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2일, 2014년 첫 출근날이다. 새해라 이곳 저곳 들뜬 분위기지만 레이테크코리아 노동자들은 눈물과 한숨을 쏟아냈다.

노조 서울지부 동부지역지회 레이테크코리아분회는 이날 안성공장에서 분회 현판식을 진행했다. 기쁜 잔칫날이어야 하지만 조합원들은 마냥 기뻐할 수 없었다. 12월31일 일방적으로 통근버스를 중단하고 공장을 이전하겠다고 통보한 회사 때문에 이날 현판식은 2014년 투쟁선포식을 겸해 진행했다.

▲ 1월2일 레이테크코리아분회 조합원들이 안성공장 작업장 입구에서 투쟁선포식을 진행하고 있다. 조합원들이 반드시 일터를 지키겠다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안성= 강정주

이날 전체 조합원은 퇴근 후 서울고용노동청으로 갔다. 단체협약이 있음에도 일방적으로 통근버스를 중단하고 노동조합을 탄압하는 회사를 그냥 두고보기만 하는 노동부와 면담을 하기 위해서였다. 조합원들은 노동부 출입문 앞 찬 바닥에서 세 시간 가까이 기다렸다. 그리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억울합니다. 너무 억울합니다.”

노조 생기자 공장 이전

레이테크코리아는 서울 신당동에 공장을 두고 있었다. 지난해 6월 회사는 노동자들이 금속노조에 가입하자 안성으로 공장 이전을 발표했다. 레이테크코리아분회 조합원은 대부분 기혼 여성이다. 어린 자녀가 있거나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보니 서울에서 안성까지 출퇴근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는 것이 이필자 수석대의원의 설명이다.

이필자 수석대의원은 “조건이 이렇다보니 회사는 안성으로 공장 이전하면 많은 조합원이 회사를 그만둘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 이전하면서 10명 넘는 조합원이 퇴사했다. 이전한 뒤 출퇴근이 힘들어서 회사를 그만 둔 이들도 있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해 9월 회사는 안성공장으로 이전했고, 조합원들도 이 곳으로 출근한 지 4개월이 지났다.

“지금은 많이 공장다워진 거예요. 처음 오니 허허벌판에 창고만 덜렁 있는데 어찌나 황당하던지.” 한 조합원은 안성공장에 처음 출근했던 때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서울에서 1시간30분을 차로 이동해 도착한 공장은 주변에 논과 축사로 둘러싸여 있었다. 물류창고로 쓰던 곳에 작업대만 갖다 둔 상태였다. “창고 안에 지게차며 트럭이 왔다갔다 하는데 안전선도 없고, 작업할 공간도 따로 없고 그냥 작업대만 놔뒀다니까요.”

▲ 이필자 노조 서울지부 동부지역지회 레이테크코리아분회 수석대의원은“우리는 공장 이전할 때도 그렇고 크게 요구한거 하나도 없어요. 그냥 일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 그거 하나밖에 없습니다”라고 절박하게 말했다. 강정주

이 수석대의원은 “사장이 이전하기 전 휴게실, 식당, 탈의실 다 완벽히 준비하겠다고 철석같이 약속했다”고 말했다. 사장은 조합원들이 두 달 동안 요구한 뒤에야 탈의실 겸 식당으로 사용하는 컨테이너를 설치했다. “식당이 없어서 공장 마당에 돗자리 펴고 밥을 먹었어요. 현장은 먼지에 본드 냄새 때문에 밥을 먹을 수가 없으니……바람 불면 낙엽 날라다니고 비도 오고 정말 얼마나 힘들던지.” 이 수석대의원은 당시 어려움을 떠올렸다.

허허벌판, 식당도 없는 창고에서 일해라?

“화장실 문제는 말도 못한다”는 얘기가 이어진다. 화장실은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채 방치된 상태였다. 변기는 도저히 앉을 수 없을 정도로 더러운 상태였다. 이 수석대의원은 “급한대로 우리가 닦아서 사용했다. 회사에 화장실 청소 해달라고 수차례 얘기했지만 아직도 청소해주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화장실 뿐 아니라 일하는 현장도 청소해주지 않는다. 심지어 화장실은 남녀 구분이 안돼 있어 여성 조합원들은 화장실에서 남성들을 마주치며 수치심과 모멸감을 느껴야 했다. 한참 뒤 회사가 내놓은 방안은 ‘남성들은 밖에서 처리할 것. 자전거 세 대 구입했으니 10분 거리에 있는 1공장 화장실에 갈 것’ 이었다.

조합원들은 4~5시간 걸려 출퇴근 한다. 퇴근길 차가 막히면 저녁 8시가 넘어 집에 도착한다. 아이들 밥 먹이는 것도, 갑자기 다쳤다는 연락을 받아도 어쩌지 못하고 있다. 조합원들은 힘들지만 4개월 동안 적응해가며 출근하고 있다. 한 조합원은 “애가 어려서 다니고 싶어도 못 다니고 그만 두는 동료들 보면 너무 속상하다”고 말했다.

▲ 1월2일 레이테크코리아분회가 안성공장에 현판식을 하고 있다. 하지만 12월31일 일방적으로 통근버스를 중단시키고 또다시 공장이전을 시도하는 회사 때문에 즐겁게만 맞을 수 없었다. 공장 안 현판식을 마친 조합원들이 모여 단체사진을 찍고 있다. 안성=강정주

4개월에 한 번 씩 공장 옮기겠다는 회사

사장은 4개월 만에 또 다시 공장을 평택 서정리로 이전하겠다고 통보했다. 새로운 기계를 설치해야 한다는 이유로 대다수 조합원이 있는 포장부서만 옮겨야 한다는 것이다. “안성공장 이전 합의서 잉크로 안 말랐다. 사장은 몇 개월에 한 번 씩 회사 옮기겠다며 사람 피를 말린다”고 조합원들이 분노했다.

이필자 수석대의원은 “회사에서 평택으로 전철타고 출퇴근 하라는데 내가 계산해보니 출근 시간만 2시간40분 걸린다. 이게 말이 되느냐”고 지적했다. 이 수석대의원은 “조합원들 자꾸 불편하게 만들어서 노조 포기하고 회사 나가게 하려는 것 아니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2013년 12월31일, 회사는 조합원들에게 충격적인 소식을 또 하나 전했다. “우리 퇴근시간이 17시30분이예요. 이날 16시40분인가 불러서는 ‘통근버스 중단하겠다. 15인승 승합차 샀으니 그거 타고 출근하라’고 하더라고요.” 조합원들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단체협약에 통근 차량을 제공하도록 했으나 노조와 단 한마디 협의도 없는 일방적인 개악 통보였다.

1월2일 새해 첫 출근날 회사는 매일 통근버스를 타던 곳에 승합차 두 대를 세워뒀다. “차량 상태가 말도 못해요. 어디서 폐차 직전인 차를 가져왔더라고요. 타이어는 바람 빠져있고, 앞유리는 금이 가서 테이프를 덕지덕지 붙여두고. 그 차 타고 왔으면 분명히 사고 났을거예요.” 조합원들은 할 수 없이 지회에서 대절한 버스를 타고 출근했다.

▲ 1월2일 퇴근 후 전체 조합원은 서울고용노동청을 방문해 면담을 진행했다. 면담을 기다리는 동안 한 조합원이“그만 둘 거였으면 진작 그만뒀습니다. 지금 남은 우리는 끝까지 공장 지킬겁니다”라고 심정을 말하고 있다. 강정주

“서울에 공장 있을 때 일을 얼마나 시켰는지 몰라요. 손이 쉴 새가 없었다니까요. 그렇게 부려먹더니 노조 만들었다고 이제와서 직원 취급도 안하고, 이리가라 저리가라 내보내려고 안달이라니. 억울해서 분이 쌓입니다.” 조합원들은 한결같이 억울하다고 했다. “회사 잘 나가고 수출 많이 했다고 상도 받았대요. 그게 다 우리 덕이잖아요. 새해 첫 날 고맙다, 수고한다 얘기는 못할망정 버스비 아깝다고 하루 아침에 통근버스를 중단시키다니요.”

통근버스 중단, 서러운 출근길

이필자 수석대의원은 회사의 행태가 너무 괘씸하다고 지적했다. 이 수석대의원은 “내가 사장한테 눈물로 호소도 해봤다”며 “혼자 애 키워야 하는 사람, 집안 생계 책임지는 사람, 정말 일자리가 절박한 사람들이니 힘들어도 안성까지 와서 일하겠다는데 일자리는 뺏지말라고. 하지만 우리 절박한 얘기를 전혀 들으려 하지 않는다”고 한숨을 쉬었다.

노동청에 관리감독을 촉구하고 회사에 통근버스 배치를 다시 요구했다. 아직도 해결된 것이 없다. 조합원들은 안성공장까지 출근할 길이 막막하다. 다시 공장을 옮기라면 어째야 하나 답답함이 가득하다. “우리는 공장 이전할 때도 그렇고 크게 요구한거 하나도 없어요. 그냥 일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 하나 밖에 없습니다.” 이 수석대의원은 조합원들의 절박함을 호소했다.

“그만 둘 거였으면 진작 그만뒀습니다. 지금 남은 우리는 끝까지 공장 지킬겁니다.” 노조 가입 6개월, 새해 레이테크노동자들은 일터를 지키기 위한  싸움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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