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10일 현대제철 당진공장에서 전로 보수작업을 하던 노동자 다섯 명이 아르곤가스에 질식해 사망했다.

제철소 내 설비 시공, 유지, 보수 업무를 담당하는 한국내화 노동자들이었다. “명백한 인재다. 참사로 다섯 명의 동료를 허망하게 잃었다.” 한국내화 노동자들은 지난 1월20일 금속노조 현대제철내화조업정비지회를 설립했다.

현대제철 당진공장 안에서 350여 명의 한국내화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다. 최인환 현대제철내화조업정비지회장은 “지난해 사고 이후 우리 목숨을 누구도 지켜주지 않는다고 생각했다”며 당시 사고가 지회 설립에 나선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참사로 5명 동료를 잃었다

한국내화 노동자들에게 당시 사고는 남의 일이 아니었다. 김윤창 지회 조직차장은 당시 전로작업 주간조로 일했다. 김 조직차장은 “작업 시간이 앞당겨지면서 원래 주간조가 해야 할 작업을 야간조에서 했다. 그때 사고가 발생했다. 내가 사고 당사자가 될 수도 있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 6월12일 충남지부 현대제철내화정비조업지회 조합원들이 퇴근 후 족구대회를 하기 위해 모였다. 강정주 편집부장

최인환 지회장은 “대형 참사였지만 한국내화 안전 담당자 세 명은 벌금형만 받았다. 책임지려는 어떤 태도도 없었다”며 “심지어 당시 책임자였던 안전관리자는 지난해 회사에서 모범사원상을 받았다”고 회사의 태도를 규탄했다. 노동자들이 스스로 현장을 바꿔야 한다는 결심을 했다.

최영수 노안부장은 작업 환경의 위험성을 강조했다. 최 노안부장은 “설비 자체에 불안요소가 많다. 분진이 많고, 작업할 때 내부 온도가 낮은 곳은 80도, 높은 곳은 250도다. 축조작업하는 돌 한 장 무게는 40킬로그램이 넘는다. 모두 수작업으로 한다”며 “작업을 급하게 진행하다보니 고로를 완전히 비우지 않고 일한다. 고로 내부에 가스를 다 빼지 않은 상태에서 불꽃이 많이 튄다. 사고위험이 늘 도사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무리한 공기 단축도 위험 요소다. 최 지회장은 “현대제철에서 수리 기간을 정하면 무조건 맞춰야 한다. 다른 나라는 한 달 씩 수리할 물량도 우리는 삼일 만에 끝내기도 한다”고 실상을 전했다. 이 곳 노동자들은 3조3교대로 일하지만 공정이 바쁠때는 휴일도 교대조도 없다.

이정훈 지회 선봉대장은 “바쁠때 14일 동안 12시간씩 맞교대로 휴일 없이 일하기도 했다”고 말한다. 최 노안부장은 “한국내화 노동자들은 계속 혹사당하고 있다. 현재 노동강도, 위험요소를 그냥 둔다면 5~6년이면 건강했던 사람도 병들 수밖에 없다”며 “직접 일해보지 않으면 상상 할 수 없을 만큼 열악한 상황에서 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5년이면 건강했던 사람도 병든다

회사 관리자들이 현장 노동자들을 억누르는 문제가 심각했다. 신승희 부지회장은 “관리자들은 ‘회사 발전에 도움이 안된다, 중고등학교 나온 놈들에게 돈을 얼마나 줘야하느냐’는 식의 막말을 했다”며 “부서 발령도 관리자들 마음대로 했다. 법도 원칙도 없었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이정훈 선봉대장은 “무시도 많이 당하고 설움도 컸다. 그때는 내가 그런 처우를 받는게 당연한 줄 알았다. 반발할 생각도 못했다”고 덧붙였다.

▲ 최인환 충남지부 현대제철내화정비조업지회장이 “지난해 전로보수작업 중 다섯 노동자가 사망한 사고 이후 우리 목숨을 누구도 지켜주지 않는다고 생각했다”고 지회를 설립하게 된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강정주 편집부장

신 부지회장은 처음 지회를 설립할 당시 걱정이 많았다고 말한다. “회사의 억압이나 열악한 상황이 너무 당연한 것처럼 지냈다. 조합원들이 얼마나 뭉칠 수 있을까 걱정도 했다. 지금 조합원들은 먼저 할 일을 찾고 간부들 보다 더 투쟁에 적극적이다”라는 것이 신 부지회장의 설명이다.

지회를 설립하고 두 달 동안 매일 조합원 교육을 했다. 밤 11시에 퇴근하면 새벽 1~2시까지 교육을 했다. 현재 매주 1회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6월부터 조합원들이 퇴근 뒤에 모여 족구대회도 진행하고 있다.

신 부지회장은 “노조에 가입하고 가장 많이 달라진 것은 간부 자신들이다. 예전에는 내가 힘드니 다른 사람 챙길 여력이 없었다. 지금은 부당한 대우를 받는 사람이 있으면 같이 가서 항의한다. 회사가 수습기간이 끝난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채용하지 않자 조합원들이 항의해서 개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나만 손해보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조합원들 의식이 달라지고 있다.” 최 노안부장은 “회사에게 노동자들이 바보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가 스스로 보여주고 있다”라고 현장의 변화를 설명했다.

조합원들의 의지는 지회 설립 때부터 강했다는 것이 지회 간부들의 설명이다. 회사는 지회 설립을 감지하고 설립 삼일 전 지회장과 부지회장 등 여섯 명을 현대제철이 아닌 다른 공장으로 강제 발령냈다. 최 지회장은 “갑자기 서천공장으로 발령이 났다. 회사는 핵심 몇 명을 다른 곳으로 보내면 지회를 세울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회사의 예상은 빗나갔다. 지회 설립 일주일만에 노동자 90%가 가입했다. 회사는 조합원들의 기세가 사그러들지 않자 결국 두 달 만에 여섯 명을 모두 현장에 복귀시켰다.

“노동자는 바보가 아니라는 것 보여주고 있다”

한국내화는 지회 설립 오 개월이 지나도록 교섭을 거부하고 있다. 기존에 있던 생산공장 내 노동조합과 단체협약을 이미 체결했다며 지회의 교섭 요구를 거부했다. 최소한의 노조활동을 보장하는 기본협약 체결도 하지 않고 있다. 신 부지회장은 “노조 인정과 교섭권을 쟁취하는 것이 시급한 문제다. 조합원들이 똘똘 뭉친 힘으로 쟁취하겠다”고 강조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정말 기본적인 것이다. 무시받지 않고 인간답게 살겠다는 것. 축로노동자의 정당한 권리를 찾는 것, 가족들과 같이 지내고 아이들 커가는 모습 볼 수 있는 그런 평범한 삶을 살고 싶다.” 신 부지회장은 조합원들의 바람을 전했다. 최 노안부장은 “아프고 병들고 죽지 않고 정년까지 일할 수 있는 건강한 현장으로 바꾸는 것이 가장 큰 목표다”라고 말했다.

“인생을 걸고 노조에 가입했다. 노동자가 권리를 찾으려면 노조는 반드시 있어야 한다.” 현대제철내화조업정비지회 조합원들의 권리찾기 싸움,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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