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식할 정도로 고집이 센 사람’, ‘술을 많이 먹으려고 담배를 끊은 사람’, ‘술 먹고 쓰러졌는데 술자리가 있다는 소리에 ‘벌떡’일어나 술자리로 달려가는 사람’…. 이 사람은 금속노조(위원장 박유기) 26차 대의원대회에서 조직강화상을 받은 전북지부 일성테크분회(분회장 최대준) 조영호 조합원이다.

▲ 26차 노조 대의원대회에서 '조직강화상'을 받은 일성테크 조영호 조합원
최 분회장은 “조 동지는 힘든 고용위기 상황에서도 비정규직을 조직해 산별노조의 정신을 실현한 사람”이라고 한마디로 평가한다. 2004년부터 5년간 일성테크 분회장으로, 군산지역금속 지회장으로 활동한 그에게 이보다 더 큰 칭찬이 있으랴.

GM대우차 납품업체인 일성테크는 2008년 경제위기로 50%까지 물량이 축소됐고 사측은 비정규직 해고라는 카드를 꺼내들었다. 그 상황에서 당시 일성테크 분회장, 군산지역금속 지회장인 조 조합원은 ‘총고용 보장’을 요구한 인물이었다. 당시 ‘총고용 보장’은 금속노조의 방침이기도 했다. 하지만 정규직 구조조정을 위해 고가평가 작업을 하던 비밀문서가 발견되고 천막농성으로 정규직 고용보장을 요구하던 터라 비정규직도 정규직도 ‘가능할까?’ 의심스러워했던 목표였다.

술 많이 먹으려 담배까지 끊은 사람

하지만 “일자리 없으면 누군가는 나가야 하는 것 아니냐”는 정규직 조합원들의 질문에 조 조합원은 담담히 “그렇지 않다. 경제위기를 극복할 방안은 많다. 수많은 방법 중에서 사측이 유독 노동자 해고라는 가장 손쉬운 카드로 경제위기를 극복하려는 것이다. 어려울 때마다 자르고 자르면 누가 이 회사에 남아있고 싶겠는가. 견디고 이겨내면 모두 한식구가 될 수 있다”라는 말로 설득했다.

물론 쉽지 않았다. 당장 내 생존권이 빼앗기는 상황에서 정규직 조합원들이 쉽사리 비정규직 고용을 위해 투쟁할리 만무했다. 조 조합원이 1백 20여명의 정규직 조합원을 설득할 방법은 직접 만나는 것. 1백 20명 조합원을 15개부사로 나눠 간담회를 시작했다. 주간조는 저녁식사와 술자리로 간담회를 대신했고, 야간조는 새벽에 일어나 해장국으로 간담회를 진행했다. 점심시간에도 조합원을 찾아 만났다. 수십 번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고 설명했다. 한 조합원을 4~5번 술자리를 가지면서 설득했다. 주간조와의 술자리로 쓰러져 있을 때 야간조 술자리에 기어코 나가 조합원을 설득했다. 그렇게 2008년을 보냈다. 갖은 술자리는 집에서는 보이지는 않은 아빠로, 야속한 남편이 됐다. 그리고 스스로에겐 잦은 술자리를 견디기 위해 담배까지 끊는 고난이 시작되기도 했다.

그렇게 1년, 조 조합원의 간절함은 조합원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마침내 2009년 사측과 20여명의 비정규직을 포함한 총고용 협약서를 체결했다. 3년을 함께 교선부장으로 생활한 김철호 조합원은 “당시 좀 야속했다. 나라면 당시 월급제인 우리 정규직 조합원들이 50%까지 깎이는 상황에서 정규직 조합원이라도 탄탄하게 가자고 할텐데 대단한 결심이었던 것 같다”며 “특히 주변 1사1조직을 건설한 이야기를 들어보면 우리가 훨씬 좋지 않은 조건에서 1사 1조직을 실현했던 것을 알 수 있는데 그런 것을 보면 이 사람의 우직함은 인정할 만하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이미 사측에서 “누구라도 잘라야하고 그 사람들이 비정규직이면 다행 아니냐”는 논리를 펴, 정규직은 정규직대로, 비정규직은 비정규직대로 서로를 적대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2009년 비정규직 포함한 총고용 협약서 쟁취

조 조합원의 모범적인 모습은 일성테크 밖에서도 보였다. 2005년 겨울 GM대우차 협력업체인 KM&I 군산공장이 2004년 임금 삭감에 반발해 금속노조 분회를 설립했는데 그에 참여한 조합원 1백여명을 해고한 뒤, 직장폐쇄에 천막농성까지 사측과의 질긴 싸움이 이어졌다. 이 싸움에서도 군산지역금속지회 지회장으로서 조 조합원의 활약은 주변조합원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지회 상집생활을 함께한 유형근 조합원은 “경찰의 물대포를 온몸으로 맞으면 싸웠던 동지다.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되는 싸움을 왜 그렇게까지 할까”라는 의문이었다고 한다.

이에 조 조합원은 “노동조합이라는 네 글자에 답은 있다. 노동하는 사람들이 만든 조직, 사회적으로 힘없는 사람들이 힘을 갖기 위해 만든 조직이 노동조합이기 때문에 그걸 지키기 위해는 나보다 대의를 생각하는 게 당연한 것”이라고 답한다. 조 조합원이 5년 지회장 활동 동안 1사1조직을 실현하면서 힘겨운 싸움을 해온 원동력은 ‘노동조합’을 지키기 위한 그만의 우직함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려움이 왜 없었겠는가. 조합원들이 때론 술자리에서 비아냥거리며 “뭘 받아서 그러냐” 등 의심어린 질문을 받는다고 한다. ‘내가 왜 이런 이야기까지 들어가면서 일을 할까’ 생각하면서도 현장서의 유일한 보험, ‘노동조합’ 그 절실함을 지켜내기 위해 또다시 고군분투한다.

“잘했다는 말보다 ‘고생했다’는 말 한마디 듣고 싶습니다”라고 말하는 그에게서 5년의 노고가 묻어난다. 천막농성을 할 때는 여성조합원들이 밥을 해오고, 술자리에서 욕설까지 속내를 이야기하는 조합원들이 함께하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그 조합원들을 조직화해 냈기 때문에 조 조합원의 활동은 빛나고 있었다.

▲ 현장에 복귀한 조영호 조합원
조 조합원은 현재 현장에 복귀해 조합원으로 살아가고 있다. “지금 내 역할은 여전히 ‘노동조합’을 튼튼히 하는 것이다. 다만 노조를 형성하는 울타리인 조합원으로서 남보다 더 큰 울타리가 되기 위해 솔선수범하는 것이 내 역할”이라고 말하는 조 조합원의 결심에서 그의 진실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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