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28일 노조 법률원 경남지부사무소로 자리를 옮긴 후 숙소에서 이삿짐을 풀고 TV뉴스를 봤다. 기자는 대법원이 이날 “2003년 12월22일부터 2005년 1월26일까지 지엠대우 창원공장에서 피고인 데이비드 닉라일리가 하청업체의 사장들인 공동피고인 김판수, 박만석, 김영창, 윤춘수, 윤봉석, 이만근으로부터 위법하게 근로자파견의 역무를 제공받아 근로자 권순만 등 847명을 지엠대우 관리자의 지휘․ 명령 아래 제조업의 직접생산공정업무인 차체조립 등 자동차생산업무에 종사하게 했다”는 공소사실에 대해 유죄를 선고한 2심 법원(창원지방법원 2009노579)의 판결을 그대로 확정했다고 보도했다.

대법원은 지엠대우오토앤테크놀러지의 대표이사의 무죄 주장이 이유 없다고 하면서 이렇게 판시했다. “협력업체 소속 근로자들이 지엠대우 창원공장 내의 자동차 생산작업에 배치된 방식과 내용, 지엠대우의 협력업체 소속 근로자들에 대한 단위작업서·조립사양서·작업지시서·포장작업사양서 등 각종 업무표준의 작성 및 배포, 지엠대우 소속 근로자의 결원이나 물량 증가로 인한 협력업체 소속 근로자들에 의한 인원충원에 있어서 그 절차나 방식, 협력업체 소속 근로자들에 대한 근무시간이나 연장·야간·휴일근무 여부의 결정과 근태관리와 직무교육의 실태, 지엠대우가 창원공장의 협력업체들에 대하여 지급할 도급비를 결정하는 방식 과 그 내역…… 등에 관한 사실 등을 인정한 다음, 그 인정사실에 비추어 볼 때 지엠대우와 사내협력업체들은 그 사이에 각 체결된 계약의 명칭이나 형식 여하에 불구하고 그 협력업체에 소속된 근로자들이 지엠대우의 사업장에 파견되어 지엠대우의 지휘·명령 아래 지엠대우를 위한 근로를 제공하는 근로자파견관계에 있었다.”(대법원 2013. 2. 28. 선고 2011도34판결)

컨베이어벨트를 이용한 자동흐름방식의 생산, 원청회사에서 일괄 작성한 작업지시서, 원청회사의 일반적인 작업배치권과 변경결정권, 근태관리 및 직무교육의 실태는 일부 형식적인 면에서 차이가 있는 것을 제외하고 제조업 사내하청에서 전형으로 볼 수 있는 특징들이다. 법원은 이러한 특징이 단지 도급인의 수급인에 대한 지시권에 불과하므로 지엠대우와 하청업체들 사이의 법률관계를 ‘도급’으로 보아야 한다는 피고인 측의 주장을 배척한 것이다.

이런 법원의 판결은 법전에 뚜렷이 나타나 있는 것을 쉽게 찾아내서 그대로 적용하기만 하면 가능한 판결이었을까? 그렇지 않다. 파견법에는 ‘도급과 파견의 구분’과 같은 표제의 법조문이 존재하지 않는다. 파견법을 폐지하고 ‘직업안정법’에 도급과 근로자공급을 구분하는 조항을 신설하자는 것은 아직까지 민주노총의 요구일 뿐이다.

다만 법에 파견 가능 업종 가운데 제조업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일단 제조업에서 파견이 있으면 불법이 되는 것인데, 2012년 8월2일 이전 파견법에 2년 초과시 근로시에는 직접고용간주 혹은 직접고용의무라는 효과가 발생한다고 돼 있을 뿐, 파견이 불법이고 그 불법인 파견근로가 2년을 초과했다고 직접고용이 되는가에 대한 명시적인 규정은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따라서 적법한 파견이 아닌 불법파견의 경우 직접고용 간주의 효과가 발생하는지에 대해 논란이 있었던 것이다.

대법원은 서울도시가스를 공급하는 예스코에서 5년 이상 불법파견 돼 근로하다가 해고당한 노동자에 대해, “직접 고용간주 조항은 적법한 파견일 때만 적용된다”고 하여 해고를 정당하다고 판시한 2심 판결(1심도 마찬가지였다)을 파기한다. 당시 대법원은 이렇게 판시했다. “직접고용간주 규정은 근로자파견의 상용화·장기화를 방지하고 그에 따른 파견근로자의 고용안정을 도모하는 데에 그 입법취지가 있다. …… 이 규정은 법률이 정하는 이른바 적법한 근로자파견에 한정한다는 것을 고용간주의 요건으로 들고 있지 않아 적법한 근로자파견의 경우에만 적용된다고 축소, 해석할 근거가 없다.”(대법원 2008. 9. 18. 선고 2007두22320판결)

이처럼 법 규정이 불명확했지만 대법관들의 사회적 시야가 위 사건을 다룰 때 갑자기 넓어져서 해석의 확대가 가능했던 것일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투쟁하는 노동자가 있고, 그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고, 도덕적 정당성이 있고, 호소력 있는 인간의 권리 선언이 있다면 극심한 이해대립에서 벗어나 있는 인간은 귀를 기울여 경청하게 된다. 이 대법원 판결도 그런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지금 불법파견 문제를 둘러싼 사회의 흐름은 어떠한가. 우리의 파견법은 나아졌는가. 그렇지 않다. 앞서 이야기한대로 2012년 8월2일 이후 파견법은 불법파견이라면 2년 초과와 무관하게 사용자에게 즉시 직접고용의무가 발생하도록 개정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불법파견’을 인정받기란 험난할 따름이다. 800억원 가까운 이익을 본 지엠대우는 그 대표이사가 700만원의 벌금형에 처해졌을 뿐이다. 지엠대우는 당시 파견 근로자들은 도급업체 소속으로 회사가 달라 정확한 숫자를 모르며, 후속조치 역시 없다고 밝혔다고 한다.(2013년 3월4일 KBS뉴스 ‘대법원 판결은 났지만 변화는 없어’)

오히려 투쟁과 여론으로 만들어진 판결을 입법을 통해 뒤집으려는 흐름이 있다. ‘사내하도급법’이라고 불리는 ‘사내하도급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안)’이 그것이다. ‘보호’라는 이름이 들어가 있지만, 이 법률의 핵심은 사내하도급이라는 것에 대해 더 이상 불법파견이라는 비판이 불가능하도록 쐐기를 박는 데 있다. 국가인권위가 “사내하도급법은 원청회사의 사업장 내에서 하청회사가 원청회사로부터 도급 또는 위임(사무의 처리)받은 업무를 독립적으로 수행하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며 “위임 업무의 범위와 사유에 아무런 제한도 두지 않고 있어 적법도급과 불법파견의 구분 기준을 불분명하게 만들 우려가 있다”고 하면서 “불법파견과 적법도급의 구분기준을 명시하라”고 주문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파견과 도급의 구별기준은 법전에 있는 것이 아니다. 법원의 법리일 뿐이다. 법원의 이 법리도 사용자들에겐 없어져야 할 대상일 뿐이다. 어렵게 인정받아온 ‘불법’ 파견조차 ‘사내하도급’이라는 새로운 법률용어에 의해 ‘적법’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

얼마 전 만난 일본의 한 변호사는 한국의 파견법을 접한 후 괜찮은 법이라고 말했다. 제조업도 파견이 가능하고 3년 초과되어야 직접 고용관계를 기대할 수 있는 일본노동운동의 현실에서는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대자동차 불법파견 사건에 대해 설명을 들은 후에 이 변호사는 “사건 당사자 뒤에 노동조합이 있지 않은가. 역시 노동조합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작 그 법이 적용될 일이 없다면 법은 장식일 뿐이다. 사내하도급과 같이 교묘하게 불법을 적법으로 바꾸려는 시도가 있다. 권리를 요구하고 세상을 향해 설득할 수 있는 노동운동이 있지 않고서는 현실의 진보는커녕 법의 진보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장종오 노조 법률원 경남지부사무소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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