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부 홈페이지를 방문하여 <알림마당>란에서 <팜플릿 브로셔>를 찾아서 2006년 12월 13일 날짜로 거슬러 가면 노동부가 홍보한 비정규법 관련 팜플릿을 지금도 다운받을 수 있습니다. 팜플릿 중 2페이지에 나온 삽화에 나오는 행복해 보이는 사무직 노동자의 머리말에는 말풍선이 그려져 있고 “계약한지 2년이 지났으니 나도 이제 정규직이로군”이라 외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아래엔 “2년을 초과하여 계속 근무할 경우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자(정규직 근로자)로 간주됩니다”라고 상세한 해설까지 첨부하고 있습니다.

정확히 2년 후에 노동부는 비정규직법으로 인해 대량해고가 예상된다며 기간을 4년으로 연장해야 한다고 법을 개정하려 나섰습니다. 다행스레 노동자들의 반발로 이는 무산되었고, 최근 2년을 초과 계약한 노동자들이 속속 나오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삽화에서처럼 행복한 표정을 짓는 이는 별로 없습니다.

▲ 2006년 12월 13일 날짜로 노동부가 게시한 비정규법 관련 팜플릿
한 저축은행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상담소를 방문했습니다. 각기 5년에서 7년 가까이 근무한 이들은 해마다 계약갱신을 반복하며 고용불안에 시달려 오다 드디어 2009년 7월 1일 이후 새로이 계약을 갱신함으로써 이제 ‘기간의 정함이 없는 노동자’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기간제 노동자를 2년 이상 사용할 수 없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곤 이상한 부칙으로 법 시행 후 새로운 근로계약부터 시작하여 2년이 넘어야 된다고 만들어 놓았죠. 그래서 종전의 근무기간과 상관없이 2007년 7월 1일 이후로 새로이 갱신되는 계약이 2년을 초과할 경우에만 적용이 되고 있습니다.

어쨌든 여기 이분들은 심적부담과 초조함에 시달리다 겨우 무사히 기간을 넘겨 이제 법적인 보호를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웬걸? 달라지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현실에 또 부딪힙니다. 임금도 근로조건도 대우도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습니다. 그냥 그대로입니다.

회사에 노동조합이 있습니다. 노동조합을 우선 찾았습니다. 나도 조합에 가입할 수 있지 않으냐 물어봤지만 단체협약을 통해 계약직은 조합원이 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제 더 이상 계약직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노동조합은 여전히 이들의 가입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계약직이 아니라 정규직이라는 명백한 확인이 없다는 것이 이유입니다. 법원이나 노동부에서 그런 증명을 좀 받아와주면 좋겠다고 답합니다. 그래서 우리 상담소에 오게 된 것입니다. 정규직 확인서 또는 정규직 증명서를 어떻게 구해야 할까요? 저도 의문입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동사무소에서 이런 증명을 떼주도록 공약하는 후보를 미는 수 밖에 없습니다.

같은 일을 하는 정규직과의 임금 및 근로조건의 차이는 상당합니다. 단체협약에서 ‘정직원’이라 표현하는 정규직의 경우 임금에서 두배의 차이가 있고, 대출보조, 학비보조, 의료비 보조 등을 골고루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직원은 정규직과 다른 말이고 정규직과 기간의 정함이 없는 노동자는 또 다른 말 인가봅니다.

그래서 차별시정위원회에 차별시정신청이란 것을 해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차별시정을 위해서는 우선 기간제 계약직 등 비정규직 노동자이어야 가능하다고 합니다. ‘비정규직’이 아니라 차별신청도 안되고, ‘정직원’이 아니라 단협에 보장도 받지 못합니다. 여전히 계약직 사원 취업규칙에 따라 임금을 받고 있습니다.

회사는 2년이 초과한 노동자들이 생겨나자 서둘러 직군분리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이제 곧 같은 일을 하던 몇몇의 정규직들이 책상을 옮겨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노동부는 ‘같거나 비슷한 일’이 아니기 때문에 정당한 차별이라며 회사의 손을 들어 줄 것입니다. 이제 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불합리한 과거의 차별에 대해, 그리고 미래의 차별에 대해 기나긴 전쟁을 벌이는 수밖에 없습니다. 정규직도 비정규직도 아닌 ‘중규직’ 인생의 시작입니다.

양성민 / 민주노총 부산본부 법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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