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 근처 중국집에 사람들이 모였어. 노조 가입원서라고 나눠주는데 다들 끄덕거리며 쓰는 거지.”

1988년 5월9일 태광하이텍 노동조합(현 서울지부 남부지역지회 하이텍알씨디코리아분회)은 이렇게 탄생했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을 거치면서 민주노조 건설 움직임이 들불처럼 타올랐고, 태광하이텍 노동자들도 이 흐름에 가세해 민주노조 푸른 깃발을 올렸다.

▲ 12월20일 서울지부 남부지역지회 하이텍알씨디코리아분회가 노조 창립 25주년 송년집회를 구로공장 식당에서 진행했다. 집회에 모인 이들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며 민중의례를 하고 있다. 강정주

펜으로 꾹꾹 눌러쓴 1989년 5월10일 발행한 ‘태광하이텍 노동조합 소식지 1호’가 아직 남아있다. 이렇게 민주노조를 설립하고 25년이 지났다. 태광하이텍은 ‘하이텍알씨디코리아’로 이름을 바꿨다. 한 라인에 1백 명이 넘던 노동자들은 공장을 떠났고, 지금은 여덟 명의 여성 조합원이 민주노조 사수를 위한 투쟁을 끊임없이 진행하고 있다.

공장이 위치한 구로공단(현 서울디지털단지)는 높은 빌딩 모양 아파트형 공장이 들어서 옛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달라졌다. 하이텍알씨디코리아분회는 이제 구로공단에 남은 마지막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노협) 사업장이다. 25년의 민주노조 역사, 하이텍 노동자들은 “목숨 건 투쟁으로 지켜온 깃발”이라고 말했다. 12월20일 하이텍알씨디코리아 노동자들이 그동안 함께 투쟁했던 동지들과 앞으로 투쟁을 다시 결의하는 송년집회를 열었다. 하이텍 투쟁을 함께 한 이들이 구로공장 식당을 가득 채웠다.

1988년 5월9일, 태광하이텍 민주노조 깃발을 세우다

하이텍은 노조탄압으로 악명 높은 곳이다. 2002년 임금 교섭으로 시작한 싸움은 노동조합을 없애려는 자본과 정면대결의 시작이었다. 당시 하이텍 박천서 회장은 “10억원이 들든, 20억원이 들든 노조를 없애겠다”고 공언했다. 하이텍 노동자들은 2011년 단체협약을 체결할 때까지 10년 동안 장기투쟁을 벌였다.

▲ 하이텍알씨디코리아분회는 1989년 5월9일 '태광하이텍 노동조합'으로 시작해 올해로 노조 설립 25년을 맞았다. 하이텍 노동자들은 "목숨 건 투쟁으로 지켜온 민주노조 깃발"이라고 말했다. 강정주

공격적 직장폐쇄, 조합원 왕따라인 구성, CCTV 감시, 전조합원 징계, 해고, 구사대 동원 임산부 조합원 폭행, 공장 식당 폐쇄, 정리해고, 단체협약 일방해지……. 10년 동안 자본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탄압했다. 신애자 하이텍알씨디코리아분회장은 “정말 처절하게 싸웠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조합원들은 2002년 6개월의 공격적 직장폐쇄 기간을 절대 잊을 수 없는 순간이라고 말했다. “노동자들은 임금으로 먹고 사는데 6개월 동안 돈 한 푼 못 받았다. 일하겠다는데도 조합원이라는 이유로 내치고, 밥도 물도 주지 않았다.” 나중에 차비가 없어 집회에 가지 못할 지경까지 갔다.

2005년 하이텍 노동자들은 구로공장이 아닌 충북 오창에서 투쟁을 시작했다. 회사가 생산직 노동자들만 남겨둔 채 야반도주하듯 본사와 연구소를 오창으로 이전했기 때문이다. 조합원들은 오창 본사 마당에 들어가 노동조합 사무실 천막을 쳤다 철거당하기도 했다. 천막 하나 설치하지 못하고 본사 앞 벌판에서 한겨울 노숙을 해야했다. 불을 때기 위해 자기 몸 만한 나무를 산에서부터 끌어오고, 모닥불을 피운 채 비닐 한 장 덮고 잠을 자야 하기도 했다. “여성 조합원들인데다 그때는 애들도 어렸다. 거리가 먼 오창으로 가는데 아이를 어딘가 맡겨야 하는 일이 제일 힘들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 12월20일 열린 하이텍알씨디코리아분회 노조 창립 25주년 송년집회에서 서울지부 남부지역지회 대표자들이 앞으로 투쟁에 함께 하겠다는 결의를 밝히고 있다. 강정주

악랄한 노조탄압에 맞선 처절한 싸움

25년, 하이텍 투쟁은 연대와 공동투쟁의 역사다. 1998년 천지 노동자들과 공동투쟁본부를 꾸리고 투쟁했다. 신 분회장은 “천지 공장에 가면 쇳가루며 숨이 턱턱 막힐 만큼 상황이 열악했다. 공투를 하면서 다른 공장의 열악한 상황을 제대로 알 수 있었다”며 “각각의 문제에 대해 같이 싸운다는 것을 넘어 더 큰 공동의 목표를 세우고 더 큰 싸움을 할 수 있는 힘을 얻는 것이 공동투쟁이다”라고 강조했다.

김혜진 조합원은 “태광하이텍 노조가 처음 생길때부터 지금까지 싸움의 과정은 늘 공동투쟁이었다”고 설명했다. 당시 ‘제3자 개입금지 조항’이 있었음에도 주변 사업장 간부들이 달려와 같이 싸웠다. 이 힘으로 태광하이텍 첫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신애자 분회장은 “‘제3자 개입금지 조항’은 노동자의 연대를 가로막는, 공장 담을 넘지 못하게 하는 악법이었다. 당시 악법은 불법으로 깨뜨린다는 정신으로 싸웠고, 한 사업장에서 투쟁이 벌어지면 다같이 달려가 같이 싸웠다”고 말했다. “지금은 오히려 ‘노동자는 하나’라는 정신이 구호로만 남아있는 것 같다. 2001년 하이텍은 교섭이 끝났지만 천지가 해결되지 않아 끝까지 싸웠다. 그때 회사는 우리 사업장 문제만 얘기하면 다 해결해주겠다고 했다. 우리가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연대고, 자본이 가장 싫어하고 무서워하는 것도 연대다.”

▲ 하이텍알씨디코리아 노동자들은 10년의 장기투쟁을 벌이며 공동투쟁을 벌여왔다. 일본 원정투쟁 당시 함께 싸웠던 일본 노동자들이 이날 송년집회에 참석해 축하의 말을 전하고 있다. 강정주

하이텍 노동자들은 항상 “노동조합은 생존권이다”라고 외쳤다. 김혜진 조합원은 “노동자들의 삶의 터전인 일터를 지키고 노동자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서 민주노조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이들은 끈질긴 자본의 탄압에 더 끈질긴 투쟁을 통해 민주노조 깃발을 지켜왔다. 김 조합원은 “지금 조합원 여덟명이 남아있지만 지금껏 싸워서 지켜왔기 때문에 회사도 함부로 공장을 없애거나 노조를 쓸어버리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우리의 투쟁은 자본이 노동자 삶의 터전을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싸움이었다. 투쟁하면 지킬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해 온 역사였다.”

“노동조합은 생존권이다”

내년이면 하이텍알씨디코리아분회 조합원은 일곱 명이 된다. 한 조합원이 12월31일 정년퇴직을 한다. “본인은 퇴직하지만 우리가 노조 잘 지키고 열심히 싸우고 있으면 다른 회사에서 노조 만들어서 연대오겠다고 했다. 우리 공장 조합원이 한 명 줄어드는 문제가 아니라 이렇게 더 큰 씨앗을 뿌리고 지역 안에서 함께할 수 있는 고리를 만들 것이다.”

▲ 하이텍알씨디코리아분회는 1989년 5월10일 노조 설립을 알리는 첫 소식지를 발행했다. 분회는 직접 펜으로 쓴 소식지들을 전시했다. 강정주

하이텍 노동자들의 투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2013년 임금협상이 아직 진행 중이다. 임금 동결을 주장하던 회사는 공장 식당을 일방적으로 폐쇄했고, 현안 문제를 해결하라는 노동자들의 요구에 불가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자본은 구로공장 폐쇄, 민주노조 말살 음모를 아직도 버리지 않고 있다.

“2001년부터였다. 하이텍 박천서 회장이 구로공장을 폐쇄하려고 한 것이. 하지만 구로공장은 우리가 지금까지 지켜왔고 반드시 지켜야 하는 곳이다.” 신 분회장은 이렇게 강조했다. “싸우지 않고 일할 수 있으면 좋다. 하지만 공장을 없애고 민주노조 쓸어버리겠다는 자본의 탄압이 끝나지 않는 한 우리 투쟁도 끝나지 않는다.”

▲ 12월20일 송년집회 마지막 순서는 하이텍알씨디코리아분회 조합원들의 '노동조합가' 합창이었다. 조합원들은 노조를 반드시 깨겠다는 자본의 탄압에 맞서 민주노조 깃발을 사수해오고 있다. 강정주

민주노조 25주년을 맞는 올해, 동지들과 함께 모인 송년집회에서 하이텍알씨디코리아 노동자들은 ‘노동조합가’를 힘차게 불렀다. 신애자 분회장은 “25주년 집회를 준비하면서 옛 사진과 영상을 다시 보니 우리 모습은 많이 변했다. 민주노조를 지키기 위해 하나로 모아 싸워야 한다는 것은 변하지 않았다. 박천서 회장이 개과천선하지 않는 한 하이텍 투쟁은 계속 될 것이다”라고 결의했다.

신 분회장은 한 번 더 결의했다. “하이텍분회는 서울남부지역 연대투쟁의 앞장설 것이다. 적 보다 하루 더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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