보장한 권리도 적용받지 못 한다는 것을 알리는 대본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 8월28일 극단 '동네풍경'이 경기지부 에스제이엠지회에서 경기지부 노동안전 기획교육 연극인 <울고넘는 근골격계> 공연을 펼치고 있다. 안산=강정주

경기지부는 2011년 지부집단교섭에서 분기별 1회 노조가 안전교육을 진행하고 회사가 비용을 지원하도록 합의했다. 3년이 지났지만 실제 합의대로 교육을 진행하지 못하는 사업장도 있다. “의미있는 합의사항인데도 이런 내용이 있는지 모르는 사업장이 있다. 합의 내용을 제대로 이행하도록 강제하고 더 활용할 수 있는 사업을 계획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 김 부장의 설명이다. 연극 순회 교육을 하며 집단교섭 합의 이행을 강제하는 역할도 한다.

새로운 시도, 새로운 고민

지부는 7월부터 사업장별 순회 공연을 진행하고 있다. 소규모 사업장은 지역 공동 공연을 진행한다. 김성학 부장은 “연극이 재밌다. 보면서 직접 참여하는 대목도 있어서 교육에 와서 조는 조합원이 없다. 이것만으로도 성공이다”라고 기획교육 연극의 성과를 말한다.

복수노조 사업장에서 공연을 할 때 기업복수노조 조합원들도 참여했다. 복수노조로 갈라지면서 조합원들사이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이날만큼은 같이 연극을 보며 웃고 떠들었다. 서로의 벽을 허물고 부담없이 함께할 수 있는 마당을 만들었다.

노동안전 활동을 많이 경험하지 않은 간부들에게 고민과 자신감이 생겼다. 김 부장은 “연극을 소개 하고 모여서 평가도 하면서 간부들이 스스로 기획사업을 했다는 보람을 느낀다”며 “조합원들과 함께할 사업을 더 고민해야겠다는 평가를 하는 간부들들도 많다. 똑같은 방식만 반복했던 것을 스스로 반성하고 새로운 시도해보려는 계기가 생겼다”고 간부들의 변화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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