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리에 이런 일이 있을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어요. 당당하게 회사 다니니 살 맛 납니다.”

아이리 노동자들에게 2013년은 잊을 수 없는 해다. 2013년 9월 이 곳 노동자들은 금속노조 부산양산지부 식구가 됐다. 이제 노조가입 5개월, 2014년 해야 할 일도, 하고 싶은 일도 많은 이들. 노조 덕에 희망이 생겼다는 아이리지회 노동자들을 만났다.

부산시 사상구에 위치한 ㈜아이리는 수술용 바늘과 칼 등을 생산하는 업체다. 생산직 대부분이 여성노동자다. 현재 조합원은 180명. 이날 만난 지회 간부들은 “당당해졌다. 떳떳하다”는 말을 수차례 한다. 박명화 지회장은 “그동안 시키는 대로 순종하기만 했던 우리가 달라졌다”고 말한다.

김세경 부지회장은 “우리 회사는 회장 말 한마디에 모든 게 좌우된다”고 설명한다. 현장 노동자들이 수차례 얘기해도 관리자들은 회장에 한마디 전달하지 않았고, 대표이사(기존 관리이사)도 모든 요구를 차단했다. 현장 노동자들은 그저 아무 말 없이 부당한 대우를 참으며 일하는 수밖에 없었다.

“당당하게 회사 다니니 살 맛 난다”

지난해 8월 관리자들이 먼저 노조를 만들겠다고 나섰다. 당시 현장 노동자들은 대부분 이 뜻에 동참했다. “긴가민가하면서도 뭔가 바꿔야 한다는 열망이 그만큼 컸다”는 것이 박 지회장의 설명이다. 며칠 만에 관리자들의 태도가 달라졌다. 박 지회장은 “노조 설립 분위기를 안 회장이 회사 폐업하겠다고 하니까 관리자들이 다 포기했다. 이 얘기를 듣고 너무 화가 나서 잠도 안 오더라. 현장 사람들 모두 관리자들이 우리를 우습게보고 배신한 것이라며 그동안 쌓인 울분이 터트렸다”고 당시를 회상한다.

▲ “노조는 그 존재 만으로 우리에게 희망입니다.” 부산양산지부 아이리지회 박명화 지회장, 김세경 부지회장, 정은주 사무장(사진 오른쪽부터)이 지회 깃발 앞에 섰다. 우리 힘으로 더 좋은 일터, 당당한 일터를 만드는 것이 아이리 노동자들의 2014년 소망이다. 부산= 강정주

당시 관리자들은 현장 노동자들의 요구를 회사 측에 전달하겠다고 했다. 요구안 내용 이행을 공증 받아 주겠다고 약속했지만 며칠이 지나도 말이 없었다. 결국 참지 못한 현장 노동자들은 금속노조의 문을 두드렸다. “노조 생긴다는 얘기 듣다가 한 번 배신당해서 조합원들이 안 모일 줄 알았다. 그런데 가입원서 돌린 첫 날 1백이 넘게 서명했다. 그만큼 절박했다.” 이렇게 2013년 9월5일 부산양산지부 아이리지회를 설립했다.

관리자들이 노조 설립을 중단할 당시 현장 노동자들이 제출했던 요구안은 △근로기준법 준수 △폭언, 폭행 금지 △아플 때 개인 병가 보장 △점심시간 1시간 엄수 △식당메뉴 개선 △화장실 용무는 부서장에게 일임 △식당 모임에서 위협적인 말로 사원들 억압하지 말 것 등이다.

김세경 부지회장은 “아파도 대표이사에게 몇 번을 빌면서 말해야 선심 쓰듯 휴가를 준다. 이렇게라도 휴가를 받으면 다행이다. 아프면 사직서를 쓰고 나중에 재입사 하라고 한다”고 이런 요구안을 낼 수밖에 없는 상황을 전한다. 김 부지회장은 “요구안 보면 정말 별것도 아니다. 2013년에 이런 걸 요구해야 한다는 게 부끄러울 정도다”라고 한숨을 쉰다.

공장 안 노동자들의 열악한 상황에 대한 증언이 이어졌다. “원래 8시간 근무인데 매일 한 시간씩 고정 잔업이 있다.” 쉬는 시간이 정해져있지만 그 시간을 모두 쉬어본 적이 거의 없다. 박 지회장은 “점심시간이 한 시간인데 40분 정도 지나면 현장에 불 켜고 일을 시작한다”며 “10분 쉬는 시간도 끝나는 벨이 울리기 전에 반장이 현장에 불 켜면 다 일을 시작한다”고 설명한다.

노동자들을 힘들게 하는 것 중 하나는 화장실이다. 박 지회장은 “공장 들어와서 제일 황당했던 게 화장실에 휴지가 없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 곳 노동자들은 각자 쓸 휴지를 작업복에 넣고 다닌다. 얘기를 나누던 간부들도 하나둘 주머니에 똘똘 뭉쳐둔 휴지를 꺼내 보여줬다.

화장실 청소, 탈의실 청소까지 우리 몫

이 뿐만이 아니다. 회사는 여성 노동자들에게 화장실 청소를 시켰다. 박 지회장은 관리자들이 “화장실 더럽게 썼으니 직접 치우라”라고 말했다고 전한다. 남자 화장실은 회사 청소노동자가 치우는데 여성 노동자들만 청소 당번을 맡아야 했다. 유리창 청소도 하고 탈의실 청소, 현장 에어컨 필터도 청소했다.

▲ 박명화 부산양산지부 아이리지회장이 “조합원들이 돈 보다도 자기 권리 찾았다는 것 때문에 정말 좋아한다. 누구 눈치 안보고 회사 다닐 수 있어서 좋다고 한다”고 노조 가입 이후 현장 분위기를 전하고 있다. 부산= 강정주

화장실 가는 것도 문제다. 박 지회장은 “일 년에 여섯 번 상여금을 준다. 쉬는 시간 외에 화장실 가면 체크해서 상여금을 삭감했다”고 말한다. 김 부지회장은 “내가 화장실 가다 걸리면 부서 사람들 받는 상여금까지 깎이니까 화장실 가고 싶어도 꾹 참았다”며 “참다가 쉬는 시간에 몰아서 가려니 가끔 화장실이 전쟁터가 됐다”고 지적한다.

박 지회장은 “처음 입사하면 남이 입던 작업복을 줬다. 2년 전에야 지금 입고 있는 새 작업복을 받았다”며 “다른 조합원들도 옷을 안주니 사비로 비슷한 걸 사 입거나 여름에도 겨울 작업복을 입고 있다”고 전한다. “일 시키고 임금 주는 것 외에 노동자들에게 주는 게 하나도 없다. 관리자들이 형광등 하나도 아깝다고 일하고 있으면 불 끄고 다닌다. 양치질하면 화장실까지 쫓아와서 물 낭비한다고 타박한다.”

김 부지회장은 조합원들이 식당에 한이 많다고 강조했다. 대표이사가 각 부서별로 식당에 갈 차례를 정해준다. 12시가 점심시간이지만 바로 식당에 못가고 차례가 될 때까지 일을 하면서 기다려야 한다. 식당에 가도 스트레스다. 박 지회장은 “반찬을 여유 있게 내놓지 않으니 늦게 가면 반찬이 없다. 줄 서있는데 내 눈앞에서 반찬 떨어져서 통 치우는 거 보면 정말 짜증난다”며 “어느 날은 국 하나에 김치 하나 놓고 밥 먹기도 하고, 다른 날은 반찬이 없어서 라면을 먹은 적도 있다”고 한다. 삼계탕이 나왔던 날 조합원들이 보는 앞에서 죽 통에 물을 부어 양을 늘렸다. 박 지회장은 “우리가 거지도 아니고 정말 분통이 터진다”고 심정을 전한다.

식당에 한 맺힌 조합원들

지회를 설립하고 파란만장한 5개월을 보냈다. 금속노조 가입을 알게 된 회사는 지난 10월 일방 휴업을 통보했고 실제 이틀 동안 공장 문을 닫았다. 조합원들은 받아들일 수 없다며 출근했지만 공장 문에 ‘휴무’라는 안내문이 붙어있었다. 조합원들이 항의해 이틀 만에 다시 출근했다.

단체협약 체결을 위한 교섭을 26차까지 진행했지만 갈 길이 멀다. 요구안을 본 회사는 회사를 말아먹으려고 한다고 난리도 아니었다. 하지만 지회 간부들은 “그동안 보장받지 못했던 권리를 달라는 것 뿐 무리한 요구는 하나도 없다”고 말한다.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이 있지만 아이리지회 조합원들은 많이 달라졌고 행복해 하고 있다. 공장 마당에서 집회라도 할라치면 조합원들이 간부들보다 적극적이다. 김 부지회장은 “‘노조 인정, 성실교섭 촉구’ 노란띠를 작업복에 달았다. 이 띠를 달면 회사에 조합원임이 드러남에도 다들 아무 거리낌 없이 달았다”고 설명한다.

박 지회장은 “조합원들이 지회 간부들 보면 고맙다고 말한다. 예전에 청소한다고 통근버스도 못 탔는데, 이제 청소 안 해도 되고 커피라도 한 잔 마실 수 있다고 행복해한다”고 조합원들의 반응을 전한다. 이제 탈의실, 화장실 청소는 안한다. 점심시간, 휴게시간도 시간 지켜 쉴 수 있고 식당 메뉴도 조금이나마 개선됐다. 화장실도 가고 싶을 때 떳떳하게 가고, 가다 대표이사를 마주쳐도 주눅 들거나 고개 숙이지 않게 됐단다.

“돈 보다도 자기 권리 찾았다는 것 때문에 정말 좋아한다. 어느 누구 눈치 안보고 회사 다닐 수 있어서 좋다고들 한다.” 박 지회장은 조합원들이 이런 마음 때문에 조합비 외에 따로 지회 활동비를 내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비조합원 중에 지회가 있어서 좋다, 고맙다는 문자를 보내는 경우도 있다.

▲ 부산양산지부 아이리지회 간부들이 교섭을 앞두고 단체협약안을 살펴보며 회의를 하고 있다. 강정주

김 부지회장은 “노조는 존재만으로 우리에게 희망이다”라고 조합원들의 마음을 얘기한다. “예전에 일하면서도 늘 어떻게든 여길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제 ‘우리도 잘 될 것이다, 바뀔 것이다’라는 희망을 품게 됐다”는 것.

“노조는 우리에게 희망이다”

어느 누구보다 아이리 노동자들에게 2013년은 의미가 크다. 2014년에 대한 기대도 넘친다. 박명화 지회장은 “단체협약을 맺고, 조합원들과 여러 사업을 해보고 싶다. 사택 없는 사람들에게 사택 제공을 쟁취하고, 10년, 20년 다녀도 최저임금인 임금을 올리고 싶다”는 바람을 전한다.

새해 소망을 묻자 정은주 지회 사무장은 “지회 생겼을 때 입사한지 6개월 차였다. 처음 입사할 때 정년까지 다녀야지 했는데 다녀보니 아니더라. 못 다니겠다고 생각하고 옮기려고 알아보고 있었다”고 말문을 뗀다. “통근버스에서 내리면 누가 쳐다보는 것도 아닌데 왠지 부끄럽더라. 모든 게 부족한 회사 다니니까 나까지 부족한 사람으로 느껴졌다.” 정 사무장은 스스로 부끄럽지 않은 회사, 좋은 회사라고 말할 수 있는 ‘아이리’를 만들고 싶다고 말한다.

“부당한 일에 더 당당하게 맞서고 싶다.” 김세경 부지회장은 “집에 가면 애들한테 부당하게 대우받으면 떳떳하게 행동해야 한다고 하면서 지금껏 내가 그러지 못했다고 생각하니 부끄럽더라”라며 “노조 가입하고 회사에 떳떳하게 얘기하고 현장을 하나하나 바꾼 얘기하면 애들도 좋아한다. 이게 산교육 아니겠느냐”며 웃는다.

‘우리 권리를 스스로 찾자’며 한 발 내딛은 아이리지회 노동자들. “한 발 한 발 더 깊이 멋진 발자국 남겨보겠다”는 이들의 2014년을 기대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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