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의 피의자인 유우성씨를 인터뷰한 JTBC 시사토크 프로그램 <뉴스 큐브 6>(2월18일 방송)에 대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여권 추천 위원들이 지난 3일 ‘경고 및 관계자 징계’의 법정제재를 밀어붙였다.

이는 재승인 심사에서 벌점 4점이 부과되는 중징계다. <뉴스 큐브 6>이 방송심의규정 제9조(공정성) 2항과 제11조(재판이 계속 중인 사건), 제14조(객관성) 등을 위반했다는 게 여권 추천 심의위원들의 생각이다.

여권 추천 심의위원들이 특히 문제 삼은 위반 조항은 11조다. 재판이 진행 중인 사건의 피의자를 출연시켜 자기 변론를 하게 함으로써 향후 재판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게 했고, 사법권의 독립성도 훼손했다는 것이다.

방송심의규정 11조 위반을 가장 강한 어조로 질타한 이는 검사 출신의 박만 위원장이었다. 그는 “언론이 재판을 비판할 순 있지만 법관의 전속적 권한에 속하는 증거에 대한 사실인정과 유·무죄 판단을 대상으로 삼아선 안 된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은 사실인정 문제를 모두 건드리고 있다”고 말했다.

언론은 판관이 아니다. 때문에 박 위원장의 말마따나 JTBC 방송이 유우성씨의 간첩 혐의에 대해 유·무죄 판단을 했다면 분명 이는 문제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방송에서 다룬 것은 검찰이 유우성씨의 간첩 혐의를 입증하기 위해 사법부에 제출한 증거가 위조됐다는 의혹이다. 중국 정부가 유우성씨의 중국-북한 출입경기록이 위조된 것이라고 확인하면서 검찰이 재판부에 제출한 증거에 문제가 있음을 뒷받침하는 내용들이 연이어 나오던 때였다.

증거의 증명력에 대한 의문, 즉 국가 권력에 의한 인권 유린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언론이-비록 피의자이긴 하나- 국가 권력 앞에 상대적으로 약자일 수밖에 없는 당사자의 입장에도 귀 기울일 필요성을 찾은 배경일 터다. 실제로 검찰은 한 달 넘게 위조문서가 아닐 가능성을 고집하다, 지난 3월27일 항소심 재판부에 제출한 증거 36건 중 20건을 철회했다. 철회한 증거 중에는 중국 정부에서 위조라고 밝힌 세 개의 문서도 포함돼 있었다.

재판 중인 사건에 대한 방송 보도를 제한하는 규정은 외국에도 존재한다. 하지만 해당 규정을 엄격하게 적용하는 이유는 다르다. 선거라는 민주적 절차로 선출된 권력이 임명한 검사들이 확신을 갖고 피고인을 기소한 만큼, 여론은 판결과 무관하게 피고인에 대해 의혹을 보낼 수밖에 없는 상황. 만약 방송에서까지 판결 이전에 관련 내용을 마구잡이로 보도할 경우 피고인의 공정한 재판 받을 권리가 훼손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즉, 재판 중인 사건에 대한 보도를 제한하는 규정의 근본 이유는 만에 하나일지라도 유죄 추정에 대한 염려가 있다는 얘기다. 야권 추천 심의위원인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외국에서 제도를 가져오고 정작 재판 중인 사건에 대한 보도를 엄격하게 제한하는 해당 제도의 취지와 상관없이 우리(방통심의위원)가 이상하게 규제 조항을 적용하고 있다”고 비판한 이유다.

여권 추천 심의위원들의 JTBC 방송에 대한 방송심의규정의 공정성과 객관성 위반 주장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해당 방송은 유우성씨 인터뷰를 내보내기 전날인 2월17일 검찰 주장을 보도했다. 3월10일에는 검찰의 입장을 옹호하는 변호사와의 대담을 16분 동안 방송했다. 유우성씨 인터뷰를 방송한 게 공정성을 잃은 행위라면 3월10일 방송 또한 마찬가지인 것이다.

하지만 여권 추천 심의위원들은 이 사안과 관련이 없다며 더 이상의 논의를 피했다. 박만 위원장은 “2월18일에 유우성씨를 인터뷰한 후 민원이 제기돼 공정성 위반을 희석시키려 했다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며 사실에 기반한 근거가 아닌 ‘의구심’, 즉 추측으로 JTBC에 대한 중징계를 사유를 추가했다.

중세 시대, 마녀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증거가 필요 없었기 때문이다. 그저 여인 혼자 산다는 이유만으로 마녀는 탄생하곤 했다. 불공정의 분명한 근거와 잣대도 없이 방송의 공정성을 재단하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대체 무엇이 다른 것일까.

김세옥  / <PD저널> 기자

저작권자 © 금속노동자 ilabo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